2012년 9월 1일 토요일
평범 속에서의 진리(眞理) 껴안기
맹하린
왼손의 검지(집게손가락)에 장미가시가 콕 소리가 날 듯 박히더니 끝이 부러지면서 급격한 염증을 위협적으로 몰고 왔다.
족집게로 꺼내려 해도 계속 아프기만 했고, 어디로 숨었는지 도저히 흔적도 안 보인다.
어느 드라마에 나오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르던 순간이었다.
-릴케인지 부케인지 장미가시에 찔려 죽었다는데…….
릴케도 부케도 못되는 내가 장미가시에 찔려 보름 이상 죽을 고생이다.
성질머리가 괴팍스러워 병원조차 가기를 꺼리고, 혼자서 의사와 환자와 간호사를 모두 도맡아 하는 모습, 내가 보기에도 자만이 지나치다.
그렇지만 이러는 나를 내가 싫어하면 누가 좋아 하겠는가.
이런 줏대가 있어서 그나마 글에 대한 열정을 못 버리는지도 모른다.
내 생업이라는 게 주로 물을 많이 만지는 분야라선지 나을 만 하면 상처가 덧나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적절하다는 약마다 바르고 먹고 뿌리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는데 상처 부위는 결코 만만치가 않은 태도 일색(一色)으로만 나간다.
자연을 좋아하는 취향이라선지 그동안 내 피부는 다쳐도 회복이 매우 자연스러웠고 빠른 편에 속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득도(得道)같은 걸 서넛이나 껴안게 되었다.
상처는 더 많이 부딪치고 더 자주 덧나고 더 특별하게 아픔이 겹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손은 수도 없이 사물이나 사람과 부딪친다는 깨달음이다.
그런데 상처가 없을 경우 그러한 상황에 맞닥뜨릴지라도 전혀 안 아프거나 아픈 것 같지도 않게 아프거나 그렇게 잘 견디며 지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또 있다.
돌팔이가 사람 잡는다는 것.
어서 곪아 버리고 어서 아물어야 하는데 곪기도 전에 아물리는 일부터 생기도록 일을 어렵게 만든 나라는 돌팔이.
쿡쿡 쑤시거나 빨갛게 붓고, 볼펜모양의 사혈(瀉血)침으로 여기저기 피를 빼주면 색깔이 과연 가관(可觀)도 넘었다.
그제부터 과감하게 일일밴드조차 다 팽개치고 저 혼자 이겨내라고 방치하기 시작했다.
(까이꺼, 죽으라면 죽지 뭐.)
손가락 하나의 문제가 보름동안이나 그토록 온 정신을 헤집는 경우는 보다보다 첨이다.
아니, 가시 하나.
아니지 , 가시 반 토막이....... .
그런 와중(渦中)에도 내 장난스러움은 변화를 몰랐다.
어제 아침 가게를 열기도 전에 P방직회사의 H회장이 전화를 해왔다.
"꽃집이죠?"
그렇게 묻고는 계속 망설이고 미안해하며 바다가게의 전화번호가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가게의 전화번호를 내게 묻는 일이 매우 허다하다.
찾다 못 찾아서 그렇겠기에 나는 매번 친절하게 답해 준다.
나는 그분이 덜 미안하시라고 마침 외우고 있는 번호라서 굳이 찾을 필요도 없는 일이라고 편하고 쉽게 알려 드렸다.
그분의 아내인 이안나는 내 또래이고 한 때 같은 골프동아리였고 해서 당연히 그녀의 근황(近況)을 물었다.
"예쁘고 사랑스런 나의 안나는 잘 지내나요?"
"하하하. 안나가 있잖습니까? 운동하고 귀가하다가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넘어졌어요. 며칠 됐네요. 무릎이 금갔다고 합니다. 몸이 약하니까 깁스가 무거울 거라면서 독일병원 의사가 무릎에만 대는 단단한 깁스를 해줬어요. 두어 달 고생할 거랍니다."
"저런요!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전해 주세요."
H회장은 전화를 끊으면서 다시금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있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이웃에 있는 가게일 것 같아서."
"왜 그런 걱정을 하세요? 이렇게 문의하실 날이 있을 것만 같아 미리 외워 둔 번호였는데요?"
"하하하."
"전화번호 정도야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이 기억하고 있어요. 언제든 다시 물어 보세요."
"하하하."
나 역시 안 웃을 수는 없어 함께 웃으며 무선전화의 붉은 칸을 가볍게 눌렀다.
그런 과정에서도 나는 글을 써냈다.
어찌됐건 내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였다.
죽음 얘기만 나오면, 눈 버렸군! 어쩌고 질색하는 내 그대들이 어땠을까를 상상하면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가끔은 골탕을 먹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새삼, 왼손의 검지가 저를 지켜보는 나를 올려다보는데 어째 날씬해 보이고 더할 나위 없이 씩씩해져 있다.
우디 알렌이 감독한 영화 "파리의 새벽"을 보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주인공이 과거를 넘나들며 헤밍웨이와 위대한 게츠비를 써낸 작가 피츠제럴드와 피카소 등을 만나는 장면을 접하며 어리둥절했던 것처럼, 나는 황당한 표정의 나를 내 왼손 검지에게 들키는 중이었을 것이다.
그 영화 보면서 영화광팬이며 내 사부(師父)도 되는 아들에게 펀치를 먹듯 당하던 퉁박이 떠오른다.
"대체적으로 좀 어렵다 싶으면 이해를 못한다는 점, 아세요? 문제는 문제네요. 스릴러나 좋아하시고."
"스릴러 좋아 한다는 얘기는 네 부친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거든? 다른 평 해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그 대체라는 게 그렇더라. 명화라는 것들이 가끔은 적응불가(適應不可)! 그리고 집중난감(集中難堪). 너, 그거 알아?"
결과적으로 물의 표면에 부상(浮上)하듯 정확한 원인이 떠올랐다.
9월에 치러야 할 두 군데의 결혼식, 봄의 날, 임직식, 등 겹치고 몰린 일들 때문에 정신적 압박감을 꽤나 받고 있는 터수였다.
어서 빨리 나아야 한다는 궁리에만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약을 자주 그리고 많이 발라 주다 보니 생긴 후유증이었다.
시한부 질병으로 진전됐나 했었다.
그동안 싼값에 구입했어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완전히 무시했던, 나름대로 아껴 입던 옷들을 하나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성당의 이웃돕기 모임인 빈첸시오 봉사위원에게 전화를 하리라는 작정까지 굳히며.
(오! 나의 이 끝 모를 상상력.)
약간의 통증을 동반(同伴)하고 있지만, 내 손가락은 다시 살아난 모양이다.
나 또한 살아났나 보다.
분명한 것은 나라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옆에 끼고 산다는 것.
내가 나를 지나치게 혹사(酷使)하지는 말아야겠다.
애착(愛着)이라는 이름의 아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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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무모하게 잘 참으셨네요. 가셔서 한 번 째고 항생제 드시면 간단하게 나았을 것을...ㅎ ㅎ ㅎ
저도 고집으로 고생이 길었던 적이 있지요. poison ivy에 온몸에서 진물이 일주일이나 흐르게 참고 있다 병원에 가서 스테로이드 주사 한대로 30분 만에 진물과 물집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걸 보고 엄청 억울함을 느꼈다는... 흑
그나저나 일에 지장이 없으셨으면 좋겠네요. ^^
넵. 무모는 제 자랑이기도 하죠.ㅎㅎ
벌써 나아지고 있어요.
제 손이 불편한 줄 아는지 계속 큰 행사가 겹치네요. ㅠㅠ
제 손가락도 저처럼 공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숨을 쉬게 되자, 표정이 피고 있다능~~~
감솨!
염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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