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5일 화요일
엘로이
맹하린
일 년 중 두 번째로 큰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봄의 날(9월 21일)에 대비(對備)하려고
수요일에 미리 꽃시장에 갔다.
금요일에 구입하는 양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트라픽으로 한 번에 들여 오면 정리 정돈하는 일에 시간을 다 허비하는 불편이 따른다.
막시는 하필이면 자동차가 고장이라고 며칠 전 통보해 왔었다.
미리 예약했더니 20대 중반의 현지인이 수요일 새벽 5시에 집 앞으로 왔다.
꽃시장은 6시에 열고 20분이면 닿는다.
그런데 대목이 끼면 5시에 출발해도 자동차를 세울 자리는 넓고 거대한 차고마다 겨우 몇 개 밖에 안 남는 형편이다.
비가 줄기차게 퍼붓고 있었다.
내가 막시와 함께 가면 가족은 안 가도 되지만, 다른 기사와 갈 경우 구입하는 꽃마다 나와 가족이 모두 옮겨야 한다.
나는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은 마르가리따라고 먼저 관등성명(官等姓名)을 알리고 나서였다.
그는 싱긋 웃더니 윈도우 와이퍼가 부지런히 작동(作動)되고 있는 차창(車窓)의 김서린 부분, 그러니까 백미러 바로 옆에 한글로 '엘로이'라고 왼손의 검지를 사용하며 써냈다.
현지인들은 대다수가 왼손잡이들이다.
"한국어를 배웠어요?"
"아뇨. 이름만 쓸 줄 알아요."
"이름만이 아니고 이름도 쓸 줄 아는군요?"
그는 자동차가 꽃시장을 떠나올 때, 꽃이 너무 많다고 내 가족은 택시 타고 따로 가야한다고 주장(主張)하면서 사무실의 밤 당번 관리인인 다미안에게 쪼르르 전화해서 일일이 보고 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일러바치기만 좋아했지, 다미안이 항상 내 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 틈을 비집고 가족이 차에 탔음을 알자, 그는 지나치게 놀라고 있었다.
"당신에겐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내 가족은 말라깽이고, 그리고 우리 한국인은 지구 반대편의 먼 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어떤 어려움이나 틈새도 비집고 들어가는 선수들이죠."
"하하 하하하하."
그에게서 경쾌한 웃음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때는 이때다 싶어 나는 불쑥 물었다.
"애인 있어요?"
그는 이번엔 언제 커다랗게 웃었더냐 싶도록 실실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없어요, 애인."
비는 그치는 일을 잊었다는 듯 연거푸 내렸고, 그는 히터를 아끼려는지 아니면 내가 히터 켜는 걸 싫어하는 정도는 미리 다미안에게 주워들은 사람처럼 유리창을 약간씩 열어 두고 운전했다.
그 열린 창 사이로 빗방울들이 자주 날아들어 내 얼굴을 골고루 적셨다.
"후안 데 가라이로 지나갈래요?
후안 데 가라이 대로(大路)는 일방통행이고 신호가 일사불란(一絲不亂) 잘 연결되어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든 열려 있는 길이다.
4Km 남짓의 거리를 막힘없이 달릴 수 있는 길.
나는 막시에게도 언제나 그 길을 이용하도록 이미 오래 전부터 미리 지시해 두었었다.
논스톱.
계속 파란불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그 길을 즐겨 지나다닌다.
후안 데 가라이…….
모임의 S여인이 이민 왔던 맨 처음에 도무지 그 길의 이름이 외워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후안 대가리라고 기억했었다는 거리.
나는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한국어로 이름이라도 쓸 줄 아는 그에게 괜스레 고마웠다.
그 역시 더 이상의 말은 됐다 싶었는지 음악을 틀었다.
한국가요였다.
아마추어 수준의 아주 못 부르는 음색이었다.
나는 한국가요를 잘 안 듣는다.
특히 정오(正午)부터는 더 안 듣는다.
저 혼자 입력되어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흥얼대기 때문이다.
나는 새삼 희망하게 된다.
나도 안 듣는.
나도 못 들어 본.
나도 가까이 하지 않는.
그러한 한국가요를 단지 고객을 위해 준비하고 틀어주는 엘로이의 앞날에 밝고 환한 축복 있으라!!!
그가 어찌하여 레미세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꼭 성공적인 삶을 초대할 것만 같은 예감이 앞선다.
오가는 값.
기다린 값.
나는 그가 부르는 차비보다 훨씬 더 얹어 주면서 잊지 않고 내 특유의 농담을 건넸다.
"택시보다 엘로이의 차를 더 좋아 해서 가족이 끼어 탄 차비까지 더 얹은 값."
비는 여전히 퍼붓고 우리가 탄 엘로이의 자동차는 Chacabuco 공원 앞에서 신호 대기 중이었다.
옆 차의 조수석에서 현지인 청년이 내리더니 애인이 운전하는 차의 앞 범퍼 위에 하트모양을 역시나 왼손으로 그리고 떠나갔다.
애인은 그제야 우산을 펴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미소 가득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내 나라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싱그러운 장면들과 사실들에게 감동되고 매혹을 느낀 탓에 지금껏 남의 나라에서 잘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금요일이던 봄의 날.
그리고 토요일에 있었던 H교회의 결혼식꽃.
인생사 언제 어디서나 그러하듯 큰일들은 항상 겹치고 겹친다.
일 년 중 가장 꽃값이 비싼 시기(時期)인데도 어디서 그렇게 나타나는지 많은 우리의 한국인 청년들과 어느 정도의 현지인들을 만나보는 날.
무척 고달프면서도 참으로 감격도 되는 날.
봄의 날.
몹시 힘겨워 그걸 만든 사람을 원망하면서도 그걸 만든 사람과 내 고객들에게 새록새록 감사하게 되는 날.
나어린 친구 수산나에게도 일을 도와줘 감사했다고 따로 짚고 싶은 날.
외갓집에서 출생하여 이름의 앞에 외자가 붙는 다른 친구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어머니 날에나 제대로 돕겠다고 했던 날.
나는 며칠동안 지독하게 춥고 열이 많고 그리고 음식마다 모두 쓰디쓴 맛의 감기를 앓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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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저도 사사로운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에쿠~
진즉에 좀 감기 조심하라고 해 주셨더라면.ㅎㅎ
제가 평소엔 촌스러울 정도로 건강하다가 일 년이면 한 두번 감기를 심하게 앓죠.
날씬해졌어요.
입맛을 잃어서 당근 쥬스등으로만 버텼거든요.
큰 것에 감사하기는 쉽죠.
작은 일마다 감사하면 세상이 달라지죠.
님도 즐겁고 밝은 주말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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