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일 일요일
표준형 우울
맹하린
아침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인터넷 신문을 펼친다.
Google을 통한 본국 소식이다.
메인 뉴스의 제목이 큼직하게 가장 먼저 부각(浮刻)된다.
좋은 뉴스의 제목들을 단박에 손과 발로 제압(制壓)하고 나쁜 뉴스가 자주 윗자리를 점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며칠 동안 어린아이 성폭행한 뉴스가 커다란 사회적 초점으로 들끓고 있다.
한국이 왜 이러냐.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지탄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커다랗다 못해 목쉰 음성으로 변해가고 있을 지경이다.
너무 잦지만 이렇다 할 진전이나 명쾌한 대책이 안 보여 언제나 울분만 터지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세상이 그만큼 퇴폐나 죄악에 물들거나 멍들었다는 얘기이고, 사회통념이 많이 일그러졌다는 의미이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표준형 우울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뉴스들이 나오면 애써 외면하고 일부러 작은 뉴스들을 훑는 경향이 많다.
그것들조차 제목만 읽을 때가 대부분이다.
서양(西洋)또한 마찬가지다.
아르헨티나라고 특별히 비켜 가는 사안은 아닌 것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고 본다.
범법(犯法)행위의 25퍼센트를 성폭행이 차지하고 있는 시점(時點)이다.
주로 가족에게서 많이 당하는 실태(實態)다.
여성으로 태어난 죄(?) 때문에 아빠에게, 삼촌에게, 오빠에게 당하고 당하는 현실이다.
여성이 무슨 죄인가!
사실이 그렇다.
남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예는 전대미문(前代未聞) 아니던가.
몇 년 전 유럽에서 일어났던 스톡홀름 신드롬을 떠올리게 만들던 성폭행범사건을 비웃기라도 할 것처럼 아르헨티나의 지방도시에서도 아버지가 딸을 20여 년 동안 지하에 감금하고 자녀까지 여럿이나 낳았던 사건이 대대적으로 터졌었다.
엄마는 딸이 가출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딸이 몰래 보냈다고 수긍하며 키워낸 사람은 예전에 딸이었지만 엄마가 됐고 아빠의 부인도 되었던 엄마의 엄마였다.
유럽에서 일어난 사건은 사건도 아닌 것 같았다.
그때의 심정이라는 것은 소름 돋는다는 말밖에 더 이상의 표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그런 혈통으로 태어난 자녀들은 일생을 어찌 살아갈 것인지…….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성폭행 범들의 범죄동기가, 어려서 유사한 경험에 노출되었던 피해자에게서 생겨난다는 이론을 펴고 있다.
흔적(痕迹)이란 그토록 무서운 자국인 것이다.
원래 나쁜 일에는 시선(視線)을 고정시키지 않는다는 주의(主義)의 나지만, 사고를 당한 어린이의 이번 일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게임광인 엄마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쨌거나 엄마도 그 어린아이의 가족이며 피해자의 한 사람이다.
범인은 본인도 피해자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아마 그 어린이의 엄마를 빈정거리느라 해낸 역설(?)은 아니려는지?
자녀들에게 일류학교와 최고급 수준의 환경을 제공하는 일만이 최선(最善)은 아닐 것이다.
좋은 표양을 보이는 일에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率先垂範)해야 한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아빠도 하루에 한번 이상 자녀를 포옹해 주기 바란다.
성인(成人)이 되고 나면 그 포옹이라는 게 일 년에 생일이나 축하할 일로만 좁혀지게 된다.
어려서 해냈던 아주 간단하면서 시간이나 재물도 안 드는 포옹이, 때로 내 자녀에게 눈에 안 보이는 세상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는 것을.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까지도 지침(指針)이 되어 주는 것을.
내 자식이 소중하면 남의 자식을 더 귀중하게 여기는 풍토가 하루 속히 싹트기를 바라게 되는 간절한 염원을요즘 들어 특히 더 많이 하게 된다.
이러다 인간성이 멸종되는 세상이 도래하지나 않을까 겁나는 문화과도기적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전생이 아니라 이생에 매달린 거푸집들이 점차 푸석해지고 있지나 않은지 엄마들마다 새로이 각성해야 한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류는 세속적인 억압과 범죄의 잔혹함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견디어 나가는 양상이다.
물질문명은 발달했으나 몰지각한 범죄자들이 만드는 여러 위협적인 경계(境界)로 인해 세상은 자주 야만(野蠻)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소실점(消失點)들이 소실(消失)로만 흐르는 세상임을 모르지는 않으면서도 우리는 너도 나도 외면을 밥 먹듯 하며 살고 있다.
인권보호라는 말은 정치를 향한 정치를 위해서만 주창(主唱)되어서는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외면이 부끄러워진다.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우리의 2세나 3세들에게.
*스톡홀름 신드롬
-워키백과에서 펌-
용어의 기원
이 용어는 1973년 8월 23일 부터 8월 28일까지 스톡홀름 노르말름스토리(Norrmalmstorg)의 크레디트반켄(Kreditbanken) 은행을 점거하고 은행 직원을 인질로 잡았던 노르말름스토리 사건에서 이름을 따왔다. 인질들은 범인들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워졌고, 6일 동안 인질로 잡혔다가 풀려났을 때에는 인질범들을 옹호하는 발언도 했다. 범죄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가 뉴스 방송 중에 이 현상을 설명하면서 최초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썼다.
유명한 사례
• 미국의 언론 재벌 허스트 가문의 큰 딸 패티 허스트는 19세이던 1974년 2월 급진적 좌파 도시 게릴라 공생해방군(共生解放軍, Symbionese Liberation Army)에 납치되었으나, 납치범에게 감화되어 2개월 뒤 공생해방군의 샌프란시스코 은행 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패티 허스트가 1975년 9월에 체포되었을 때, 변호사들은 패티 허스트가 스톡홀름 증후군 때문에 범죄에 가담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79년 2월에 지미 카터 대통령이 형량을 줄여주었고, 2001년 1월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사면을 받았다.
• 엘리자베스 스마트라는 소녀는 정신이상자에게 납치되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성적 학대를 당하고 부인 행세를 하도록 강요당했다. 스마트는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에서 여러 달 동안 범인과 노숙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신체적 구속이 전혀 없는 상태였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범인과 같이 생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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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축구선수 메시가 이 가수의 노래를 엄청 좋아했다고 합니다.
맨 처음 축구협회에 선수 이름을 등록할 때, 원래는 레오넬이던 이름을 리오넬로 등록헸기 때문에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네요.
메시 선수 너무 멋집니다!!!
예술을 알아요. 메시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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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제말이 맞지요? 제가 왜 그렇게 강력범죄에 흥분을 했는지 말이에요.
인권은 인간이 누릴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강력범이나 성폭력범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 이니깐 그런 범죄자에겐 인권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강력범에겐 법정 최고형을 구형해 주먹보다,절제할줄 모르는 행동보다 법이 무섭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2세3세들에게 부모님의 관심이 다른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르헨님 말이 다 맞진 않아요.
어떤 범죄에 있어서도 사형은 반대랍니다.저는요...
그리고 세상이 너무 퇴폐적인 방향으로 많이 노출 돼 있어요.
야동, 게임,방탕,사치, 비도덕 등등.
이 나라의 성폭행 중 가장 높은 수위에 있는 범법자는 새아빠들이라고 합니다.
엄마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하는 엄마가 진정 엄마란 말인지요?
그점을 반문하고 싶어지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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