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3일 화요일

과연 수고했는가?




      맹하린


내 고객 중의 가장 연장자는 내가 목단꽃 어머니라고 불러 드리는 한국 어르신이다.
92세.
어제 아침나절에 내가 잘 아는 레미세로(대절용승용차기사)뚜르꼬(Turco=터키人)가 그분을 모시고 나타났다. 우리 가게에 오시기 위해  일부러 뚜르꼬를 부르셨다고 했다.
뚜르꼬는 별명이고 그는 카를로스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는데 모두들 그렇게 부르고 있다.
목단꽃 어머니는 내 또 다른 고객이 되는  A여인의 어머니시다.
꽃을 무척 좋아하시지만 특히 목단꽃을 가장 좋아하셔서 그런 별명을 받게 되셨다고 한다.
1년에 세 번쯤 오신다.
어제는 며느님의 생일이라 꽃바구니를 맞추러 오셨는데 꽃이 다 완성될 때까지 계속 그분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귀가 많이 어두워지셔서 커다랗게 소리를 높여야만 겨우 알아 들으셨다.
오실 때마다 하도 말씀을 편안하게 하셔서 사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분의 귀가 점차적으로 어스레해지다가 어둠의 골목길처럼 아주 캄캄해지는 중이라는 설명을 듣게 되자 나는 더욱 크게 소리를 높이게 되었다.

일요일마다 J교회에 다니시는데 어느 장로님이 당신의 어머니를 염두(念頭)에 둔 봉사와 기도의 힘으로 엘리베이터를 기증하여, 비록 지팡이를 의지하는 걸음이어도 2층에 있는 교회당에 드나들기가 한결 수월해지셨다는 감격이 잇따랐다.
기억력이 자꾸만 없어지는 중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셨지만 그분은 여전히 집주소와 따님의 전화번호 등을 달달 외우고  계셨다.
웬만한 반찬과 팥죽이나 식혜 같은 간식 등은 아직도 손수 장만하신다고 하셨다.
특히 목단꽃 같은 곱다란 미모는 평생, 그리고 항상 유지해 오신 분으로 보이신다.

우리 가게에서 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살고 있는,  따님을 본지도 꽤 오래됐다고 한탄처럼 말씀하셔서 나는 서두름을 감춘 여유로움으로 천천히  전화를 연결해 드렸다.
내가 중재 역할을 해야 했다.
한국말 통역이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며 얘기한 적이 평소의 내게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A여인은 어머니를 뵌 지가 몇 달이나 흘렀으므로 당장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지인 가정부만 있어서 믿고 맡기고  그럴 수가 없는 사정이라고 너무도  안타까운 심정을 고통처럼  토로(吐露)하고 있었다.
 
가족은 내가 특별히고객 접대를 해야 할 경우, 알아서 꽃을 꽂아 낸다.
나보다 더 꼼꼼하고 나보다 더 풍성하게 만드는 편이다.
나는 일단  빠르고 적절하게 꽂는 스타일이다.
급한 고객일 경우 둘이 함께 꽂아서 고객들이 빠르다고 감탄할 때도 있다.
꽃바구니가 완성되자, 나는 레미세리아에 전화를 했다.
웬만한 레미세로들은 다 알거라는 말씀이셨으므로 뚜르꼬가 없으면 다른 기사라도 보내달라고 부탁하자, 금방 오스칼이 왔다.
오스칼은 건축기사인데 불경기의 여파로 직장을 그만 두고 레미스 기사로 새롭게 일을 시작한 나이 지긋한 사람이다.
한인타운에 있는 레미세로들은 우선 내게 친절하다.
팁을 주는 한국인은 나밖에 없다고 퍽도 고마워들 한다.
꽃을 먼저 오스칼의 자동차에 싣고 지팡이를 짚으신 목단꽃 어머니를 조심조심 부축하여 뒷자리에 편히 앉으시도록  나는 일종의 사명감 비슷한 감정을 지닌 채  신중에 신중을 다했다.
자동차의 뒷문을 살며시 닫을 때 목단꽃 어머니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뜻밖의 인사를 내게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날개를 푸드덕 대는 새처럼 순간적으로 놀라 파닥였다.
1년에 세 번 정도만 뵈었고, 한 번도 내 이름을 알려 드린 일도 없었는데 그분이 남기고 떠난 참으로 아프던 말…….
"맹여사, 수고했어요! "
자동차가 떠나고 발길을 돌리는데 실제로 고국에 살아 계시고 연세 역시  92세이신  엄마를 떠나 보낸 심정이 되고 말았다.
 찰나적으로  눈물을 소나기처럼 후두두둑 떨어뜨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야 했다.

홀연 A여인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목단꽃 어머니의 기억력에 대한 얘기를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수고 했다는 말이 그렇게나 아린 말이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다.

일주일 전.
친구 수산나가 단감을 한 상자 사왔다.
그녀는 얼마나 나약하게 생겼는지 50Kg도 못되는 체중의 소유자다.
그래서 나는 몸도 약하면서 어찌 무거운 걸 사들고 다니느냐고 걱정을 얹으며 상자를 들고 있는 그녀보다 내가 더 무거워 하며  지탄처럼 말했었다.
그런데 수산나가 대답을 참 가볍게 해냈다.
"자매님한테 선물할 거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안 무거웠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한결 거뜬하게 했으며 금세 기분까지 안 무겁게 했다.
그런데 어제는 수고했다는 말이 나를 참으로 수고롭게 한 날이었다.

사실 나는 현실에 그다지 불만이라고는 없는 매우 단순한 사람이다.
눈물을 글썽이지 않으려고 거울을 보는 내 표정은 세상과 운명을 향해
가차 없이 질타를 퍼부었다.
(나여! 과연 수고했는가?)
어제 저녁 나는 꼼짝없이 원탁을 마주하고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바람과 파도에 자꾸만 휩싸이고 있었다.
목단꽃  어머니가 목단꽃 어머니가 아니라 나의 엄마였고, 현인(賢人)으로만 부각되어  보였던 날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 본 사람처럼 남아 있는 생애 가득 조바심도 번민도 멀리하면서  그저 흐름대로 흐르며 오로지 쓰는 일에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댓글 2개:

lovemate :

님도 저 못지않게 도인이 되어가십니다.ㅎㅎ
맨날 일상생활이 후회의 연속입니다.
가끔 "내가 지금 한가롭게 허송 세월을 보내고 있는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요.
앞으로의 몇 년이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고, 단 한 순간도 소홀하게 보내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저도 한마디하고 갑니다.'아르헨 과연 수고했는가?"

maeng ha lyn :

르헨님은 여태 나잇살이라는 걸 안 들어 보셔서 모르실지도~~~
살면서 가장 힘든 게 그거 같아요.
저한테는요.
그렇게 표시 내며 살기 싫거든요.
동아리에서 질서가 필요할 땐 살살 짚고...ㅎㅎ
결과는 진심어린 사과 받음...
그리하여 제 맘도 이윽고 잔잔.
조약돌도 아닌데 자주 갈고 닦으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일상!
제 가장 큰 걱정~
나로 인하여 상처 받지 말게 해야 한다는...
그러니 내 수고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