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9일 월요일

노아의 방주(方舟)





              맹하린


본국 꽃동네에서 사목을 담당하고 계신 신상현원장수사님을 위시한 수도자들과 봉사자들
열 두 분이 아르헨티나 당국의 초청으로 오신 길에 한국인 신자들을 위한 '행복잔치'를 여섯 시간 정도 마련하셨다.
7월 8일 일요일 오후 내내 일정이 잡힌 것.
범교민적으로 홍보를 했었기 때문에 자리를 못 잡을 수도 있겠다고 염려한 나머지 나는 12시 30분쯤 앞당겨  성당에 도착했다.
광장 쪽의 벽에는 깍두기를 곁들인 소머리국밥이 20페소(4달러 상당)라는 광고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식당 안은 주문하고 먹고 그러는 일에 열심인 신자들로 질서정연함과  북새통이 한통속처럼 들끓고 있었다.
가게에서 미리 점심을 들고 간 나는 곧장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이 미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가운데 쯤 자리를 잡았다.
끝나면 곧장 내가 선호 하는 앞에서 세 번째 자리로 옮길 생각이었다.
토요일에 있는 청소년 미사는 어쩌다 참례를 했었지만, 어린이 미사는 난생 처음이어선지 흥미 그 자체였다.
어린이들의 크고 작은 키와 옷차림의 자유 만발과 표정이나 앉고 선 자세가 얼마나 역동적(力動的)이면서  활기에 찬 물결 되어 출렁이던지…….
그리고 강론 대신 주일 학교 교사인 두 사람의 청년이 각각 마이크를 잡고 제대 밑을 종횡무진 오가며 어린이들을 온통 사로 잡고 있었다.
그렇게 연극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서반아어와 한국어를 번갈아  질문하면 너도 나도 손을 들어 기발한 발언을 진솔하게 해내던,  흡사 어린이 법정과도 같던 무대란  참으로 새틋했고 보기에 흐뭇했다.

평화의 인사 시간에는 여기저기 무작위로 몰려들어 동그랗거나 길게 서서 각각 잡은 손을 앞뒤로 흔들며 성가를 부르고 불렀다.
전혀 구속이라고는  없고  활기로움만  가득해서 퍽으나  풋풋하던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어른들로 치면 영성체를 받을 시간이 되자, 아직은 자격미달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줄서서 앞으로앞으로  나가고 있었으므로 나름 찰나적으로 꽤 의아해 하며 고개까지 갸웃 했었다.
그런데 어린이 미사를 집전하는 전보근(안드레스) 보좌신부님께선 아이들을 하나하나 포옹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믿음의 마음을 씨 뿌리듯 심어주려는…….
아름답다기 보다 빛나는 것도 같았고 비 온 뒤 떠오른 무지개를 아득히 올려다 보는 감격과도 흡사했다. 
키가 작은 세 살이나 너 댓 살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몸을 숙여 정겹게 안아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내가 새롭게 도달한 별 나라와 다름 아니었다.

예전에 현지인 성당에서…….
내 앞에 서서 영성체를 기다리던  현지인 남자의 품에 안겼던.  아직은 영성체를 영할 나이가 한참이나 미달된 어린이가 입을 새 새끼처럼 벌리자 잠시 찰나처럼 상념에 잠기던 현지인 사제가 축성 되지 않은 밀 떡을 다시 가져와 그 아이의 입에 넣어 주던 광경 이라거나,  미사 시간에 제단 위의 계단에 엎뎌서 놀던 현지인 어린이 라거나 , 정신이 약간 이상한 여인이 현지인 신부의 강론 시간에 바로 2미터 앞에서 신자들을 향해 연신 제스처를 보이던 잔상(殘像)들…….
(그 여인은 아마 수화(手話)를 할 줄 알던 여인 이라기 보다는 스튜어디스 출신이지 싶었다,)
그러 저러한 편린(片鱗) 들 까지  자꾸만 오버랩 되며 아웃 포커스로 내 시야를 흐릿하도록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현지인 성당은 특히 신자들 대부분의 돌출 행동에 전혀 간섭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아서 그런 일들을 발견할 때마다 껴안게 되는 잔잔한 감동을 한동안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최근 들어 아는 사람들 모두를 만나는 순간마다 포옹해 주고 포옹하려는 게 새로 생긴 지향(指向)으로 굳혀졌고 습관처럼 익숙해져 버렸다.
그런 이유로 어린이 미사의 그러저러한 장면들이 더욱 마음에 각인되듯 새겨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꽃동네 수도자 들과 봉사자 들의 '행복 나누기' 시간에는 옆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노아의 방주(方舟) 라는 율동을 함께 해내는 순서가 있었다.
각자의 옆에 앉은 사람과 오른 손이 오른손을 , 그리고 왼손이 왼손을 엇갈리게 잡고  같은 손이 되어 방주(方舟)가 되어줄 나무를 톱 질 하고 망치 질도 하며 간지럼까지 태워보는 무용을 노래에 맞춰 표출했었다.

휴식 시간이 되자 나는 살짝 빠져나와 가게로 돌아 왔다.
만약을 위해서 그러겠노라는 언질(言質)을 남기고 나섰던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예약도 없이 닥친 약혼식 꽃등 주문이 여럿이나 밀려 있었다.
내가 부재(不在)중이면 주문이 밀리는 현상(現狀)은 하루 이틀 이루어져 온 일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더욱 자리에 없어야 할 때를 만들어야 할 것도 같다.
약혼식 꽃은,  중앙에 놓일 사방화를 내 판단에 의해 하나 더 만들어 냈다.
사방화가 안 보이는 약혼식은 어딘지 모르게 썰렁할 듯 여겨져서다.
물론 넉넉하게 책정해 놓고 간  값이어서 더욱 그러고 싶었고…….
그 고객들은 사방화로 할까 바구니로 할까를 한참이나 망설였다는 얘기 때문에 더 그랬었다.
6시 30분쯤 찾으러 온 젊은 커플이 너무나 고맙다고 예쁘다고 환호 할 때, 나는 사방화를 차안에 실어주는 센스 또한 잊지 않았다.
어떤 고객들은 그럴 때 지나친 과민 반응을 나타낸다.
(아이고, 참.)
본인들이 더 어리고 젊다는 얘기다.
나는 단지 짧게나마 꽃을 제대로 보호하려는 심리 상태인 것을…….

어제의 '행복 나누기' 시간은 주위 사람 20여명을 포옹 하라던 순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포옹하면서 보았다.
누구나의 눈 가득  물결이 출렁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의 눈은 강이 범람하고 있음을...... .
특히 어린이 미사에서 어린이들마다 껴안아 주던 보좌 신부님의 자애로운 모습 역시 오래토록 기억에서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사는 일 팍팍할 양이면 일부러 틈 내어 어린이 미사에 참례할 작정 같은 걸 굳히게 된다.

우리 인류는 너무 뜬금없는 지역에까지 어느 듯 흘러 와 있다.
우리 서로가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너도 나도 솔선수범해야 할 시절(時節)이다.
현대(現代)는…….

사랑은 정드는 것이라고들 한다.
사랑을 잃을 수는 있겠지만 정(情)은 못 잊는다는 인식(認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싸울 수 있는 것도 은총이지 싶다.
안보이게 마주 잡은 손으로 우리 모두 안 보이는 '노아의 방주(方舟)'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고  뒤늦게 바라게 된다.
어찌 됐건 인생은 오늘도 새로 시작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이제 세상을 떠 먹기만 해서는 안 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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