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5일 수요일
침향沈香
맹하린
교민들이 운영하는 여러 식당들의 대다수가 그렇지만, H 회관이 특히 우리 가게에 주문을 많이 한다.
다른 식당들은 돌이나 칠순이나 행사를 어쩌다 치르지만 H 회관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잔치나 행사가 있다.
가장 큰 홀을 갖췄다는 이유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꽃을 납품할 때면 D 정의 아주머니는 그런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읍시다.”
H관 아주머니는 가끔 김밥이나 튀김을 종이 상자에 싸준다.
H 회관의 아주머니는 불고기나 굴비나 반찬을 매번 친정 식구처럼 챙겨준다.
어리석음을 나타내고 싶은 성격은 아니라서 나라는 사람은 누가 뭐든 주고 싶어 하면 일단 고맙게 받는다.
한국의 시골에서 사목하던 어느 외국인 신부님은, 신자들이 가져다주는 밀주나 탁주를 앞에서는 고맙게 받고 뒤에서는 냇가에 다 쏟아 버렸다던가.
마시기 싫어서가 아니라 못 갖다 주는 신자들에게 미안함을 덜어 주려는 처사였다고 한다
H 회관의 불고기는 매우 진한 양념 맛이고 너무 단맛이라서 나는 그걸 받으면 고맙게 잘 먹겠다고 좋아라, 가져와서는 사실은 이웃에게 모두 나눠 주고 만다.
받는 일이 불편하고 거북스러울 땐 4시 이전에 간다.
그 시간엔 종업원들만 일하고 아주머니는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워드 작업을 하는 중에 친구 J가 전화를 해왔다.
여러 가지 불경기의 압박감 때문에 며칠 동안 밥맛을 잃었다고.
마른 백설기 한 쪽을 조금씩 떼어 먹는 일로 점심 식사를 대신 했다고.
진정 말라버린 백설기와 같은 파근파근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명심보감의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智慧가 자라지 않는다는 명언이 순간적으로 떠올랐지만 말없이 그녀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일에만 충실하고 있었다.
장마, 가뭄, 총기 난사, 인명 살상, 불황…….
이보다 더 극한적인 상황이 따로 없어 보일 정도로 세상은 온통 대형 사고의 연속이다.
재난이나 날씨의 변동變動, 그리고 불경기의 여파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생활 터전을 홍수로 넘치게 하거나 가뭄까지 겪는 사태처럼 허우적 대게 만들고 있다.
일요일의 퇴근무렵.
문협 회장이 종신 선생을 가게로 보내 줬다.
그의 자동차로 김한식 선생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장소인 장의사에 다시 가야 했다.
아침 나절에 이미 혼자서 다녀왔었다.
단체로 가는 저녁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나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낸, 일종의 배려라면 배려였을 것이다.
장의사에선 L 선생과 나란히 앉아 한참이나 얘기를 주고받았다.
문협 후배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불현듯 깨닫는다.
내 주위에 존재하는 내 문우들과 친구들과 그대들의 소중함에 대해서다.
내게 문우들과 친구들과 그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되돌아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은총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기에는 상당한 고통이 동반되기도 한다.
L 선생과 얘기 하는 도중, 나는 여러 번 얘기의 가닥을 다독이듯 추스르고 있었다.
침향沈香…….
오랜 세월 동안 맑은 강물이나 땅 속에 묻어 두었던 참나무를 바람에 정성껏 말린 뒤에 얻게 되는 향이라고 한다.
내 문우들과 친구들과 그대들이 내 마음에 참나무 여러 토막 묻어 두었나 보다.
나의 행복은 오늘 유난히 사색적思索的인 표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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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침향' 그 냄새가 어떤지 맡아 보고 싶어집니다. 오랜 벗 만큼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건 드문 듯 합니다. ^^
오랜 벗...
한국에 가서 동문들 만나 보니 오랜 벗이 아니라 묵은 벗이면서 서먹한 벗이더이다.
최근의 우리를 가장 잘 챙겨 주는 벗이 특히 오랜 벗인 듯 여겨집니다.
침향은 소나무 향처럼 은은하면서 질리지 않을 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휴가를 보내셔셔 타셨겠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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