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3일 월요일
나의 생일
맹하린
토요일.
S 교회의 결혼식 꽃 장식을 맡아 무척 분주하게 지냈다.
그런 와중渦中에 김한식 선생의 부음訃音을 받았다.
88세.
5~6년 동안 거동이 불편하셔서 바깥 출입을 못하고 계셨었다.
그분에게는 초대初代라는 직책과 명칭이 여럿이나 따랐다.
초대한국학교 교장.
문협 초대회장.
J교회 원로 장로.
평통 초대 위원.
그분의 가슴에 하트 형 꽃 장식 하나 안겨 드렸다.
내가 지인들의 떠남마다 안겼던 하트 형이나 십자가 형 꽃 장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우리 가게를 통해 납품 되었던 문협과 H 한의원을 포함한 장례 화환들이 열 개 정도 되었다.
특히 그분이 몸담고 계시던 J 교회와 , 1년 전 분쟁으로 갈라져 나간 교회와 이도 저도 껄끄러워 자녀 분들이 옮겨간 S 교회에서 각각 보내온 세 개의 화환은 내게 많은 격세지감隔世之感 은 물론이고 짧은 묵상黙想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동분서주東奔西走 바빴던 날이 하필 내 생일이었다.
원래 생일을 티 내며 지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점심에 달랑 미역국만 끓여 먹었다.
하필 내 생일에 돌아가신 분까지 계셔서 더욱 내색을 삼간 생일이었다.
덜 바쁜 날...
내가 나를 위해 주고받는 선물 하나 사면 된다.
새 옷 사는 게 너무 아까워 아마 헌 옷 하나 사게 될 것이다.
오후에는 어떤 청년이 전화를 해왔다.
150페소(30달러 상당) 정도의 라운드 형 꽃다발을 일식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배달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럴 경우 나는 꽃의 용도를 꼭 묻는다.
내 딴엔 격에 맞추기 위해 그러는데, 어떤 고객들은 왜 알고 싶어 하느냐고 묘한 과잉 반응을 보내온다. 그러면 나는 으레 친절하게 답한다.
“좋은 날이시면 꽃을 더 예쁘게 해 드리려구요.”
그분은 미리 생일 선물이라고 말했었다.
(나와 생일이 같은 분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우루과이 수입 장미를 소국과 안개로 감싸고 비싼 탓에 잘 사용하지 않는 한국산 마직麻織으로 포장했다.
나와 생일이 같은 이에게 안 보이는 축하를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친구 하나가 퇴근 시간 무렵 전화를 해왔다.
“어떻게 지내?”
나는 마치 내가 먼저 전화를 했던 사람처럼 그녀의 안부를 가로채듯 묻게 되었다.
“빠삐용!”
그녀는 골프 치며 주워들은 최신식 용어를 잘도 내게 전달한 것이다.
빠지지 말고
삐치지 말고
용기 있게 살자는 뜻이라는 설명이다.
“자기는 어떻게 지내?”
“나? 나라고 하는 자기는 그럭저럭이 매 일반이지.”
“하하하.”
하마터면 사실은 오늘이 내 생일이야, 그렇게 실토할 수도 있었으려나...
일요일.
이웃에 위치한 바다 가게에서 보라색 상의 하나를 건졌다.
흠이라고는 없고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새 옷 같은 헌 옷이었다.
50페소(10달러 상당)의 매우 착한 가격이었다.
새 옷과 다름없어 옷도 마음에 들었고 가격도 마음에 들었고 나의 생일에 관한 처신도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내 자격과 모양새와 위치를 잘 알고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몇 번인가 짚었던 일이지만 나는 양력 생일과 음력 생일을 모두 챙긴다.
음력 생일이 되는 8월에는 작은 케이크도 하나 사고, 미역국은 한번이면 됐으므로 내가 좋아하는 잡채와 겨자채를 준비해야겠다.
가족과 쉬쉬 비밀스레 나눠 먹는 생일 맛이란 참 유별난 기분을 안긴다.
하루하루 사는 게 왜 이리 갈수록 섬세하며 특별한 느낌인지 모르겠다.
내게 생일이 있어 감사하고 두 번이나 챙길 수 있는 내 에너지 낭비이며 일종의 연약한 착상着想 또한 감사하다.
해마다 그랬지만 올해의 생일은 특히나 눈물 뚝뚝 흐르던…….
너무나 감격적인 생일이었다.
문명文明의 이기利己 속에서 권태倦怠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이 되는 내 두 번의 생일…….
내게 생일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일 년에 두 번 치르는 충전작용充電作俑, 바로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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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늦었지만 생신 축하합니다.
김한식 선생님 저도 뵙 적이 있어요.참 인자하신 분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님께는 잊어버릴 수 없는 날이 되었네요. 좋은 것인지 슬픈것인지 알수 없지만 좋은 쪽으로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축하 감사해요.
김한식 교장 선생님 참 인격적이시고 인간미가 살아 계셨던 분이셨어요.
특히 소풍 갈 때 장소 선정에 많은 조언을 주셨던 분이셨죠.
네. 제 생일날 돌아 가신 분이시라 더 기억에 남을 분이실 듯해요.
제 생일날은 헤밍웨이가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네요.ㅎㅎ
아무리 그래도 저는 제 생일을 뒤늦게라도 축하해 주셔서 더 감격°°° .ㅎㅎㅎㅎ
어, 생일이셨네요? 전 더 늦게 축하드리게 되네요.하마터면 내년 생일 가까울 즈음에 축하 드릴 뻔... ^^
감축드리옵나이다! 맛있는 것 많이 드셨지요? ㅎ ㅎ
가만히 뵈면이 아니라 자세히 봐도 님께서 저보다 훨씬 아시는 분 많으실듯 해요.
그런데 가족과 함께 지내시는 모습 멀리서도 보기 좋아요.
생일 추카해주셔서 감사!
뒤늦지 않았어요.
일년에 생일 두번 챙기는 생일욕심어린이 같은 어른?ㅎㅎ
생일이 있어 우리가 태어났죠.
그러니 맛있는 것도 해먹고 그래야 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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