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7일 토요일
아사도(Asado=숯불 갈비)
맹하린
1991년
이민 온지 두 달이 가까운 어느 토요일.
C중령(공군중령 출신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호칭했다.)댁에서 저녁초대를 해왔다.
그댁을 방문한 우리 가족은 많은 한국교민들도 반가웠지만, 식탁에 놓여진 금방 버무려 내놓은 듯한 겉절이가 더욱 반갑게 여겨졌다.
(지금은 무나 배추가 사시사철 흔하지만 이민 초창기에는 고작 양배추나 홍당무로만 김치를 담아야 했다.)
배추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쉽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식사가 시작될 때 보니까, 밥은 기본이었지만 반찬이라고는 날김치와 야채사라다가 전부였다.
곧 이어 두툼하고 기다란 고깃살의 중간중간에 손가락 길이의 직사각형 뼈들이 울타리처럼 뺑 둘러 있는 아사도라고 불린다는 숯불갈비가 나오긴 했지만...... .
그렇게 기다란 장난감 기차 모양의 갈비를 작으만치 50Kg이나 구웠다고 했다.
넉넉하게 준비했으니까 많이들 드시라는 C중령내외의 인사말에 우리처럼 이민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환호에 가까운 탄성을 너도 나도 터뜨렸다.
숯불에 구웠다고는 하지만 굵기가 어른의 팔뚝만큼 두툼한 데다 시간을 넉넉히 두지 않고 익힌 탓인지 겉은 꺼멓게 탔는데 속은 설익어 있어 그야말로 불에 그을린 냄새까지 골고루 스며 있었다.
더 잘 익은 줄갈비로 바꾸는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까 정원에 차려진 식탁 주위는 매우 산만하고 소란스럽기까지 하였다.
줄갈비.
그랬다. 팔뚝처럼 길었고 줄토막이었으니까 그렇게 불릴만도 하지 싶었다.
이민 온지 몇 달이 안 됐다는 사람들이 주로 많아서 모두들 별식을 만난 듯 열심한 모습으로 식사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워낙 채식을 즐기기도 하지만 낯설고 정성이 담기지 않은 음식이라는 느낌을 못버려 도통 서먹서먹할 뿐 아니라 말 그대로 낯설고 물설어 엉거주춤한 기분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생김치와 야채사라다 맛이 매우 그럴 듯해서 그런대로 저녁 한끼를 거뜬하게 해결한 셈이긴 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조화(造化)속인 것일까.
그렇게 질색하며 우습게 생각되던 아사도 맛이 가끔은 그립게 생각되는 기분이라니.
하물며 현지인들은 주말만 닥치면 곳곳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숯불을 피워대는 것이었는데 숯을 피우는 연기가 퍼진 얼마 후에는 갈비 익는 냄새가 여기저기 진동하고는 했다.
희한하게도 C중령 댁에서 그렇게도 경원(敬遠)시 했으며 윈시인들이나 즐기는 야만스러운 음식으로 치부했던 아사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후각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 숯불냄새만 맡아도 반사적으로 미각(味覺)전체를 흔들어 놓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내게 변명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아사도 맛은 어떤 건지 직접 겪어 봐야 해.)
시장에 나가 아사도 판을 가장 작은 것으로 구입하고 5Kg들이 숯도 두 봉지 사고 푸줏간에 가서 갈비도 서너 줄 샀다.
갈비의 길이가 7센티 간격으로 기다란 토막이 이어지는 줄갈비가 되도록, 푸줏간에서는 전기톱에 알맞게 잘라 주었다.
값은 좀 비쌌지만 뼈가 동그라면 송아지갈비라고 해서 일부러 뼈가 둥근 송아지 갈비로 달라고 주문을 했었다.
줄갈비 네 줄이 5Kg이 조금 못되었는데 한국과 비교하면 무진장 저렴한 가격이었다.
5Kg에 3달러도 못 됐으므로.
그런 이유로 우리 이민자들에게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이나 밑반찬보다는 고기 반찬을 준비하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손쉽고 저렴한 가격의 음식으로 손꼽히게 되는 모양이었다.
숯불의 화력이 왕성할 때에 갈비를 얹으면 겉쪽은 태우고 안쪽은 설익는 불균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불의 왕성한 기운이 적당히 가라앉을 무렵에야 비로소 아사도 판의 널따란 석쇠에 갈비의 살 부분이 불쪽에 닿도록 얹는데, 천일염이 아니고 소금산에서 생산되는 왕소금을 살코기 쪽에 술술 부려주거나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서 굽기 전에 미리 뿌려두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에 레몬을 반으로 잘라 갈비위에 레몬의 생즙을 적당하게 뿌려 주면 고기의 맛을 상큼하게 해줄 뿐아니라 고기의 결을 찰지게 익히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이윽고 아사도 판에 얹힌 갈비위에 깨끗한 신문지를 몇장 쯤 포개어 올려 놓는데, 신기하게도 종이나 신문은 타지도 않고 화기(火氣)의 분산(分散)을 막아 주면서 고기를 부드럽다 못해 감칠 맛 있게 구워내는 효과까지 가져다 주는 것이다.
거친 불결도 이미 가라 앉은 데다가 아사도 판 자체가 높낮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반 자동의 편리함을 갖추고 있어서 구태여 뒤집을 필요 없이 그런 식으로 한 두시간 정도의 끈기를 갖고 기다리면 골고루 잘 익혀진 기막힌 맛의 불갈비를 맛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아사도를 굽는 일은 어떤 면으로는 끈기와의 한 판 대결이 아닐 수 없다.
여유와 침착과 은근함을 내포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국민성과 결코 다름이 없는...... .
옵티미즘(Optimism=낙천주의)에 젖어 살기를 생의 첫 번 째 목적으로 삼아내는 남미인들의 정서적 기질은 가장 현명하고 참을성 있게 불황이라는 불황마다 매우 잘 견뎌내는 실정이다.
불경기를 그러한 여유를 가지고 극복해 내는 반면(反面), 아르헨티노들은 잘난 척 있는 척을 못견뎌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한 들 "아사도 꼬챙이를 삼킨 사람처럼 몸이 뒤로 젖혀져 있다"고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나면 그만이기는 하지만.
늠름하고 대담무쌍한 야성적 기질을 전통처럼 갖추고 라플라타강 유역을 옮겨 다니며 방랑생활을 해내던 Gaucho(라플라타 유역에 살던 원주민).
그들 가우초들이 굵은 통나무에 불을 지펴 사냥으로 얻은 짐승을 불 옆에 세워 둔 장대에 걸쳐 놓고 오랜 시간 구어낸 데서 아사도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우초시대에는 병균을 몰아내고 소독을 겸하는 방편과 원리가 맞물려 모든 조리과정이 불에 굽는 것으로 대체했다지만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굳이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아사도를 선호(選好)하는 아르헨티노들과 한국교민들을 지켜보노라면 모든 인간들의 잠재의식(潛在意識)속에는 어떤 면으로는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생활을 그리워하고 가깝게 당기어 음미해 보려는 보상심리 같은 게 작용(作用)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게 된다.
가우초들이 지펴내던 화톳불의 열기(熱氣)가 지금껏 아스랗게 그 맥락(脈絡)을 이어 온 것은 아닐까?
어디선가 숯불 피우는 냄새가 전해져 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불현듯 아사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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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개:
참 특이합니다. 불위에 있는 고기위에 신문지를 올렸는데 타지 않는 것도 신기하고 사진에 나온 수없이 많은 고기덩이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궁금하고 그렇네요.
아사도 조리법을 함 찾아봐야 겠군요. ^^
제가 이 글을 써냈을 때 너무 길었기 때문에 많이 축소 시켰더니 세워놓은 고기덩이들이 그릴식당에서 굽는 방식과 모양인 걸 빠뜨렸네요.
님의 블로그에 나온 고기도 오븐에서 오랜 시간 구우셨듯이 저 그릴 식당과 아사도의 굽는 방법역시 오랜 시간을 소요하면 타지 않고 입에서 녹는 매력적인 묘미를 느깨게 하는 아사도가 된다고 봅니다. 한 번 해보세요.
그런데 아사도는 특히 이 나라의 고기가 최고같아요~~~숯불은 활활이 아니라 은은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도 요즘은 값이 꽤나 높아졌답니다~~~
얼마전에 공원에 놀러 갔었습니다.역시나 몇몇 현지인들이 아사도를 굽고잇는데, 가만히 빠리쟈를 들여다보니 고기도 갈비가 아니 싼고기에다, 거의 쵸리소와 닭이 전부인걸 보며 '아르헨티나물가 장난 아니게 올라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예전엔 갈비도 푸짐하고 사람 인심도 푸짐했는데, 지금은 그런풍경을 보기가 힘들정도 입니다.그만큼 아르헤티나 경제 사정이 안좋아진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저는 아르헨티나 체질이 아닐까 가끔 스스로 자문하면서 놀라요.
고기도 양념불고기 보다 아사도나 소금구이를 즐기거든요.
로스비프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후라이팬에 볶아요. 중간에 생긴 물은 버리고 다시 식용유를 둘러 볶죠.
바짝 익으면 참기름에 후추와 소금 넣어서 들어요. ㅎㅎ
고기도 그런 것 같아요.
비싸니까 왜캐 맛이 근사한 것일까요?ㅎㅎㅎ
교정합니다.
왠만하면 그냥 두겠지만 맛의 차이가 너무 클 것 같아서요.
참기름에 후추와 소금을 섞은 단백한 양념에 찍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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