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담쟁이처럼
맹하린
지난 주말의 사흘을 무척 분주하게 보내고, 오늘은 아르헨티나 주요 노총들이 주도하는 총체적 파업이 실행되는 날이라서 그럭저럭 한가하게 보내고 있다.
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치러질 결혼식 꽃장식이 하나만 잡혀 있어도 빠듯한 편인데, 신성교회와 시온교회 두 군데나 담당하게 됐었다.
그날 우리 교민사회에는 세 곳이나 결혼식이 있었다.
천주교 영세식도 같은 시간대에 겹쳐 있어 준비와 장식과 정리과정으로 잠자는 시간 빼고 3일 동안 1분도 쉴 새 없이 일했다.
친구들에 대해선 주말이 더 바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최대한으로 존중해주며 가족과 둘이서만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웨딩 샵에서 치장 중이던 신부에게 전달되어야 할 부케를 J교회의 신부에게 전하게 되는 배달사고가 발생했다.
그럴 경우 나는 배달을 해준 레미스기사에게 전혀 내색을 안 한다.
모든 걸 내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신부의 이름만 적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걸 예상하고 다른 신랑신부처럼 친구나 누구를 보내 달라고, 나는 바쁠 때면 넋이 나갈 지경이라며 누누히 부탁했건만 참 알뜰하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나를 부려 먹는 우리의 2세들.
5시에 보낸다는 부케가 어찌하여 아직도 도착되지 않았다고, 결혼식이 임박한 시간인 7시 전쯤에야 연락을 받게 된 나는 레미스를 타고, 차안에서 다른 부케를 만들며 식장을 향해 찾아가는 일까지 단행하게 되었다.
가게의 매장엔 영세를 축하 하려고, 주문도 없이 줄을 선 대여섯 분의 어르신 교우들...
나는 단지 시간을 단축하면서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부케를 전달하기 위해 가족에게만 맡기고 레미스를 불러야 했었다.
아리엘이라는 30대이고 머리까지 긴 현지인 기사는 바쁘고 정신이 없는 내게 가는 도중 내내 말을 시켰다.
현지인 신혼차가 리본을 단채 두 대나 지나갈 때마다 내게 소리치며 감탄 역시 아끼지 않았다.
“리본을 단 결혼 차 또 지나가요!”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좀 하라고 잔소리 하는 성격은 아니다.
어떤 면으로는 내게 숨통을 좀 트이게 하려는 작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뭐든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긍정쟁이임을 자인한다.
거기까진 봐주겠는데, 내게 라몬 팔콘 3200대를 가자면 어느 길을 이용해야 제대로 가느냐는 질문까지 빗발쳤다.
(아이고 , 세상에나! 누가 운전기사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네!)
“우선 후안 베 알베르디 거리로 접어드세요. 라몬 팔콘 거리는 일방통행으로 오는 길이고. 후안 베 알베르디는 역시 일방통행이면서 가는 길이지만 번호가 일괄된 편이니까요.”
“아뇨, 내 얘기는 그러니까 후안 베 알베르디에서 어느 길로 돌아야 라몬 팔콘 3200대에 접어들 수 있느냐는 거죠.”
“한 두 블록 더 간들 어때서요? 그 정도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미리 겁내는 건가요?”
그는 그제야 내비게이션을 튼다.
대다수의 레미스 기사들은 내비게이션을 어쩌다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음악을 듣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일까.
신성교회에 닿아 3층에 위치한 예배 실에 서둘러 오르려고 나는 어땠는가.
길고 커다랗던 엘리베이터를 나보다 느릴 거라고 순간적으로 불신하며, 새하얗게 반짝이던 대리석 계단마다 조리신발로 탕탕대며 뛰어 오르던 나의 슬리퍼 소리가 교회전체를 강압적으로 울려대던 느낌이 유난히 강했었다.
내려올 땐 죄인처럼 살금살금 고개 숙인 채 내려오던 내 모습이 새삼 그림으로 뒤늦게 떠올라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나는...
하물며 양복들을 좍 빼입고 1층의 현관에 서서, 합창으로 나의 그런 모습을 웃어 주던 청첩인들의 약간 높던 웃음소리가 이제서야 놀림과 같이 들리고 있음에랴.
하객들이 도착하기 전에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중이던 신랑신부에게 부토니아와 부케를 전하며 환하게 불이 켜진 예배당 안의 꽃길과 강대상 주위에 장식된 꽃들을 새삼 둘러보던 나의 내면에도 환하게 불이 켜지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도 같다.
다행이다.
그토록 열정을 바쳐 일하고도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마다, 몰라보게 거뜬한가 하면 멀쩡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타고난 노동자의 신세에 매우 걸맞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지친 넝쿨이 아니라 강한 생명력으로 의지를 펼치는 담쟁이처럼...... .
최근 아르헨티나 인터넷 미디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膾炙)되던 Paro General(총체적 파업), 오늘은 바로 그날이다.
지난 1년간 소비와 투자가 최악인 사회현상 속에서 나는 지독하게 바쁘거나 마냥 한가한 날들을 마치 하루처럼 몰아서 겪어내고 있었다.
내게 일주일은 하루와 같은 개념(槪念)으로 흐르게 된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개선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생활조건을 지금이라도 보상해 달라는 기치를 내 걸며, 아르헨티나노총이나 지식인들은 한 달이 멀다며 시위를 벌이고 파업을 단행하고 있다.
흡사 전염병의 만연처럼 강도들의 활약 또한 극성이 지나치며 이미 도를 넘은 수준이다.
생활조건의 개선은 극단주의자들과 시위단체를 근절시키기에는 너무 벅찬 과제처럼 보이는 현실이다.
민주주의 질서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그러한 염원이 폭력이나 시위를 지원하는 노조단체들의 논리적 토대(土臺)를 축소(縮小)시키는 사회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또한 그러한 모티브들이 결집되어 선량한 사회를 구축하는 계기(契機)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오늘을 맞고 보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여러 면을 포착하면서 시대의 격변에 빈틈없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다지 북새통을 만들며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현 시대의 우리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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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수고 하셨습니다.
항상 토요일이 제일 바쁜신것 같네요.. 결혼식 때문에.
요즘 경기가 더욱 악화 되습니다. ㅡ.,ㅡ;;
여기저기서 힘들다고 난리인데, 강도까지 극성이니 사람들의 불안감은 이룰 말할수 없어요. 경기가 얼마나 안좋으냐면 빈가게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연말 지나면 더 심각해 지겠죠? 사는게 바쁘니 언제나 사는 얘기만 하네요.
즐거운 밤 보내시길..
수고는요!
제 일이고, 일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이민자입니다. 저는...
항상 느껴오는 거지만, 불황에는 크면 클수록 타격이 비례하는 것 같아요.
올해는 12월인데도 만만치 않은 듯 합니다.
상연회 게시판을 보면 작년 이맘 땐 저렇지 않았는데, 난다뜬다 하는 분들의 한숨이 눈에 보입니다.
사는 얘기...
사는 얘기가 젤 중요한 얘기니까요.
좋은 오늘 되시기를~~~
고용주와 노조간의 밀고 당김도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겠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며 하는 것이 건강한 것 같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만드시는 꽃장식...마치 007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이 넘쳐 독자의 손에 땀이 다 납니다. ㅎ ㅎ ㅎ
정치인들의 술수를 배우고 싶진 않으나, 어딘지 모르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일 땐 참 맘이 그렇습니다. 최근의 디폴트에 임박한 상황 역시 배 째라! 하는 수법 같아집니다.
손에 땀 나셨나요?ㅎㅎ
제가 이러고 삽니다.
그런데 주말이라 첨 이용하는 한국인 운영의 현지인 기사였는데 내공이 보통은 넘더군요.
(전 모르는 기사와는 항상 통성명을 해요. 그럼으로 해서 친근감을 남기죠.)
제가 너무 바빠서 실수할까봐 슬슬 짬을 얻도록 유도하는 면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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