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7일 수요일

11월 8일...


         맹하린


아베쟈네다 지역에 둥지를 틀었던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옥상에서 어스름이 내려 앉기 시작하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커피와 간식을 들고 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검정색의 긴 모직코트에 역시 검정인 약간 긴 모자를 쓰고 수시로 지나다니던 유태인 랍비들을 보며 나는 아들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들은 신앙심 때문에 이 땡볕에 저런 차림으로 나다니는 거니?"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 믿기 때문이죠."
그 무렵 신앙생활에 자주 갈등을 겪던 남편이 옆에서 실토하듯 말했다.
"하느님이 한 번이라도 보인다면 나는 의심 없이 더 확실하게 믿을 수도 있을 텐데……."
매사에 우리 내외의 사부역할에 충실하던 아들은 그리도 명쾌하며 적절한 답을 ,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산뜻하게 풀어냈다.
사실, 우린 아무 것에도 문외한이고 뭐든 잘 모르는 것처럼 간접적인 논술교육을 그런 식으로 유도하는 시간을 즐겨 가졌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빠!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의 저 나무들을 좀 보세요. 저 나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바람의 모습이 아빠 눈에는 안 보이시죠? 사람은 나무이고 바람은 하느님이십니다. 신을 기필코 확인하려고 주장하는 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돼요.  바람이 누구에게나 보인다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교회신자가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신을 보아내고 믿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믿음 아닐까 싶어요."

11월 8일에.
아르헨티나 중도좌파정부에게서 극우파이며 쿠테타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우두머리들이라고 불리는 세력들, 그들이 주요도시에 운집하여 대대적인 냄비시위를 벌이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경고하듯 포문을 열고 있는 와중이다.
어떤 변수와 파장을 몰고 올지 현지사회전체가 사태의 추이를 각자의 조리개를 맞추며 관심껏 지켜보는 시점이다.
그렇잖아도 침체된 경기 역시 바짝 움츠린 가운데, 가장 예민한 촉각을 세워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모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사회분위기다.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무슨 일이 안 벌어지기를 바라고 바란다.

우리 가족이 이민이라고 도착했던  30여 년 전에는 아르헨티나의 차도나 인도들은   종이라던가 작은 부피의  쓰레기들  천지였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니까 나까지도  자가용을 탈 때마다 차창으로 휴지나 과일껍질 정도 버리는 일은 다반사로 실행했었다.
어떤 면으로는 재미까지 느꼈고 즐기는 느낌조차 깨닫게 될 정도였다.
그만큼 투명하지 못한 사회의 어수선하거나 어지럽혀진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걸쳐 기류처럼 감돌았지만 지금보다는 순박하며 때 묻지 않았던 세상이기도 했다고 추억된다.
현재의 아르헨티나 거리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청소부들이 형광색 유니폼 차림으로 키보다 커다란 빗자루를 사용하며 잦은 청소를 해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청소부들은 비질도 한국과 반대로 한다.
옆이나 앞으로 쓸어내는 자세가 아니라 오로지 밀고 밀어낸다.

나는 하여간에 활자중독자다.
쓰지 않으면 읽고, 읽지 않을 땐 쓴다.
읽을 때는 모르겠는데, 쓰는 동안에는 세월이나 시간관념을 완전히 잊는 편이다.
결국 나는 가는 세월을 좀 멈추려고, 내가 나를 격려하려고 쓰고 읽어 왔는지도 모른다.
나를 보호 하고  위로하려고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신은 오늘 또한 재산의 많고 적음을 상관치 않고, 소외계층이 된 이들의 마음을 크고 작게 움직이고 있다.
보이거나 안 보이는 존재가 되어 우리와 한 세상을 살며 이해와 용서와 은총의 나눔을 수도 없이 베푸는 것이다.

11월 8일에.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더 이상의 태풍과 맞먹는 정치변동이 결코 안 벌어지기를 바라며 약도를 들여다 보 듯 거리를 지켜보게 된다.
형광색 청소복의 청년이 기다란 빗자루를 밀고 밀면서 청소부 고유의 카트 있는 쪽을 향해,  역동적이며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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