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성찰목록




    맹하린


지난 일요일 오후엔 친구 수산나가 다녀갔다.
나는 미사를 드린 지 몇 달이나 지난 처지라서 주로 성당 얘기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바람직하고 좋은 얘기들만 주고받았었다고 본다.
마음에 가라 앉아 있던 세월의 앙금도 각각 따로따로 휘저어 어딘가로 함께 흘러 보내기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날의 도움이 너무도 고마웠다는 표시의, 조촐한 선물은  살몃 그녀의 가방에 넣어줬다.
내가 전도사 가방이라고 놀리는 검고 칙칙하며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가방이다.

그녀는 귀가할 때마다 우리 가게 앞에서 버스를 탄다.
수산나의 집은 자가용이 세 대지만 그녀는 병원에 검사하러 다닐 때조차 버스로 다닌다.
나는 가끔 그녀의 요청에 의해 동전을 바꿔주는데,  그날은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거의 모자란 듯 얼굴을 잔뜩 허물어뜨려 웃으며 그녀의 손에 동전 몇 개인가를 덥석 쥐어주게 되었다.
형편으로 치자면 그녀가 나와 비교도 안될 만큼 잘 살지만,  동전만은 내가 더 많이 소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나 레미스를 주로 이용하므로 동전이 좀 넘치는 편이다.
"오늘은 감사하며 받을 게요. 성당에서 꽃집을 향해 오는 중에   거지가 쫒아 왔어요. 그런데 배고프다는 말에 맘이 아팠고, 그래서 헌금 내고 남았던 10페소를 선뜻 내줬어요."
그녀는 성당에 다닐 때 몇 십 페소만 지니고 다닌다.
몇 번에 걸쳐 어깨에 메었던 가방을 잊을만 하면  날치기 당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참 검소요란휘황사치찬란이 각양각색이다.
L은 우리 가게에 들르게 되면, 갈 때는 절대로 그냥 못 간다.
남편이나 아들이 자가용으로 기필코 데리러 오도록 일을 언제나 그런 방향으로 꾸미는 것이다.
최신형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야단법석이 너무나도  지배적이다.
그래야만 만사가 든든해지는 모양이다.
(레미스나 택시 타면 두루두루 편한 것을...)
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나는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과 나 스스로에게조차  충고, 또는 잔소리나 후회 따위를 삼가는 성격이다.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으로 인격적 대우를 해주고,  작게나마 배려를 안기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라서다.
성당에 자주 못 갈 뿐 아니라 고해성사도 거의 못해내서 가끔은 '성찰목록'을  꼼꼼히 읽어내는 순간이 때로 내게 있어 왔다.
50여개 중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개만 제외하면 전부 성찰하게 되는 목록이다.

*자녀에게 좋은 표양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배우자와 다퉜습니다.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세상에나!
이것도 죄, 저것도 죄였다.
"사는 게 다 죄지요"라고 했다는 어느 촌부가 바로 내가 아니기를 기도하게 될 정도였다.

조지 칼린의 명언이 저절로 떠오르는 토요일 오후다.

* 우리들의 재산은 예전에 비해서 몇 갑절이 되었지만 그 진실한 가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 우리는 말은 많이 하지만, 거의 사랑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증오한다.
* 우리는 어떻게 먹고사는 것은 배웠지만, 삶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많은 시간을 보탰지만, 우리들의 시간에 진정한 삶을 부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 우리는 달까지 다녀오는 쾌거는 이루었어도, 새로운 이웃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너는 데에는     힘들어  한다.
* 우리는 바깥세상을 정복해 나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의 내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 우리는 큰일들을 해냈지만, 더 나은 일들을 한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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