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축복은...




         맹하린


목요일 밤에 누군가 서너 번 가게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똑 같은 전화번호가 여럿이나 입력되어 있었다.
가게의 셔터를 올리는 시간에야 진위를 파악(把握)하게 되었다.
본국에 환국(還國)했던 문우 k여사가 여행 삼아 아르헨티나를  재방문 했다는 사실을 알려 온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여행겸 다니러  오는 문우다.
아들 둘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게 가장 첫째가는 이유이며 동기(動機)가 되었을  것이다.
심성이 곱다랗고,  무슨 일에건 가장 먼저 앞장 서는  S여사가 한 턱 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일사천리로 고문님들과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토요일엔 시간을 못 내는 나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점에 약해져서 모처럼 짬을 냈다.
이미 예약된 주문들은 아침부터 미리 해낸 뒤 그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K여사는 아르헨티나를 방문 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꼭 선물을 마련해 온다.
작년엔 어깨에 두르는 숄이었고, 올해는 조립식 우산이다.
S여사는 청색 체크무늬.
나는 날씬한 아가씨가 네쌍둥이처럼 그려진 화사하면서도 고급스런 연분홍빛 우산이다.

K여사가 현지인 음식을 선호해서 해마다 우린 Vicco나 Clapton을 주로 이용한다.
아르헨티나에 제대로 맛을 내는 한국음식점이 없다는 연유에서도 더 그러하다.
서로 다투듯 이쪽저쪽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식당과 날짜를 정한다.
치안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 누구나 정오 무렵을 주장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음식을 나누며 두서너 시간, 본국의 대선이라거나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이슈를 안 보이는 페치카에 독설처럼 툭툭 내던져 우리는 화제의 불꽃을 사르고 살랐다.
모두들 어느 정도의 경제적 궤도에 이르렀고,  나름대로의 사회적 성공 역시 거뒀다고 여겨진다.
덜 소유하는 쪽으로의 성공을 거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보이지만, 그점  전혀 괘념치 않는다.
그들의 성공 사이를 비집고 나의 무소유의 씨앗이 싹터 오른 셈이니까.
성공 사이에서도 그들은 일종의 문제에 부딪치듯 존립했을 것이고,  나의 고달픔 사이에서도 기쁨은 샘솟았을 터이므로,
분명한 사실은,  나중에 이 세상 소풍을 끝낼 즈음...
많이 두고 가서,  하나도 못 가져가서 억울할 일은 없을 테니 나로선 그 점에서  특별히 거뜬하고 홀가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뒤늦게 맞은 중노동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우리 모두 겪을 만큼 겪은 사람들이라서, 성공한 사람들 속에 껴 있는 나 역시 일종의 성공한 사람이라고 내가 나에게 토닥임과 같은 격려를 베풀게 된다.
문우들, 특히 고문들 한 분 한 분을 더욱 존중하고 싶다.

해마다 한 달 정도 머물었지만, 이번엔 3개월을 계획했다는 K여사를 위해,  가까운 곳으로 소풍이라도 다녀오자고 문협회장에게 제안할 생각이다.
나는 최근의 단순 소박한 내 생의 편린들을 자주 감사하게 여기는 중이다.

어제 오후엔 산책을 두어 번 더했다.
그럴 때의 나는 찬찬히 주변을 구경하며 관광객과 같은 상념을 품고 거닌다.
나무마다 잎새들마다 푸르름이 출렁였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원로 문우들과 세론(世論)을 펼칠 수 있고, 자연(自然)을 지켜보는 순간이 있어 축복(祝福)이라는 감명을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
축복(祝福)은 그렇다.
어느 정도 버리고 단순(單純)해져야 진정성을 되찾는다.
나 이미 축복(祝福) 속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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