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수요일
Los manteros(좌판 상인들)
맹하린
나의 행동반경(行動半徑)은 내가 생각해도 뻔하고 빈약한 편이다.
한인 타운에 위치한 집과 가게와 이웃과 산책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약간 멀리 떨어진 꽃시장과 어쩌다 안 바빠야 나가는 성당 정도가 내 활동영역의 전부가 아닐까 여겨지게도 된다.
더 있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가는 세 개의 모임.
내가 만나는 사람 또한 뻔하고 뻔하다.
그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족이다.
그러니 내가 꽃 이야기나 가족이야기를 거의 안 해야겠다는 각오를 강하게 굳히다가도 자주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나의 취약점 중의 취약점일 것이다..
엊그제는 냉장고 속의 꽃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었다.
거의 일주일에 두 번 정도만 가는 꽃시장을 세 번째로 갔다.
리시안뚜스와 재스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현지인이며 40중반인 마우리시오가 내게 질문도 아니고 불만도 아닌 얘기를 불쑥 토로(吐露)하고 있었다.
"마르가(마르가리타의 애칭), 그저께 퇴근길에 우리 동네 야채가게에 들렀어요. 미 에스뽀사(나의 아내)에게 과일을 좀 사다 줄 생각이었죠. 그런데 무슨 놈의 야채가게라는 게 꽃나무 몇 개와 꽃 몇 묶음까지 갖다 놓고 파는 거 있죠? 내가 미칩니다. 내 얘기는 무슨 볼리비아노(볼리비아인)들이 감자나 제대로 취급하지 않고 꽃까지 파느냐는 겁니다. 내가 듣기로는 아베쟈네다 거리에 가면 수스 바이사노스(당신 동족들)마다 걔들 때문에 아예 골머리를 싸매고 산다죠? 이러다 의류도매상이고 꽃시장이고 모두 볼리비아노들 차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이 꽃시장만 해도 그래요. 걔네들 좌판(坐板)이 얼마나 날이 갈수록 많이 늘어나는 중입니까? 자고새면 늘어나지 않던가요? 아니죠, 이런 식이라면 아르헨티나, 이 나라가 머잖아 볼리비아노들 세상이 될 것만 같아요."
꽃시장에 가면 느긋하게 수다까지 나눌 만큼의 시간적 여유라고는 없는 나인지라 하하하 웃기부터 해내고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주는 걸로 대답을 마친 후 속히 다음 코스인 라파엘의 가게로 성큼성큼 이동하게 되었다.
그냥 나오기 뭣해서 마우리시오의 가게를 나오며 남긴 내 대답은 너무나 간결했다.
"우리가 볼리비아에 가서 좌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참읍시다. 까이꺼! 아셨죠?"
라파엘은 일본인이다.
50초반쯤으로 보인다.
오사카 출신의 2세일 것이다.
매사가 농담 위주인 라파엘인지라 나로선 잽싸고 명쾌하게 잘 받아 넘겨야만 하는 게 관건 중의 관건이다.
꽃값의 거스름을 주려다가도 순식간에 나를 주시(注視)하며 화살을 쏘아대는 그.
"께 린다(예쁘네)!"
그럴 때 나는 멍청하게 당하지만은 않는다.
"다음에 당신 부인이 나오면 일러 바쳐도 되죠?"
그의 부인 비비안나는 대목 때나 나와서 거들고는 한다.
글로벌 시대!
꽃시장에도 그런 기류(氣流)가 어딘지 모르게 점차 눈에 띄게 회오리 치고 있는 중이다.
마우리시오의 말처럼 요지(要地)를 벗어난 옆 켠으로 볼리비아노인들 소유의 좌판이 자꾸만 늘어나는 추세이고, 그 진전(進展)역시 상상외의 급격한 속도를 가하고 있다.
공생공존(共生共存)이라는 말이 피부 위에 들러붙는 느낌이고, 실감까지 되어지는 시절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 크리스티나는 3선을 겨냥하고 투표연령을 16세부터 가능하도록 바꾸는 법안을 상정(上程) 중에 있다고 한다.
16세...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투표를 하기에는 어쩐지 부족한 나이가 아닐까.
왜냐하면 어른들조차 투표를 군중심리에 치우쳐 해낸 뒤,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이나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또다시, 더 많은 인접국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지도 모른다.
느닷없는 사면령을 내려 인접국 사람들 너도나도 영주권을 낼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오나가나 인접국 이민자들이 판을 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좌판을 깔아대고 있다.
모포를 깐다는 데서 유래(由來)한 좌판쟁이들인 것이다.
한국도 인접국 일꾼들이 몰려들기는 한다지만, 이 정도로 물불 안 가리고 시장경제를 잠식하려고 들지는 않는다고 본다.
언젠가도 짚고 넘어 갔지만, 우리 가게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청소 하던 볼리비아나 그라시엘라는 30도 안 된 나이에 정식고용을 기피하는 술수에 대단한 기지와 능란함을 보이고는 했다.
여러 한국인들 가게나 집의 시간제 청소부로 일하면서 정부가 내어주는 보상금마다 알뜰살뜰 모조리 포식(飽食)하는 과정(過程)을 매우 과학적이다 싶게 탐닉하고 있는, 너무도 영악한 여인이었다.
어느 날은 내게도 신청을 왜 안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면서 간곡히 권유까지 했었다.
남편의 병환보상비, 아들의 학비보조금, 어쩌고 저쩌고...
나는 그때 난생 처음 사용하는 말을 속으로만 답했었다.
(누굴 뭘로 알고!)
볼리비아인 들을 제품공장의 일꾼으로 고용하는 친구 수산나가 얘기하던, 그들에 대한 명칭이 새록새록 부각(浮刻)되는 작금(昨今)이다.
"우리끼리 사용하는 걔네들에 대한 호칭을 자주 바꾸게 돼요. 볼씨라고 하면 벌써 알아듣는 눈치라, 지금은 산동네 애들이라고 바꿨어요. 그런데 산동네 애들이 점점 좋은 차들을 소유하며 부자가 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한국인을 앞서는 면도 많아요. 우리 한국 사람들의 일감을 그대로 카피해서 우리보다 싼값에 해치우는 그들이거든요. 우린 결국 유럽이다, 미국이다, 한국이다, 브라질이다를 휘돌고 다니며 최신식 모델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상납한 결과가 된 거죠"
나는 뜬금없다는 듯 불쑥 대답했다.
"머잖아 우리는 산동네 애들을 이 나라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일이 생기겠군요?"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2개:
노점상...
정말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전에 제가 상조회에서도 거론 했던 문제이네요.
예전엔 정말 생계형으로 조그만 노점상은 먹구살기 위해 그려려니 했지만 지금은 그 노점상들이 기업화 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베상가과 온세상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리깔고 노점상하는 애들은 대부분이 하루일당 받고 일을 하시만 뒤에서 막대한 이익금을 마피아가 거둬들인다는 사실을 알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합니다. 세금 한푼 안내고, 부패한 경찰과 무능력한 구청이 그리고 현재 아르헨티나의 심각한 경제가 수많은 저소득층을 길거리로 몰아 내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언제 아르헨티나의 경제 부흥이 있을련지..한숨만 나오네요.
요 며칠 날씨가 좋습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직접 겪으며 살아야 하는 나라라서 외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갈수록 한심해요.
너무 맑아도 너무 탁해도 사람이 살기는 팍팍하죠. 우리라도 정신 차리며 살아야겠어요.
우리의 차세대들이 더좀 원활히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하게 되는군요.
님도 즐겁게 보내시기를~~~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