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나만의 시위(示威)




      맹하린


영주권 혜택(惠澤)이라거나 사면(四面)령이라는 매혹적인 카드가 재선을 앞둔 대통령 크리스티나 정부로부터 제시되었던 몇 년 전, 아르헨티나 땅에는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가 발생하였다.
인접국 이민자들이 꾸역꾸역 날이면 날마다 몰려들었던 것이다.
지독히 보수적이고 개인주의에 철저하고 오만가지 깔끔을 다 끌어다 떨던 아르헨티노들은 현저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일정도로 느닷없는 일이 느닷없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줄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나라에 무슨 일만 생기면,  달러 파동이라거나 경제파동만 닥쳐도 쓸만한 인재들과 석학들이 속속 스페인이나 미국 등으로 전격적인 이주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만 갔을까.
난다 달린다 하는 한국인들도 부지런히 재이민을 떠났다.
그렇게나 약삭바르고 탁월한 선택의 달인들인 그들이  과연  빈손으로 떠났을까...
웅얼웅얼 억양  없는 말투로 음험함을 감추고 여기저기 나대는 볼리비아노 세상이 그때 비로소 도래했었다.
손이 거칠다고 오랫동안  회자(膾炙)되어 왔던 페루아노들도 한몫 하는 세상 역시 여러 몫을 시작했다.
한인 타운 주변에서 주로 주말에만 설치던 날치기들이 작금(昨今)에는 우리 교민경제의 메카인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밤낮으로 신출귀몰(神出鬼沒) 활동을 펼친다.
5인조 권총강도로 승격한 텃수다.
경찰이 가담했다는 설도 있고, 어떤 이는 비닐로 된 까만 쓰레기 봉투에 하루매상을 들고 가던 중  강도들을 만났는데, 그런데 그들과 실갱이 하는 과정에서 고액권의 현찰들이 길에 좌르르 쏟아지는 놀라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퇴근길의 한국인들에게서 하루의 매상액인 몇 만 페소에서 몇 십만 페소가 자동차와 함께 강도에 털리는 일이 시작된 지는 거의 일 년이 다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교민들이 대부분 좋은 차를 지녀서인지  보험회사의  위치추적에 의해 자동차는 신속하게 되찾는 추세이긴 하다.
경찰에 신고해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건 다반사(茶飯事)고, 날이 갈수록 그 빈도가 심해지자, 일부 교민들이 자경단이라는 임시 보안위원회를 결성했다.
어제 그분들을 주축으로한 시위가 아베쟈네다 3800대에 위치한 공원에서 3백여 명의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선 가진 자들의 시위는 이렇다 할 집중을 못 받는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려는 의도에선지 언제나 없는 자들을 우선으로 하는  편향만을 엿볼 수 있다.
아베쟈네다는 우선적으로 해결을 봐야할 현안들이 서로 옷깃을 붙잡고 함께 몰려 서 있는 모양새다.
치안문제, 좌판쟁이들문제, 주차장문제.
저녁 7시경부터는 도둑들이 기습작전처럼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만 어스름으로  감싸오는 암흑과 같이 음산한 가로등도 없는 아베쟈네다 지역의 거리, 거리들.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인 마끄리의 부인은 유명브랜드의 옷을 창조하는 여류명사다.
그녀가 거래하는 제품공장엔 볼리비아노를 위시한 인접국 사람들이 골고루 고용되고 있다.
광범위한 시야로 조명하자면 마끄리는 인접국 사람들을 사열(査閱)은 하되, 외면하고 싶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그러한 기미가 자주 드러난다,
아르헨티나 전역에 행해지는 11월 2일이던 위령의 날…….
마끄리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은 볼리비아노들의 묘지에 초대되어 위령행사에 적극성을 띠고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을 정도로 그들 이민자들을 대내외적으로 두둔하는 추세를 보여줘  왔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마끄리를 우리의 한인묘지에 초대해올 능력이 안 된다면 인접국 사람들과의 티격태격을 제압하는 일은 영원히 요원(遙遠)한 희망이 될 것이다.
혹자는 산타페 거리의 만떼로(좌판 쟁이) 문제는 해결이 된 상태인데 왜 우리는 그거 하나 결판을 못 내고 있는가에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충분히 절감하게 되는 얘기다.
3년에 한 번씩 유태인 주인에게 기십만달러의 쟈베(전세금과는 다르게 되돌려 받지 못하는 권리금)에, 매달 기천 달러의 월세까지 지불하는 현실의 그들에겐 복장이 터질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기반을 너무나 승승장구 이룩하던 그들 산타페 거리의 상인들도 아베쟈네다 지역의 한국인들처럼 오랜 세월 고민하고 울분을 식히고 그래 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좌판쟁이들을 물리치는 가장 첫째 계획으로 일단  매스컴을 먼저 끌어 들였다.
그들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았던 것이다.
시위를 계획할 때마다 기사화시키기를 첫째 이슈로 삼았던 산타페 거리의 상인들.
나날이 발전하는 좌판기사에 저절로 시달리고 지쳐 은근슬쩍 사라져 간 산타페 거리의 좌판 쟁이들…….
현재 산타페 거리의 좌판 쟁이 문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말끔히 청산 된 상태다.

우리 인생사는 매사(每事)에 그래왔다.
당장 근절시키기 힘든 일도 결정적인 계기(契機)가 주어지면 단박에는 어렵더라도 어느 날 홀연 해결점을 되찾게 된다.
고육지책(苦肉之策)에만 힘과 지혜를 기울일 게 아니라, 진정한 국면을 꿰뚫어 내야할 시기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몇 달 동안 상이용사(傷痍勇士) 신세다.
우박에 찢기고 할퀴어 그림과 글씨가 사라진,  불구자와 다름 아니다.
연방세입청과 세상과 나의 신(神)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나만의 시위다.
잔생이 보배가 되는 세상이 아닌 것 같으면서 못나 보이는 게 자유로운 세상에 나는 살고 있는 중이다.
내 맘이 흔들리면 어느 날 간판을 고치게 될 것이다.
나는 간판 정도 고칠 여유는 된다.


아베쟈네다에서 두 개의 옷 가게를 경영하는 내 지인이 현지인 가정부를 믿고 매상마다 항상 넣는 장농 속에 허술하게 간직하듯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놓고  점심이나 저녁을 외식으로 채우는 사이, 현지인 가정부가 솔솔 훔쳐간 금액이 무려 6십만 페소가 넘었다고 . 우연히 그 일이 들통나게 되었고 추궁하여 판자촌에 찾아갔더니, 17만 페소는 남아 있고, 그동안 집도 구입했으며,  이웃과 친구에게 이자놀이까지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니 우리 교민이 쉽사리 표적이 안 될 도리라고는 없으리~
(60만 페소...암시세로 10만 달러 상당.)


-초여름-
우와~ 동영상의 말미에 우리 가게  고객이고 상연회고문변호사인 토니님이 나온다. 나는 우리네 1. 5세들의 활약이 너무나 든든해져  ㅎㅎㅎ 웃었다.  이리도 단순하고 장난기 넘쳐서  나는 내 악플러들에게 자주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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