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간격(間隔)과 차이(差異)




       맹하린


나를 언니라며 따르는 외숙 씨가 일요일 오후에 가게로 찾아왔다.
외갓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된 여인이다.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의류도매상을 하는 그녀는 자기 소유의 가게에서 세 아들과 함께 장사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직장에서 일한다.
외숙 씨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겪은 사건을 내게 자상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오후 대여섯 시쯤, 길에서 사케오! 그런 외침이  순간적이다 싶게 들리자, 가게마다 일사천리로 셔터를 내리는 소음과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컷과  같았다고 한다.
1천 개를 웃도는 크고 작은 상점들로 조성된 의류도매시장인 것이다.
직접 겪어 낸 건 아니지만, 나로선 상상만 해도 극적(劇的)인 장면이 저절로 떠올랐다.
한국인을 위시한 유태인 볼리비아인 등의 인접국 사람들까지   마구 뒤섞여 길마다 가득 메운 인파…….
마야 달력의 종말은 그렇게 역지개연 되어 흘렀나 보다.

외숙 씨는 세 아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장사하는 일이 생각처럼 든든하고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많고 잦은  견해차이와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부대낌이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길 쪽에서 사케오! 그런 부르짖음이 터지자, 현지인 고객이 몇 장인가 골라 놓은 옷들에 대해서  외숙 씨 판단으로는 속히 지불 받으면 간단한 것을 아들들은 단체로 결정 짓더라는 거였다.
지금은 옷을 팔 계제가 아니므로 빨리 나가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고객이 나가기도 전에 외숙 씨는 한국말로 왜 장사를 그런 식으로 하는가고 물었고, 세 아들은 고객이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합창을 해내는데 미리 짜고 하는 말처럼 거의 앵무새와 같았고 매우 똑 같은 말이었나 보았다.
“엄마는 지금, 이 위급사태 속에서 꼭 그러셔야겠어요?”

나는 문우 K선생과 나눈 얘기를 꺼냈다.
내 오른 발의 발등에 붙여진 찜파스를 발견하고 K선생은 놀라 물었었다.
지난 목요일 정오에, 현지인 식당 Viccico에 가던 길이었다.
“저녁마다 셔터를 내리고 열쇠를 잠글 때, 쇠줄로 매단 자물통도 두 개를 더 달아요. 꽃집에 가져갈 게 뭐 있겠을까 싶겠지만, 일단 문을 부수면 손해고, 그  일을 방지하려면 그래줘야 안심이거든요. 그런데 셔터 문을 닫을 때, 가족은 약간의 틈이 보여도 상관을 안 하는 성격이죠.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나와,  잔소리를 전혀 안 좋아 하는 가족을 위해서 나 스스로 셔터를 내리는 방법이 차라리 편하다고 단정하게 되었고, 셔터 문이 꽉 잠기도록 나는 내 오른 발로 쇠문을 두어 번 밀거나 차고 그러죠. 그 과정에서 생긴 아픔이랍니다. 거의 다 나았어요. 요즘은 왼발로 밀고 차요.”
하하하 웃던 K선생은 본인의 고충을 답으로 제시했다.
T de Alvear 거리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아들 관우는 쓰레기를 버리는 부엌문을, 이 어수선한 시국에 열쇠로 안 잠그는 습관만을 고수하고 있단다.
K선생이 문만 닫는 일로는 약하니까 열쇠까지 잠그라고 해도 밖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문인데 구태여 필요 없는 염려는 피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고 들은 척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K선생이 일일이 잠그는 수고를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외숙 씨는 세대차이와 견해 차이에 만족치 못하고 나라차이에 대한 설명까지 아끼지 않고 돌아갔다.
사케오!
그 외침으로 세상이 온통 아득해지도록 소란스러울 때, 외숙 씨의 옆 가게에서 장사하는 볼리비아인은 셔터를 다 내리지 않고 반만 내리더니, 덜 겁내고 느릿하게 다급한 고객들을 끌어 모아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더라는...
원래 대목이란 끝 무렵이 압권인데, 그 볼리비아인 가게는 고객이란 고객은 모두 도맡아 대목을 잔뜩 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종(某種)의 시나리오에 의한 약탈사고의 뒤끝이라선지 일 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어제와  오늘,  사케오 문제만은  거의 잠잠해진 국면(局面)에 접어들었다고 보인다.
문명이 고도의 발전을 거듭했고, 인구밀도 역시 치밀해질 대로 치밀해졌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곡진(曲盡)함 또한 극명(克明)한 간격과 차이를 보이는 현대사회에 우리는 실리듯 흐르고 있다.
마야달력의 종말 일을 아르헨티나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그럭저럭 잘 견뎌냈다.
지진과 쓰나미와 전쟁 보다는 가벼운 부대낌이었다.
게으르고 단순명료 하며 휴식을 휴식답게 휴식할 줄도 아는 나지만, 글과 일과 사건을 만나기만 하면 전광석화처럼 머리가 회전하는 사람이 나다.
나는 이토록 드라마처럼  살고 있고, 사는 게 더할나위 없이 북새통 같을 때가 많지만 감사할 몫은 결코 잊지 않는 편이다.
마치 감사할 순간을 잊으면 다시는 감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새삼 놀라 버리는 사람처럼.

마음이 평화롭고 기쁨 가득한 성탄~~~
새해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 날들 많으시기를 내가 아는 모든 이를 위해 기원 하옵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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