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7일 금요일

글쟁이라는 사실만으로




        맹하린


지난 목요일 정오.
아베 지역의 산 니콜라스 거리에 있는 초밥왕에서 문협고문들과 점심을 먹었다.
모듬초밥과 튀김과 우동이었는데 적당한 양이라서 산뜻하면서도  좋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식사마다 가볍고 상쾌하게 끝마치는 경향이 있다.
배부르게 먹는 일을 멀리한다는 얘기다.

갈 때는 주룩주룩 내렸지만, 돌아 올 때는 억수로 쏟아지던 비의 질주가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비 내리는 일도 유행이 따르는 것일까.
최근 들어 한  달 동안에 내릴  강우량이 하루에 다 채워졌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얼마나 웃고 떠들었는지 길게 붙여 놓은 원목식탁들은 묵묵부답 점잔을 피우는데, 어찌하여 그릇들마다  끼리끼리 부딪치고 들썩이는 느낌 쾌청만발이었다.

지방도시 뚜꾸만으로 이사간지 4개월된 H선생은 의류소매상을 하면서 틈틈이  수영과 서반아어공부도  새로 시작했노라고  한다.

같이 레미스를 타고 갈 때,  손수 그린 수묵화 부채를  우아하게 부치며 L회장이 말을 꺼냈다.
나 역시 해마다 여름이면 그녀에게서  부채를 선물로 받았다고 보는데,  막상 들고 나가면 누구에게 주기를 선호하고 그런다.
더위를 잘 안 타는 데다, 중노동자인 나와 부채는 어딘지 모르게 잘 안 어울리는 느낌이라서다.
그런데 L회장이 그만,  그 우아함을 레미스에 놓고 내렸다.
인생 참 흥미롭다.
어떤 사람은 그처럼 아끼는 우아함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말없이 놓고 다닌다.
놓고 내린 후에라야 아차 싶은지 저만큼 가는 차를 정작 쫒아갈 기세이기도 하다.
그 우아함은 운 좋으면 돌아 올 것이고, 혹은 운이 닿지 못해 안 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L회장의 아들이 그러더라고 했다.
부모세대는 저 사람이 나 없으면 어찌 살아갈까, 그런 책임감으로 건강에 더욱 유의하며 살아가지만, 자식세대는 상대가 없으면 못산다는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기성세대의 배려가 일종의 열등감에서 생긴 소산(所産)이라면,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어쩌면 우월감의 소산(所産)이 아닐까 하는 의미로 내겐 거의 유머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K선생이 한국으로 돌아 가게 되는 3개월 안에 우리는 목요일 정오면  가끔씩  만나서 점심을 나누기로 중지(衆志)를 모았다.
K선생을 핑계로 우리가 우리를 돌아가며 대접하게  될 것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연상시키는 C선생의 장남께서 식사 중간쯤  중후하게 생긴 문처럼 느닷없이  문쪽에 나타났는데,  점심 값을 살며시 치르고 갔다하여 우리는 그점도 즐겨 웃어댔다.
지난 목요일 정오에 C선생이 Clapton에서 이미 한 턱을  냈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식사 하러 들렀다가, 용케도 아버지의 탕탕한 웃음을 옆 홀에서 음악의 리듬을 선별하듯 캐냈지 않나 싶다.

해 묵은 정.
모두 20년 이상 문협의 밥을 다달이 함께 나눴던 분들이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자주 스미듯 들었을 것이다.

나는 본국이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선 장난스레 예견(豫見)정도는 논한다.  하지만 선거인 등록을 해본 적도 없고, 투표조차  결단코 안하는 주의(主義)다.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열정을 다바쳐 줄까지 서가며 해낼 것이고, 내 관심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당선이 되는 일인 것이다.
헷갈린다.
며칠 전만 해도 근엄한 분이 유리한 듯 보이더니, 공동 어쩌고가 변수로 부각되는 판국이다.
자고로 말이 청산유수라서,  말이라는 칼날  덕택에  당선 되는 통령님은 전례에 없었지 싶다.
아무리 그래도 나로선 어떤 격식이나 모종(某種)의 제도나 틀에 박힌 정책이 한참이나  오래 전부터 거북스럽고 성가시다.
글쟁이는 다른 사람이 꼭 하는 일을 주관을 같은 걸 지키거나 부리며 안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일이 다가오면 일을 하고
글이 손에 잡히면 글을 쓰고
기쁨이 안겨 오면 기쁨과 지내고
그리고 질타가 내게 흙탕물처럼 튕겨 오면 나는 의연히 옷자락 좀 서너 번 털어 내거나 빗물에 흘러 보내기에 초연해 왔을 것이다.
내가 아직 살아 있고
내가 여전히 자유를 추구(追求)하면서
나 항상 첨예로운 존재들과의 대립이나 갈등 속에서 지낼 경우 또한  아주 드물게 있어 왔고...

그런 가운데 더욱 오롯하고 느긋할 수 있는 경지를 조금이나마 쟁취하고 여유로울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내가 언제라도 지향하게 되는 세상을 향한 겸애(兼愛)이며 선(善)인 것.
사람은 누가 비난하고 비판해도 본질을 향한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순리(順理)의 도(道)를 터득하는 길이다.
약간만 생각을 바꿔도 답은  금방 나오게 된다.
누가 나를 폄훼 한다고 해서  내 특유의 손톱만큼 정도인  미미한 고귀함이라거나,  너무나 잔물결 닮은 내  고요로움의  그 어디가 그토록 훼손된다는 얘기인가  말이다.

매사에 하하 웃고
비 오면 비를 받아 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자문자답(自問自答)을 잊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잘 흐르고 있는가.
도도히 흐르는 내 앞의 강이 시나브로 맑고 유장(悠長)히 흐르지만, 더러는 굴곡으로 뒤채며 흐를지라도 나는 글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는 게 거의 축복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최상의 섭리이며 무한대의 문학이라는 걸 새록새록 깨닫게도 된다.
살아감의 유열(愉悅)은 절대로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 보며
나 오늘도 근심걱정을 가까이 두며 살아오지 않았을  지금까지의 일상을  절로 감사하게 된다.
고즈넉함이 폭우(暴雨)처럼 흐르고 쏟아지는 날이다.





댓글 2개:

lovemate :

님의 심정이 묻어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님의 그 여유로윰이 부럽습니다.
오늘 음악 짱입니다요..

maeng ha lyn :

제가 님과 문우가 되려면 그 정도는 여유를 간직해야겠죠?ㅎㅎ
아무리 그러셔도 전 님들이 부러우려고 해요.
지금껏 누구를 부러워 하진 않았거든요.
슬퍼요. 자랑할 거라곤 여기까지 흘러 오는 동안 머리에 염색을 안 한다는 사실 밖에 없는 거~~~ ㅎㅎㅎ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