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4일 일요일

그래, 이 맛이야!



       맹하린


내가 라면을 가장 처음 맛본 건 중학교 때였다.
한국은 그때 인스턴트식품은 물론이고 라면이라는 품목이 전혀 생산되지 않을 때였다.
중학교 음악교사로 있던 형님을 만나려고  일본에 다녀온 고모부가 짐 속에 라면을 두 박스나 가져 오셨다. 순전히 우리 형제에게 그 희한한 맛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이다.
그때 나는 뚜껑을 열면 발레리나가 춤을 추면서 소녀의 기도라는  음악이 나오는 분홍색 뮤직 박스 오르골까지 내 몫의 선물로 받았다.
고모내외는 일제시대(日帝時代)에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끔은 우리 형제들 앞에서 일본 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면 안 되는 비밀이거나 우리형제들을 칭찬, 또는 웃어주는 말들을 주로 주고받았었다고 본다.
나는 어려서부터 눈치 백단은 못되고, 99단은 되었던 탓에, 가끔씩  장난기가 발동 되면 두 분이 주고받는 얘기를 콕 집어내고는 했다.
두 분은 그리도 커다랗게, 통쾌히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터뜨렸었다.
(그 웃음이 새삼 그립다.)

그리고 1963년도쯤 삼양식품에서 라면이 나왔다.
그럭저럭 즐기던 라면을 결혼하고 뚝 끊어야 했다.
시어머니께선 수제비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 종류를 무척이나 좋아하셨지만, 라면은 비싼 음식으로 단정하셨기 때문이다.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시어머니 덕택에 라면을 멀리 하자,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음식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날마다 듣던 말도 아니었다.
단지 일 년이면 한 달 정도 함께 했던 날들 속에서 들었던 지적이었던 것을…….

현재의 나는 라면을 바쁠 때나 먹는다.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식사로 부각되는 이유에서다.
얼마 전, 절약이 생활화 되어 있는 가족이 Coto라는 현지인 마켓에서 미국 산(産)라면을 사왔다.  한국라면보다  부피는 작았지만 절반 정도 낮은 가격이었고, 우선 유통기한을 믿을 만 할 정도로 신선함을 전달 받았다.
특히 그 맛에서 예전에 고모부가 일본에서 가져오신 라면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미국에 있는 라면공장을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모양이지 싶다.

나는 찌개나 국 종류를 먹을 때, 국물을 전혀 먹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
왜 그러는지 나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어려운 이상한 성격이다.
그런 이유로 물김치 등을 담그지 않을 뿐 아니라, 외식에서도  건더기만 약간 정도 섭취한다.
그러는 나를 가끔씩 놀리는 친구들 앞에서 나는 내 특유의 유머를 날리기 마련이다.
"맞아, 나는 국물을 전혀 안 좋아하는 게 확실해. 아! 그래서 내 인생 국물도 없나 보네?"

살아오면서 더 이상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연이 하나 있었다.
나를 동등하게 존중해 주지 않고, 어떻게든 일을 돕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경청해 주는 역할만을  요구하던 여친 이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이렇다 할 다툼도 없이 내 쪽에서 절교(絶交)를 실행(實行)했다.
더 이상 친구하기가 숨막혔었다.
이 얘기 정말 죽기 전엔 건드리기가 괴로운 부분이지만, 나는 그 무렵 교통사고로 열 네 살의 큰 애를 잃었었다.
그런데, 세상이 온통 슬픈 보라색으로 흐릿할 뿐인데,  그리고 누군가 나를 약간만 밀쳐도 세차게 넘어질 것만 같은 심정인데, 그런데 참척(慘傶)이 어느 정도의 슬픔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아 하는 그 친구는 내 입장은 손톱만큼도 생각해 주지 않고 있었다.
나를, 내 고통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는 친구였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지나치게 치부하고 축재한 사람들과는 친구 안 하기!!!
그러니 그 누구도 나의 그 인연을 들먹이면 곤란한 일을 내게 떠안기는 것과 다름 아니다.
악플러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내 인생에 중심을 잡도록 해주는 존재,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어제와 오늘, 몇 분의 절친께서  띄어준 메시지가 함초롬히 대신해 주었다.
때로는  미국 산(産) 라면이 그걸 대신해 줄 것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 미국 산(産) 라면을 때때로 먹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이상하게도 먹을 때마다 그 라면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그리고 가족에게 소리치도록 유도한다.
"그래, 딱 이 맛이야!"



댓글 3개:

lovemate :

저에요..낚시 잘 다녀왔습니다.ㅎㅎ
님의 속마음과 지금의 심정이 보이는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전에 제게 말씀해주시던 것처럼 저도 조금씩 님에 대해 알아가는 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쇼핑의 피아노 음악도 잘 들었습니다.

maeng ha lyn :

전에 뭘 얘기 했었는지 모름요~
ㅎㅎ 하도 여러 얘기를 해선지 너무 적게 해선지도 모름요~~~

전 그래요.
고해성사 할 때처럼 얼레미로 거를 것과 채로 걸러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하려고 조심해요.
그리고 사람도 사건도 잊을 건 빨리 잊고 기억해 둬야 하면 잘 저장해요.
분명한 것은 아무리 큰 잘못도 제가 용납하는 사람에겐 용납이 되고, 아무리 작은 잘못도 제 스타일 아니면...?ㅎㅎㅎ

maeng ha lyn :

평소에 오타가 나면 까이꺼! 그랬는데 이 말은 꼭 고쳐야겠어서 고칩니다.
채로 걸러야가 아니고 체로 걸러야죠.

언젠가 게시판에서 읽었던 님의 댓글이 문득 떠오르네요.넘 오래 돼서 제대로 표현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낚시를 가셨는데 어망 속에 들어 있는 물고기가 눈을 멀뚱멀뚱 뜬채 내가 왜 여기 있나? 그런 눈빛이었다는...ㅎㅎㅎ
님이었나요?
아님 구르미님?
가끔 헷갈려요.
님이 훨씬 어리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