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오빠


         맹하린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오빠는 이리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마쳤다.
중학교 때부터 사진에 심취한 오빠는 오로지 사진 때문에 일본어과를 선택했다고 본다.
그 당시의 사진이나 인쇄기술은 일본을 따라잡을만한 국가(國家)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월간지의 사진기자로 취직했고, 선배와 종로 2가에 DP&E점을 차렸다.
컬러사진이 막 시작된 즈음이라 오빠의 가게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나는 생일선물로 오빠에게서 일제 자동카메라를 선물로 받아 친구들과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다.
산악회(山岳會)에 가입하여 주말마다 등산을 즐겼기 때문에. 
그리고 사진현상은 오빠 덕에 항상 공짜였기 때문에.

오빠는 머리도 나쁘지 않은 데다, 특히 음악을 좋아해서 남성중학교 때부터 밴드부의 작은 북 담당이었다.
국경일이 되면 이리에 있는 모든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역전광장에 운집(雲集)하여 단체행사를 치렀는데 오빠가 소속된 남성고등학교의 밴드부원들이 개선가(凱旋歌)를 울리며 중앙에 짜잔, 나타나곤 했다.
작은 북의 오빠는 항상 중심부에 있었다.
나는 얼마나 비밀스런 애였는지 친구들에게 오빠를 말하지 않았고, 동네 애들한테도 입막음을 단단히 해뒀기 때문에 그 사실은 동네 친구들 외엔 아무도 몰랐다.
오빠는 장래희망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다.

내가 대학 다니며 팝송을 즐기게 되자, 귀 버린다고 클래식만을 권유하며 오빠는 자면서도 클래식을 들으며 잤고 깨면서도 클래식을 들으며 깨어났다.
하학 후면 동생들 다 제쳐 두고 오빠는 내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캐묻거나 영어 책을 소리 내어 읽히기도 했다.
자상한 성격 가운데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서려 있어 매사에 조심스럽던 오빠.
오빠는 친구가 열 명도 더 되었고, 특히 동수오빠하고는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그런데 집으로 친구들이 찾아 오면 내 방의 방문부터 닫았다.
오빠친구들은 나를 참 예뻐 했지만 오로지 친구의 동생으로만 그래야 한다는 철칙을 잘 고수했고,  나 역시 오빠 친구 중 그 누구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가 이 나마의 글쟁이가 된 건 호남평야의 자연도 자연이었고,  할머니나  맹고모의 영향이 컸겠지만 오빠의 보살핌 역시 지대했으리라 여겨진다.
여름방학이면 옆 마당에 작고 앙증맞은 천막을 치고 내 숙제를 돕거나 음악공부까지 시켰었고 실기연습까지 시키던 오빠.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
아름답고 즐거운 예술이여
마음이 서글퍼진 어둔 때
.....................................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니
내 마음은 푸른 산 저 너머로
..........................................

오빠는 현재,  IT계통에 종사하는 아들 맹한경 덕택에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금껏 술을 끊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도 안 끊겠다고 큰 소리 탕탕치는 오빠지만 몇 개인가의 병을 끼고 사는 눈치다.
고혈압, 골다공증 등등.

오라버니!
당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이 못난이 멀리서나마 경례(敬禮)를 바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계명의 핵심을 언제나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클래식 열심히 잘 듣고 있어요.
하루하루 사는 게 심심치는 않다는 지극히 단순한 당위성에 만족하면서요.
오빠가 등장하는 지난 세월에게 때때로 다가갈 수 있어 행복해요.
고마워요,
내게 오빠 노릇 제대로 해줬던 날들...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진정 커다란 격려(激勵)였다고 자주 감사하게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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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니와  오빠와 남동생 덕재,  그리고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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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운데가 오빠.  내 오른 쪽이 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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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맹미숙.

댓글 2개:

lovemate :

뜬금없지만 장남이란 다 그런것인가 봅니다.
책임감... 그것이 항상 인생에 같이 따라 다녀요. 부모님의 기대감, 동생들에겐 모범이 되야 하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굉장히 부담이 되는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장남이라고 그러는거 절대아님..ㅎㅎ
그리고 동생분이 엄청 미인이십니다.

maeng ha lyn :

제 생각으론 아무나 장남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릇이 되는 분만 가능한?ㅎㅎ
부담이라기 보다 타고 난 부성애가 어딘가에 심겨져 있을듯요.
장남...
제 남푠처럼 다 바친 장남 있음 나오라고 하고 싶어요.ㅎㅎ

자랑이 아니라 동생하고 다니면 제가 시녀 같았어요. 다들 동생만 쳐다봤다능!!!
그런데 시녀 같은 언니 노릇도 흐믓~~~
좋은 오늘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