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6일 토요일

괜찮았어요!


           맹하린


잃어버린 밥맛을 찾으려고 요즘 부쩍 부식비를 과용(過用)하고 있는 실정이다.
며칠 전엔 갈비를 사다 토막 내어 차가운 물에 담가서 붉은 물을 일단 뺐다.
그리고 펄펄 끓는 물에 다이빙을 시켰다가 적당히 익혀 당면 좀 넣었고, 마늘과 파 송송을 얹어 소금과 후추로 간맞춰 들었다.
괜찮았다.

엊그제는 명태를 사다가 맨 밑에 양파와 무를 켜켜로 깔고, 맨 위엔 풋고추를 얹어 매콤한 양념 찜을 했다.
콩나물은 한 켠에 깐 뒤 익었을 때 수저나 주걱으로 숨을 좀 가라앉혀야 부드럽다.
괜찮았다.

어제는 만두였다.
그냥 만두가 아니라 감자를 찐 뒤 으깬 위에 삶은 계란도 몇 개 6등분으로 썰고 작고 네모나게 썬 양파와 갈아낸 고기를 볶아서 치즈와 살살 버무린 만두소를  현지인슈퍼에서 파는 오븐용 만두피에 넣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약간만 둘러 구워내는 우리집식 만두다.
경우에 따라 월계수 잎이나 현지인들이 쓰는 피망가루도 넣는다.
때로는  소고기 대신, 삶아 익힌  닭가슴살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서 며칠동안 간식시간마다 차게 먹는 맛 또한 근사하다.
옥수수 알갱이도 감자와 같이 삶아서 한 땀 한 땀 떼어 함께 넣었더니 더 고소한 만두가 되었다.
뜨거운 상태일 때 치즈의 녹아 있는 맛은 떠나던 감기도 다시 돌아와 욕심을 낼 지경으로 감동적인 맛이다.
괜찮았다.

밤새 비가 내렸고, 지금 새벽 5시쯤인데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각자 싸먹는 김밥이 될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야채를 볶고, 계란지단도 부치고, 생선맛살과 어묵까지 준비하여 커다란 접시에 예쁘게 담은 후, 각자가 취향대로 싸먹는 김밥이다.
와사비를 곁들인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환상이다.
괜찮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비 오는 날은 김치볶음밥이 낫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다.

내 안에서 보름을 머물던 감기는 그동안의 극진한 대접(?)에 감사하다면서 어제부터 떠날 행장(行裝)을 꾸리는 모습이다.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감기.
올해는 오기는 왔는데 갈 생각을 안 하는 눈치여서 거의 날마다 칙사(勅使)대접을 했다.
드디어 가겠다고 가방을 꾸리고 있다.
지독했지만 덕택에 나 역시 대접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부디 안녕히 가시라고
자주 뵙고 싶지만
너무 자주는 권태를 몰고 올 게 확실하다고
제발 다음 해에나 뵙자고…….
나는 위대하신 감기님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있다.
가다가 다시 올까봐 우선 꿀 섞은 생강차를 한 잔 대접하고 있다.
내년에나 뵈어요.
괜찮았어요!


댓글 2개:

Oldman :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이제 슬슬 입맛이 오르는 중인데 이 포스팅에서 딱 걸렸습니다. 입안의 침을 벌써 세번째 삼키고 있는 중...ㅎ ㅎ

그 칙사는 꽤 오래 머무르셨는 듯. 한동안 포스팅이 없으시다 했더니...물론 추석으로 바쁘시기도 하셨겠지만. ^^

maeng ha lyn :

첨으로 칙사에게 제대로 됀 대접을 한 듯 해서 흐믓합니다~ㅎㅎ

제가 좋아 하는 것들이니까 함 해서 드셔요.
진짜 다른 반찬이 크게 필요치 않아영!

건강이 최고라는 말 항상 잘 모셔 왔는데 이번에 새삼 구구절절 깨달았답니다.
건강을 함부로 여기면 안 되겠어요.
님도 건강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