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6일 일요일

Largo 일주일 전의 토욜밤에도 나는 이웃의 궁전식당에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김치볶음밥에 물김치가 주인공 되어 집밥처럼 나눈 식사였다. N여인 내외는 취미 삼아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주문에 의해서만 일하는 경영방침이다. 주문이 없는 날은 우리들 세상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된밥을 좋아하고 찌개나 국을 먹을 때도 건더기만 먹는 습관이 대체적이다. 그러는 나를 친구들이 지적할 때마다 나는 이 말을 꼭 해낸다. “그래서 내 인생에 국물도 없나봐!” 친구들은 매번 깔깔대며 이윽고 이런다. “건더기만 먹는 인생도 국물은 있나봐!” N여인, 기봉씨, 화숙씨 이외엔 자주 멤버가 바뀌지만, 그녀들이 게임을 펼칠 때마다 나는 밥이나 따먹고 교대를 기다리는 친구에게서 실꾸리처럼 풀려 나오는 흥미로운 얘기 좀 들어주고 늦기전에 빠져 나온다. 기봉씨 얘기가 단연 관심을 끌게 한다. “ 맹언니, 우리 자매는 어려서 아빠가 주로 밥을 먹이며 키워 주셨어. 언제나 무릎에 앉히고, 수저로 일일이 떠먹이고 배를 꾹꾹 눌러보며 이젠 됐다! 그러셨고. 아빠는 우리 자매에게, 특히 내게 영웅이셨어. 이 세상에서 계란을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몸소 가르치신 분이시기도 해. 가끔 둥지에서 갓 낳은 계란을 꺼내어 아빠는 불을 지피는 아궁이의 잿속에 묻어 두셨어. 공책을 뜯어 낸 종이에 물을 묻힌 후, 계란을 감싼 뒤 구워내는 방식이셨어. 그렇게 익힌 계란이 특히나 맛있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나는 어느 날, 부모들이 일 나가신 틈을 타 닭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아마 쭈그리고 않아 있었을 거야. 계란을 낳았다고 암닭이 꼬꼬댁 거릴 때 잽싸게 다가가서 꽁지를 들어 이웃집 담장으로 휘익 던져 버렸어. 그리고 살그머니 계란을 꺼냈지. 당연히 아빠가 하시던대로 일을 벌였어. 군불을 땔 때, 가마솥에 물이 채워져 있는 걸 확인도 하고. 그렇게 익혀 낸 계란을 들고 내가 은밀히 숨어서 먹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어디였게? 바로 변소였어. 누가 다가 오는 기척이 나면 내가 안에 있다는 신호로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 과정을 겪으며 숨어서 먹는 계란이 얼마나 맛있는지 언니는 모르지?” “몰라도 돼! 나는 금덩어리를 준대도 변소에서 계란은 못 먹지.” 그렇게 썰렁하게 말하지 않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두둔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 어른들을 따라 하면서 어른이 되어 온 게 확실해. 그러니 아이들 앞에서 잘 살아야 해. 물질의 잘 살아냄이 아니라, 순박한 그림이 바탕화면으로 떠 있으면 여러모로 좋을 거야.” “그 객기는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던 건 아니었어. 나는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거 자나깨나 귀에 걸고 살았다니까! 그건 사실 몇 번만으로도 충분한 일이었어. 또 다른 관심거리가 엄청 많았거든.” 친구들에게서 들어낸 철딱서니 동심의 세계에 일어난 얘기들은 끝없이 줄 서 있다. 화숙씨와 나만 페북을 하고 다들 교민사이트의 게시판에 가뭄에 콩나듯 댓글을 달고 눈팅 정도나 하는 편이다. 캐스터네츠. 타악기를 맞부딪치는 듯한 밝고 경쾌하며 활기로운 리듬이 한가할 때마다 내 마음에 공명한다. 라르고가 주는 진정한 의미처럼 아주 느리고 폭넓게, 그렇게 힘내도록 하라는 메시지와 같이… 기타통 안에서 울리는 음색과 닮은 그 음률을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지금 헨델의 Largo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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