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행간이 물장구치듯 내 발치에서 철벅일 때, 두 나라에 공존하는 것만 같은 강한 혼돈을 어쩌지 못해 내가 나를 시 앞에 꿇어앉히던 나날들.”
맹 시인의 시집에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34년간 살아가고 있는 한국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시는 한 편 한 편이 모두 이야기 같다. 이는 시의 길이 탓만은 아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도 한 편의 이야기를 마음 놓고 읽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85편의 시가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틈틈이 아이들과 근교에 나가 가오리 연 날리며/돌아가고 싶은 마을을 반향사고로 뒤집어/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각오의 실톳 바짝 붙들며/풀었다 늦췄다를 거듭했다// (중략) 나는 지금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금세 도착한 것만 같은 생경스러움으로 히말라야시더처럼/사시장철 푸르러 있고/이방인에게도 다채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감상//(시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동안’ 중에서)’
한국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아르헨티나에 살면서 끝내 모국어로 시를 쓰는 일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뿌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다름 아니다. 시 ‘내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동안’에서 시인의 마음은 고향에 닿아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수십년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시인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스스로 모국어를 놓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억지스러움일까.
박해림 시인은 “그의 시는 어떠한 상처도 상처로 두지 않고 소통의 창구를 바꾸어 놓는 재주를 가진, 모국어에 대한 애착이 문학에 현현되어 풀고 맺는 남도소리 같은 고백들”이라며 “이야기 형태의 시를 통해 시인의 도전과 길찾기, 그 과정에서 확인되고 있는 지난한 탐색의 여정이 더욱 새롭게 꽃피기를 기대해본다”고 평했다.
맹 시인은 1996년 ‘자유문학’을 통해 중편 ‘쌍둥이 형제의 행진’으로 등단했고 2006년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해외동포 창작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해 문단에 나왔다. 현재 우리사회,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 ‘내가 나에게 길 내어주다’와 소설집 ‘세탁부’를 펴냈다.
움, 208쪽, 9000원.
<김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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