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월요일

소나기 외

맹하린의 생활포커스. 편지


 
새벽에 전화가 왔습니다.
새벽에 울리는 전화벨은 왠지 산뜻하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안겨 줍니다.
엄마였습니다. 엄마......
고국의 청주 땅에 살고 계신 엄마.
엄마는 아들들에게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걸 즐겨 허락하지만 딸들에게는 결코 그러지 않으십니다. 매사에 편하게 대하라는 의미죠.
엄마는 일본의 지진사태마다 뉴스를 통해 지켜보며 외국에 나와 있는 저를 떠올리셨다고 했습니다. 아마 일본에 나가 있는 가족의 행방을 애타게 기다리는 분들에게서 간접적인 애환이라거나 그리움 같은 걸 느끼셨던가 봅니다.
 
프랑스 언론은 일본의 고위층들이 원자로의 방출수위를 속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언론마다 아비규환을 겪고 있는 일본인들의 질서와 도덕심을 극찬하고 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그렇게나 철저하게 질서와 도덕심과 애국심을 주입하듯 심어준다지요?
모두들 칭찬일색인데 저로선 실시간 동영상을 통해 접하는 속보에서의 일본사람들이 참 가식적으로 비칩니다. 너무나 가공할만한 두 얼굴이고, 경악해 마땅히 여겨야할 이중적 잣대의 세계관을 계획해온 그들이라는 점 전혀 배제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 되는 것입니다.
울 때 울고, 통곡을 터뜨릴 때 터뜨리고, 참아야 할 땐 기어이 참고, 그리고 웃음이 터질 땐 파안대소를 펼치는 게 진정한 인간의 모습 아니던가요?
 
인터넷과 트위터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언비어는 “ 일본지진이 발생하기 5일 전 이바라키 현 해안에 고래 50여 마리가 떠내려 왔으며 이것이 대지진의 징조였다고, 앞으로 200년 만에 한번 있을 대지진이 다시 온다는 가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유언비어로 인해 일본현지인들의 불신감이 증폭되는 가운데 네티즌 사이에선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가 봅니다. 한편에서는 지구상에서 발생한 각종 동물의 떼죽음에 대한 관심 또한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해안에서는 100만 마리의 정어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군요. 또한 지난 3 6, 경기도 고양시 벽제천 인근에서는 물고기 100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고도 합니다. 시 관계자는 주변에 구제역 매몰지는 없어 침출수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 건 아니라고 표명하면서 정확한 원인을 분석중이라고 조심스레 인터넷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벽 2시 무렵에 있습니다.
정신을 약간이라도 가다듬고 싶을 경우에 꼭 챙겨 듣는 ‘칼 오르프’의 세속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의 장엄한 1번 곡 'O Fortuna'를 들으며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더왕의 신화를 토대로 만든 “엑스칼리버”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이었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광고음악으로도 주가를 확실히 올리고 있는 작품이죠.
천상의 아우성 같은 게 울려 퍼집니다. 장엄한 리듬들이 나의 어깨를 다정스레 토닥이는 듯 한 느낌까지 듭니다.
 
지구가 중병으로 격렬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언젠가 무리수를 두어 이 세상 어딘가에 산목숨을 우격다짐으로 눌러 뒀다는 의미…….
억압에 신음하던 많은 영혼들이 땅이며 바다를 강한 저항으로 밀쳐내고 있다는 얘기…….
중병에 처절히 절규하는 세상을 두고, 격노하는 바다와 땅을 두고, 이 지구 끝에서 나는 작은 한 포기 풀 되어 푸르른 하늘을 이고 삽니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태연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전화하면서 의연했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는 않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나 이웃조차도…….
나는 어느 덧 전화의 엄마에게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을 떠올립니다.
“엄마, 당신은 진정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십니다.
 
친구여!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가 싶더니 점차 세찬 합창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친구가 있어, 인생이 뭔가를 분명 알고 있는, 내게 언제라도 멘토가 되어주는 친구가 존재하므로 나의 하루가 거의 든든하리라 예감합니다.
수많은 목숨, 기하급수적인 재산피해.
오늘, 일본을 위해 기도 또한 잊지 않으려 합니다.
다시 글을 드리도록 하지요.
격동하는 세상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 항상 함께 하시길 바라며......
 

맹하린의 생활 포커스. 돌아보다


내가 다니던 I여고는 명문사립학교였다.
교사들은 서울대 출신만을 초빙했다.
일주일 동안 교대로 기숙하며 예의범절 등을 익힐 있는 생활관은
한국 최초로 설립되었다하여 무렵 학원 사에서 취재를 나왔는데, 나는
가장 예쁜 한복을 소유해서 였는지 칠첩 반상기를 앞에 두고 사감선생님을 거드는 사진까지
실리기도 했었다. 일주일에 번에 걸쳐 요리를 배우던 조리실. 가곡은 물론이고 클레식도 강조돼던 음악시간. 특히 내가 날마다 책을 가까이 있었던 도서관이 자랑스럽던 학교였다.
그랬다. 나는 거의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학교 도서관 덕택에 읽어낼 있었다.
그러다 나중엔 마땅하게 읽을 만한 책이 없어, 학교 후문 쪽에 있는 대여서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 서점에 돌려줘야 책이 분명 가방 안에 넣어뒀었는데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전혀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용돈을 넉넉하게 받던 터였으므
서점에 책을 있는 요금으로 변상하게 되었다.
그런 며칠 , 나는 국어시간에 이름이 호명되어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국어선생님은 우리 담임이셨다.
책방 아저씨는 신간소설 권과 편지를 써서 우리 담임선생님에게 보내왔고, 나는
반애들 사이에 우뚝 선채 담임이 읽어주는 책방아저씨의 칭찬일색인 편지를 들어야 하는
부끄러운 상황을 어쩔 없이 견뎌야 했다.
사실 나는 잊을 하면 담임이신 국어선생님에게 때때로 불리워지고는 했다.
표어당선이라거나 문예반 공모입상도 있었지만 어느 다시 불린 이유는 참으로
뚱하다면 엉뚱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기차역까지 오가는 중간에 중앙시장을 통과해야만 했는데, 나는 그곳을 지날
마다 묘목을 땅바닥에 눕혀놓고 파는 농부들에게서 꽃나무를 구입하여 집으로 가져가고는
했었다. 집에서는 기특하다면서도 자주 그러지는 말라고만 가볍게 타일렀다.
대장 촌에서 기차를 내리는 나와 달리, 국어선생님은 정거장 가는 삼례에 살고 계셨으므로 차창을 통해 그다지 적지는 않은 키의 꽃나무를 들고 가는 모습이 여러 번이나 눈에 결과였을 것이다.
꽃샘추위에 꽃망울도 피지 않은 매화나 산당화 묘목을 사서, 너무도 소중히 안고 다니는
학생의 특이한 정서를 높이 두둔하고 싶습니다.
그런저런 영향이 컸을까.
책과 음악과 요리와 꽃나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없도록 뼈와 살이 그루의 나무처
내가 살아오게 것은…….
그러던 내가 어찌어찌 흐르다가 뒤늦게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
글도 써야지, 클레식이 위주인 음악도 빠짐없이 들어야지, 날마다 산책도 즐겨야지, 인터넷
세상도 서핑해야지, 주문을 하고 오는 분들 이외에 주문도 하고 오는 고객들의 성급함에
부응해야지.
그러다보니 정리정돈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인데도 나의 고객들은 그런 나를 적당히 눈감아
주는 눈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언제 이쯤에 도달되었는지 가끔씩 지난 생을 뒤적여 때가 있다.
나를 멀찍이 놔두는 경우도 있다. 그러노라면 나의 자아는 멀리 볼수록 가까워지기도
한다. 삶이란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해야 지나갈 있는 길이기도 하다.
바벨인 보다 무분별한 시대의 혼란을 성찰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세상은 많은 인연으로 맺혀 있고 자질구레한 모든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을 서로 존경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실린 기원도 한다.
슬프게도 나는 외로움에 여태 면역이 되어 있다. 푸르른 하늘을 자주 우러러보며 언제나
고즈넉함을 마음에 두며 문학을 사랑하고 아꼈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신비롭게도 말을 아끼려고 했고 감성을 싹틔우는 비슷한 자세가 되고는
했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절망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해도 나는 여전히 절망이라는 영역을
대신하는 문학이라는 스승을 어떤 다른 장르에서도 구할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관념은 장르에서 장르로 넘어갈 간혹 서먹해지는 결점을 지녔다.
오늘은 매우 유익하게 다가오는 느낌이 유별나다.
새로운 외로움이 다가오는 듯한, 어두워지는 저녁 숲을 닮으며 나도 오늘 저물고 있다.
무언가를 기억하는 일이 어떻게 기도로 변모하는지 오늘 숲이 내게 가르쳐 주는
. 여름, 무엇엔가 나를 몰두할 있는 절망을 새롭게 인식하겠다.
더럭 어디론가 돌아가고 싶은 외로운 날이다.

맹하린의 생활 포커스. 새해를 맞으며




아인스타인이 독일의 인플레이션 시대에 살고 있을 , 미국의 일부 사람들이 그를 구제하려고 아인스타인 앞으로 수표를 보냈다.
하지만 회답이 없었다. 그들은 수표의 행방보다는 아인스타인의 신상에 대해서 날이 갈수록 걱정이 쌓여 아인스타인의 친구를 찾아 갔는데 그의 질문이 걸작이었다.
혹시 아인스타인에게 수표를 보낸 아니겠지요?
물론 아인스타인에게 보냈습니다. 우리가 굶주림에서 구하고자 하는 분은 아인스타인 바로 그분이니까요.
그런데 아인스타인의 친구는 수표를 아인스타인의 부인 앞으로 보냈어야 한다면서 곧장 부인에게 전보를 치도록 권유하였다.
그들이 전보를 받아 부인은 아인스타인이 읽고 있던 책에서 서표로 사용되고 있는 수표를 찾아내었다. 아인스타인이 수표를 받은 날은 3주일 정도 지나 있었고 그는 진정 굶주리고 있었는데도 굶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수표는 당연히 아인스타인의 부인 앞으로 보내졌고 그리하여 아인스타인은 살아남을 있었다 아인스타인은 평소에는 물론이고 평생을 자기가 위인이라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인물이었으며 똑똑한 하는 태도 역시 전혀 찾아볼 없었다고 한다.
사실 만으로도 아인스타인은 진정한 위인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자신을 자기로부터 해방시킬 있는 사람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은 세상을 향한 인스피레이션(영감) 근원에 다다르게 하는 동기를 끈임없이 창출해 내야 한다. 진정한 예술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세상살이가 어떤 걸림돌이 되는 경우 또한 없지 않아 있다는 뜻이다.
어느덧 연말이다.
1 동안 어떤 삶을 지속해 왔는지 곰곰 되돌아보게도 된다.
쓰는 일에 넋이 빠져 가게나 집에 대한 정리정돈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자인한다.
감히 아인스타인에 비교할 의도 같은 없지만, 자신을 자기로부터 해방시킬 수는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갖추게도 된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도 같다.
매사에 찬미와 감사를 읊조릴 정도로.
몸의 3분의 2 바닥이나 의자에 닿으면 잠에 빠져드는 잠복.
실제로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과 12 31 자정에 전쟁터처럼 요란스럽다는 폭탄소리를 고작 밖에 듣고 해마다 잤다.
지금껏 반찬 걱정 같은 전혀 봤을 정도로 뭐든 뚝딱 식탁을 차리고, 소찬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맛있게 먹는 식복.
고집스럽게도 나는 아직껏 의료보혐이 없다.
웬만한 아픔은 내가 나를 치료하는 편이고 그동안 크게 아팠던 일도 드물었던 셈이다.
글에 몰두하기 위한 안테나라고 신뢰하고 아끼면서 여태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염색 한번 하고 제대로 유지해온 것도 복중의 복이라고 있겠다.
그리고 집착이나 애착을 쉽게 포기하는 장점 같기도 하고 단점 같기도 면도 꽤나 많다.
버릴 버리고 나니 사는 이리도 홀가분한 것을......
나는 때로 저녁 어스름보다 내가 어스레할 경우도 있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거룩해 보이기까지 한다는 점도 요즘 새롭게 생겨난 인식의 장이 되었다.
나처럼 살기도 쉽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내기도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라는 긍정이 새롭게 돋아난 결과일 것이다.
매사에 감사하며 누구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내고자 한다.
하루하루 사는 파문이기는 해도 새해엔 어떤 물결에 편승할지 두려움 없이 기꺼이 맞으며 유유히 흐르겠다.
세상이 온통 현란한 빛으로 나를 토닥이는 것만 같은 새벽에,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은 물론이고 나를 모르는 모든 분들에게까지 진솔한 인사를 챙기게 된다.
새해 많이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