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보라색 여름바지


 -문정희

여름 다 지나고 신선한 초가을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보라색 여름바지 하나 사 들고 돌아오며
벌써 차가운 후회가 바람처럼 숭숭
뼛속으로 스미어옴을 느낀다


왜 나는 모든 것을 저지른 후에야 아는가
만져보고 난 후에야 뜨겁다고 깨닫는가
늘 화상을 입는가
사람들이 이미 겨울을 준비할 때
여름의 잔해에 가슴을 태우고
사랑을 떠나 보낸 후에야 사랑에 빠져
한 생애를 가슴 치고 사는가


내 키보다 턱없이 긴 바지 단을 줄이며
내 어리석음을 가위로 잘라내며
애써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어 본다


누구나 정해진 궤도를 가는 건 아니지
돌발과 우연이 인생이기도 해
그러나 어느 가을날 하루가
더운 사랑으로 다시 뒤집힐 수 있을까
이 보라색 바지를 위해


무릎 아래까지 흰 별들이 총총 나 있는
보라색 여름바지를 입고 서서
홀로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숭숭 기어드는 차가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돈데 에스따(Donde esta)?



어젠 온세(Once) 지역에 위치한 하루(Haru=春)라는 일식집에서 작은
미팅이 있었습니다.
현지인을 위한 전도사이자 지금껏 큰소리라고는 내본 적이 없어 보이는
조용한 음성의 소유자이신 토요한국학교교장의 초대에 응하는 자리였습니다.
문협의 박 회장과 노부회장이 함께였어요.
에치켓을 지켜야 할 분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화기애애하지만
엄숙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 같은 게 껴듭니다.
하루는 들어 갈 때 텅텅 비었던 좌석이 나올 땐 현지인으로 가득 붐벼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홀로 살며시 애국자인 내 마음 절로 흡족했답니다.
하루는 일식전문의 식당이지만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등하교 길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마다
한국어가 전혀 아닌 서반아어만 주고 받는다는 사실.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사용할까라는 의지보다는 어떻게든 쉽고 간단하게
나오는 서반아어만을 사용하려는 교육현장에서의 서글픔.
12월에 빛을 보게 될 로스안데스문학지에 대한 얘기.
또는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처한 현황에 대해서도…….

문협 회원들이 항상 2차로 찾아가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박 회장이 자동차로 데려다 줘 10시에나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왜 초등학생이 일기를 쓰듯 이 글을 의도적으로 조목조목 적었나를 짧게
분석하자면 그렇습니다.
토요한국학교가 실시한 글짓기 대회에서 추수한 알곡들의 심사를 했을 당시에
맛보았던 낭패에 대한 어떤 울적함이라거나 일종의 실망에 대한 각성이 뒤늦게
틈을 비집고 있는 탓이라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심사란 그래요. 어떤 글들을 읽어봐도 읽어야 될 것을 읽기가 싫어지는 느낌에
휩싸이게도 되죠. 그러한 느낌을 새삼 당기어 보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열아홉 분의 한국인교사들이 근무하는 토요한국학교.
현지인과 일본인까지 뒤섞인 특수반은 물론이고, 백 명이 넘는 학생으로 구성된
토요한국학교의 글짓기는 가히 천편일률의 극치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에 여행을 갔었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는 내용만을 심사 했었던
그 지루했던 기억이라니요.
그것은 단순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적절한, 어딘지 모르게 기초만을 쌓아올린
조각놀이와 흡사했었습니다.
사실 단순하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그리 나쁜 뜻은 아닐 것입니다. 단순하지 않아야
할 때 단순하다면 단순하다는 게 문제겠지만요.
겨울방학이라는 제목은 참 그럴 듯 했는데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전체 모두
단체행사처럼 단순해서 탈이었습니다.
주말에 가장 바쁜 편인 내 생업의 특성상 약간의 지적이라도 쫒아가 제시할
수는 없어서 문협의 그 어떤 분이라도 참석하여 제발 제목은 같을지라도
내용은 좀 더 개성미가 엿보이는 글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던 날에
대한 을씨년스럽던 각성조차 함께했던...... .

아버지가방에들어갔다가 아니라,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내 가방 어디 있어요)?
의 현장에서 우리의 2세들에 대한 짧고도 긴 감사와 염려, 그러니까 가방이라는
단어는 다행히 건졌다는 짧은 안도에 대한 고마움과, 어디에 있는지 갈수록 의문
이 되는 우리의 정체성은 말 그대로 돈데 에스따? 가 된 걱정스런 현실을 앞에
두고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니어서 잠시 심각해진 나머지 나야말로 어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의 하루를 하루에 다녀와 잘 이행했었나 봅니다.
나의 하루 역시 잘 편집되어 지낼 때 간혹 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히 흐를
경우 또한 부지기수였음을 새삼 자인하게도 됩니다.

몸의 3분의 1만 바닥이나 의자에 닿아도 쉽게 단잠에 빠져드는 편인 내 잠속으로
돈데 에스따 미 가방이라는 언어 또한 혼돈되어 함께 잠든 밤…….
어제는 바로 그런 밤이었습니다.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돈데 에스따.......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물가에서의 하루



               -천양희
하늘 한 쪽이 수면에 비친다 물총새가 물속을 들여다보고
소금쟁이 몇개 여울을 만든다 내가 세상에 와
첫 눈을 뜰 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하늘보다는
나는 새를 물보다는 물 건너가는 바람을 보았기를 바란다
나는 또 논둑길 너머 잡목숲을 숲 아래 너른 들판을 보았기를
바란다 부산한 삶이 거기서 시작되면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산그늘이 물속까지 따라온다 일렁이는
물결 속 청둥오리들 나보다도 더 오래 물 위를 헤맨다 너는
아는 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물이라는 걸 아는구나 오늘따라
새들의 날갯짓이 훤히 보인다 작은 잡새라도 하늘에다 커다란
원을 그리고 낮게 내려갔다가 다시 솟아오른다 비상! 절망할 때마다
우린 비상을 꿈꾸었지 날개가 있다면...... 날 수만 있다면...... 날개는
언제나 나는 자의 것이다 뱃전에 기대어 날지 않는 거위를
생각한다 거위의 날개를 생각한다 물은  왜 고이면 썩고 거위는
왜 새이면서 날지 않는가 해가 지니 물소리도 깊어진다 살아있는
것들의 모든 속삭임이 물이 되어 흐른다면......물소리여
너는  세상에 대해
무엇이라 대답할까 또 소리칠까 소리칠 수 있을까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부엌

-장석남


늦은 밤에 뭘 생각하다가도 답답해지면 제일로 가볼 만한 곳은 역시 부엌일밖에 달리 없지. 커피를 마시자고 조용조용히 덜그럭대는 그 소리는 방금 내가 생각하다 놔둔 詩 같고.(오 詩 같고) 쪽창문에 몇 방울의 흔적을 보이며 막 지나치는 빗발은 나에게만 다가와 몸을 보이고 저만큼 멀어가는 허공의 유혹 같아 마음 달뜨고,(오 詩 같고) 매일매일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고요의 이 반질반질한 빛들을 나는 사진으로라도 찍어볼까. 가스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은 어디에 꽂아두고 싶도록 어여쁘기도 하여라. 내가 빠져나오면 다시 사물을 정리하는 부엌의 공기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아도 또 詩 같고, 공기 속의 그릇들은 내 방의 책들보다 더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다가 먼 데 보는 詩集 같고.

화살 노래

     -문정희


    이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기실은 돈보다도 더 많이
    말(言)을 사용하며 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가야한다

    하지만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단다
    한 번 쓰고 나면 어딘가에 박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무성한 화살숲 속에
    살아있는 생명, 심장 한 가운데 박혀
    오소소 퍼져가는 독 혹은 불꽃
    새 경전(經傳)의 첫 장처럼
    새 말로 시작하는 사랑을 보면
    목젖을 떨며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돈보다도 더 많이
    말을 사용하다 가리라
    말이 제일 큰 재산이니까
    이 말을 할 때면 정말
    조금 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