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보라색 여름바지
-문정희
여름 다 지나고 신선한 초가을날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보라색 여름바지 하나 사 들고 돌아오며
벌써 차가운 후회가 바람처럼 숭숭
뼛속으로 스미어옴을 느낀다
왜 나는 모든 것을 저지른 후에야 아는가
만져보고 난 후에야 뜨겁다고 깨닫는가
늘 화상을 입는가
사람들이 이미 겨울을 준비할 때
여름의 잔해에 가슴을 태우고
사랑을 떠나 보낸 후에야 사랑에 빠져
한 생애를 가슴 치고 사는가
내 키보다 턱없이 긴 바지 단을 줄이며
내 어리석음을 가위로 잘라내며
애써 따스한 입김을 불어넣어 본다
누구나 정해진 궤도를 가는 건 아니지
돌발과 우연이 인생이기도 해
그러나 어느 가을날 하루가
더운 사랑으로 다시 뒤집힐 수 있을까
이 보라색 바지를 위해
무릎 아래까지 흰 별들이 총총 나 있는
보라색 여름바지를 입고 서서
홀로 낙엽 지는 소리를 듣는다
숭숭 기어드는 차가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돈데 에스따(Donde esta)?
어젠 온세(Once) 지역에 위치한 하루(Haru=春)라는 일식집에서 작은
미팅이 있었습니다.
현지인을 위한 전도사이자 지금껏 큰소리라고는 내본 적이 없어 보이는
조용한 음성의 소유자이신 토요한국학교교장의 초대에 응하는 자리였습니다.
문협의 박 회장과 노부회장이 함께였어요.
에치켓을 지켜야 할 분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화기애애하지만
엄숙하면서도 조심스러워지는,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 같은 게 껴듭니다.
하루는 들어 갈 때 텅텅 비었던 좌석이 나올 땐 현지인으로 가득 붐벼
있어, 언제나 어디서나 홀로 살며시 애국자인 내 마음 절로 흡족했답니다.
하루는 일식전문의 식당이지만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어요.
등하교 길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학부모들이 자녀들과 나누는 대화마다
한국어가 전혀 아닌 서반아어만 주고 받는다는 사실.
어떻게 하면 한국어를 사용할까라는 의지보다는 어떻게든 쉽고 간단하게
나오는 서반아어만을 사용하려는 교육현장에서의 서글픔.
12월에 빛을 보게 될 로스안데스문학지에 대한 얘기.
또는 각자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처한 현황에 대해서도…….
문협 회원들이 항상 2차로 찾아가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즐기고 박 회장이 자동차로 데려다 줘 10시에나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내가 왜 초등학생이 일기를 쓰듯 이 글을 의도적으로 조목조목 적었나를 짧게
분석하자면 그렇습니다.
토요한국학교가 실시한 글짓기 대회에서 추수한 알곡들의 심사를 했을 당시에
맛보았던 낭패에 대한 어떤 울적함이라거나 일종의 실망에 대한 각성이 뒤늦게
틈을 비집고 있는 탓이라고 보여 지는 것입니다.
심사란 그래요. 어떤 글들을 읽어봐도 읽어야 될 것을 읽기가 싫어지는 느낌에
휩싸이게도 되죠. 그러한 느낌을 새삼 당기어 보는 중이라고나 할까요?
열아홉 분의 한국인교사들이 근무하는 토요한국학교.
현지인과 일본인까지 뒤섞인 특수반은 물론이고, 백 명이 넘는 학생으로 구성된
토요한국학교의 글짓기는 가히 천편일률의 극치였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에 여행을 갔었고, 잘 놀고 잘 먹고 잘 잤다는 내용만을 심사 했었던
그 지루했던 기억이라니요.
그것은 단순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적절한, 어딘지 모르게 기초만을 쌓아올린
조각놀이와 흡사했었습니다.
사실 단순하다는 건 어떤 의미로는 그리 나쁜 뜻은 아닐 것입니다. 단순하지 않아야
할 때 단순하다면 단순하다는 게 문제겠지만요.
겨울방학이라는 제목은 참 그럴 듯 했는데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전체 모두
단체행사처럼 단순해서 탈이었습니다.
주말에 가장 바쁜 편인 내 생업의 특성상 약간의 지적이라도 쫒아가 제시할
수는 없어서 문협의 그 어떤 분이라도 참석하여 제발 제목은 같을지라도
내용은 좀 더 개성미가 엿보이는 글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던 날에
대한 을씨년스럽던 각성조차 함께했던...... .
아버지가방에들어갔다가 아니라,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내 가방 어디 있어요)?
의 현장에서 우리의 2세들에 대한 짧고도 긴 감사와 염려, 그러니까 가방이라는
단어는 다행히 건졌다는 짧은 안도에 대한 고마움과, 어디에 있는지 갈수록 의문
이 되는 우리의 정체성은 말 그대로 돈데 에스따? 가 된 걱정스런 현실을 앞에
두고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니어서 잠시 심각해진 나머지 나야말로 어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의 하루를 하루에 다녀와 잘 이행했었나 봅니다.
나의 하루 역시 잘 편집되어 지낼 때 간혹 있으나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히 흐를
경우 또한 부지기수였음을 새삼 자인하게도 됩니다.
몸의 3분의 1만 바닥이나 의자에 닿아도 쉽게 단잠에 빠져드는 편인 내 잠속으로
돈데 에스따 미 가방이라는 언어 또한 혼돈되어 함께 잠든 밤…….
어제는 바로 그런 밤이었습니다.
돈데 에스따 미 가방?
돈데 에스따.......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물가에서의 하루
-천양희
하늘 한 쪽이 수면에 비친다 물총새가 물속을 들여다보고
소금쟁이 몇개 여울을 만든다 내가 세상에 와
첫 눈을 뜰 때 나는 무엇을 보았을까 하늘보다는
나는 새를 물보다는 물 건너가는 바람을 보았기를 바란다
나는 또 논둑길 너머 잡목숲을 숲 아래 너른 들판을 보았기를
바란다 부산한 삶이 거기서 시작되면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바라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산그늘이 물속까지 따라온다 일렁이는
물결 속 청둥오리들 나보다도 더 오래 물 위를 헤맨다 너는
아는 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물이라는 걸 아는구나 오늘따라
새들의 날갯짓이 훤히 보인다 작은 잡새라도 하늘에다 커다란
원을 그리고 낮게 내려갔다가 다시 솟아오른다 비상! 절망할 때마다
우린 비상을 꿈꾸었지 날개가 있다면...... 날 수만 있다면...... 날개는
언제나 나는 자의 것이다 뱃전에 기대어 날지 않는 거위를
생각한다 거위의 날개를 생각한다 물은 왜 고이면 썩고 거위는
왜 새이면서 날지 않는가 해가 지니 물소리도 깊어진다 살아있는
것들의 모든 속삭임이 물이 되어 흐른다면......물소리여
너는 세상에 대해
무엇이라 대답할까 또 소리칠까 소리칠 수 있을까
2011년 10월 29일 토요일
부엌
-장석남
늦은 밤에 뭘 생각하다가도 답답해지면 제일로 가볼 만한 곳은 역시 부엌일밖에 달리 없지. 커피를 마시자고 조용조용히 덜그럭대는 그 소리는 방금 내가 생각하다 놔둔 詩 같고.(오 詩 같고) 쪽창문에 몇 방울의 흔적을 보이며 막 지나치는 빗발은 나에게만 다가와 몸을 보이고 저만큼 멀어가는 허공의 유혹 같아 마음 달뜨고,(오 詩 같고) 매일매일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고요의 이 반질반질한 빛들을 나는 사진으로라도 찍어볼까. 가스레인지 위의 파란 불꽃은 어디에 꽂아두고 싶도록 어여쁘기도 하여라. 내가 빠져나오면 다시 사물을 정리하는 부엌의 공기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아도 또 詩 같고, 공기 속의 그릇들은 내 방의 책들보다 더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읽다가 먼 데 보는 詩集 같고.
화살 노래
- -문정희
이 말을 할 때면 언제나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기실은 돈보다도 더 많이
말(言)을 사용하며 살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을 많이 모아야 한다
그리고 잘 쓰고 가야한다
하지만 말은 칼에 비유하지 않고
화살에 비유한단다
한 번 쓰고 나면 어딘가에 박혀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날카롭고 무성한 화살숲 속에
살아있는 생명, 심장 한 가운데 박혀
오소소 퍼져가는 독 혹은 불꽃
새 경전(經傳)의 첫 장처럼
새 말로 시작하는 사랑을 보면
목젖을 떨며 조금 울게 된다
너는 이제 물보다도 불보다도
돈보다도 더 많이
말을 사용하다 가리라
말이 제일 큰 재산이니까
이 말을 할 때면 정말
조금 울게 된다
2011년 10월 28일 금요일
바람의 말
| -마종기- | ||
| - | ||
|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부는 쪽으로 귀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 ||
신발을 잃다
이재무
소음 자욱한 술집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한참을 즐기다 나오는데 신발이 없다
눈 까뒤집고 찾아도 도망간 신발 돌아오지 않는다
돈 들여 장만한 새신 아직 길도 들이지 않았는데
감쪽같이 모습 감춘 것이다 타는 장작불처럼
혈색 좋은 주인 넉살 좋게 허허허 웃으며 건네는
누군가 버리고 간 다 해진 것 대충 걸쳐
문밖 나서려는 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찬바람,
그러잖아도 흥분으로 얼얼해진 뺨
사정없이 갈겨버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구멍난 양심에 있는 악담 없는 저주 퍼부어대도
맺혔던 분 쉬이 풀리지 않는데
어느 만큼 걷다보니 문수 맞아 만만한 신
거짓말처럼 발에 가볍다
투덜대는 마음 읽어내고는 발이 시키는 대로
다소곳한 게 여간 신통방통하지가 않다
그래 생각을 고치자
본래부터 내 것 어디 있으며 네 것이라고 영원할까
잠시 빌려쓰다가 제 자리에 놓고 가는 것
우리네 짧고 설운 일생인 것을.
새 신 신고 갔으니 구린 곳 밟지 말고
새 마음으로 새 길 걸어 정직하게 이력 쌓기 바란다
나는 갑자기 새로워진 헌 신발로, 스스로의 언약을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새 눈
인주 삼아 도장 꾹꾹 내리찍으며
영하의 날씨 대취했으나 반듯하게 걸어 집으로 간다
소음 자욱한 술집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한참을 즐기다 나오는데 신발이 없다
눈 까뒤집고 찾아도 도망간 신발 돌아오지 않는다
돈 들여 장만한 새신 아직 길도 들이지 않았는데
감쪽같이 모습 감춘 것이다 타는 장작불처럼
혈색 좋은 주인 넉살 좋게 허허허 웃으며 건네는
누군가 버리고 간 다 해진 것 대충 걸쳐
문밖 나서려는 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찬바람,
그러잖아도 흥분으로 얼얼해진 뺨
사정없이 갈겨버린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구멍난 양심에 있는 악담 없는 저주 퍼부어대도
맺혔던 분 쉬이 풀리지 않는데
어느 만큼 걷다보니 문수 맞아 만만한 신
거짓말처럼 발에 가볍다
투덜대는 마음 읽어내고는 발이 시키는 대로
다소곳한 게 여간 신통방통하지가 않다
그래 생각을 고치자
본래부터 내 것 어디 있으며 네 것이라고 영원할까
잠시 빌려쓰다가 제 자리에 놓고 가는 것
우리네 짧고 설운 일생인 것을.
새 신 신고 갔으니 구린 곳 밟지 말고
새 마음으로 새 길 걸어 정직하게 이력 쌓기 바란다
나는 갑자기 새로워진 헌 신발로, 스스로의 언약을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새 눈
인주 삼아 도장 꾹꾹 내리찍으며
영하의 날씨 대취했으나 반듯하게 걸어 집으로 간다
2011년 10월 27일 목요일
가재미
-문태준 *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적막한 바닷가
2011년 10월 26일 수요일
느티나무
― 배문성 정오가 지났을 때였지요. 왜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시간… 며칠 전, 집 마당에 심어둔 느티나무가 천천히 흔들리는 것을 오랫동안 본 일이 있습니다. 잔잔하게 흔들리는 이파리들은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뭉쳐서 유연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요. 쏟아지는 햇살을 가득 안고 이파리들은 무엇인가, 자신이 품고 있는 것을 털어놓고 있었지요.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음악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란 것, 공기라는 것, 또는 광선이라는 것, 그것들이 모여서 만든 이파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완전한 소통 속에 흔들리고 있었지요. 잔잔하고 격렬하고, 때론 부질 없다는 듯… 아,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 괜히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집으로 들어와버렸습니다. 차마 더 이상 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웠지요. 그게 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쏟아지는 것들 속에 있는 추억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 광경을 볼 수 없었습니다. 결단코 사연은 없습니다. 사연도 없이 추억은 차례로 뚝뚝 떨어집니다. 죽음도 추억이 되는지? 아니면… 단죄. 아 그것은 우습습니다. 추억은 오로지 죄책감 속에서만 각인됩니다. 용서. 그래… 안도감 같은 것이 그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창을 열고 피아노음이 느티나무에게로 다가가기를 바랐습니다. 음악이 마치 가는 끈처럼 휘돌며 느티나무의 율동과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그리고 내 마음도 그 한가운데에서 같이 휘돌기를 기다렸습니다. 저 느티의 율동을 내 몸이 느끼고 저 바하의 음에 내 마음이 가 닿기를 바랐습니다. 천천히… 용서받는다는 느낌… 이랄까. 이제 그만해도 된다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춤이 내 속에서 조금씩 새나오고 있었습니다
어제
박정대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 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李賀의 <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어제는 네 편지가 오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적막한 우편함을 쳐다보다가 이내 내 삶이 쓸쓸해져서, <복사꽃 비 오듯 흩날리는데,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 취하라, 劉伶도 죽으면 마실 수 없는 술이거니!>, 李賀의 <將進酒>를 중얼거리다가 끝내 술을 마셨다, 한때 아픈 몸이야 술기운으로 다스리겠지만, 오래 아플 것 같은 마음에는 끝내 비가 내린다
어제는 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슬펐다,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리다 골방을 뛰쳐나가면 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는 소리가, 자꾸만 부서지려는 내 마음의 한 자락 낙엽 같아 무척 쓸쓸했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면 메마른 가슴에선 자꾸만 먼지가 일고, 먼지 자욱한 세상에서 너를 향해 부르는 내 노래는 자꾸만 비틀거리며 넘어지려고 한다
어제는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펐다, 네가 너무나 보고 싶어 언덕 끝에 오르면 가파른 생의 절벽 아래로는 파도들의 음악만이 푸르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푸른 음악의 한가운데로 별똥별들이 하얗게 떨어지고, 메마른 섬 같은 가을도 함께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 낡은 기타를 매만질 때, 너는 서러운 악보처럼 내 앞에서 망연히 펄럭이고 있었다
어제는 너무 심심해 오래된 항아리 위에 화분을 올려놓으며, 우리의 사랑도 이렇게 포개어져 오래도록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우젓 장수가 지나가든 말든, 우리의 생이 마냥 게으르고 평화로울 수 있는, 일요일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는 두툼한 외투를 껴입고 밤새도록 몇 편의 글을 썼다, 추운 바람이 몇 번씩 창문을 두드리다 갔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속 톱밥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톱밥이 불꽃이 되어 한 생애를 사르듯, 우리의 生도 언젠가 별들이 가져가겠지만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때 늦은 추위
맹하린
세상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뭇 학자들의 이론은 매우 적절하면서도
우려가 제대로 깃든, 확실한 진단인 것만 같다.
아침저녁은 물론이고 한낮에도 춥다.
이미 봄이 깊었는데도 말이다.
유난히 추위에 약한 나지만 교민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의류도매나
소매, 또는 제품 업이나 부속 상에 올인하고 있는 분들의 애로사항이 눈에
훤히 보인다.
두꺼운 옷을 걸치기도 송구스러운 날씨의 연속이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얇은 옷을 여러 벌 겹쳐 입어내고 있다.
한동안 뜸하던 친구들이 요즘 번갈아 가며 내 가게를 방문해 온다.
커피를 내놓자마자 하소연 꾸러미를 풀어놓고 이 문제, 저 문제 펼쳐 놓는다,
마치 내게 입맛이 당기는 이슈를 맘대로 골라 보라며 제시하는 느낌이 든다.
J교회 사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이들이 유난히 많다.
한국의 시어머니에게 아홉 살 난 아들을 맡겼고, 멀고 먼 이 나라까지 떠나 와야
했던 어느 이혼녀의 애절함도 한몫을 한다.
아직은 풋풋한, 40도 안된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다.
남편의 무시라거나 편견에 자존심 있는 대로 모두 부서진 그녀에게 나는 차마
재결합이라는 카드를 못 꺼낸다.
무시나 편견도 일종의 사랑이 담긴 표현이라는 말만 애매모호하게 건넨다.
부부간의 문제는 꼬집어 답을 주는 것보다 애매모호가 그나마 약간 낫다.
언제나 똑 같은 레퍼토리로 싸우는 부부들…….
그들에겐 절대로 한 쪽 편을 들어주면 아니 된다는 단정이 앞선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줄이게 되는 것 같다.
이 나라건 한국이건 그 어디가 되던 아이와 속히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말만은
매우 간곡히 전달하기에 이르른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어머니도 자식과 떨어져 사는 상황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추구
하기가 요원한 일인 듯 하고, 그 진리는 불을 보듯 뻔 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곧 여름이 온다.
이 봄처럼 추운 여름은 아니길 바라게 된다.
나는 여전히 반찬 하나와 밥 한 공기에도 감사와 찬미의 숭늉까지 챙겨 마시는
타고난 식성에 나름 만족하는 소탈함을 지닌 소유자다.
소탈한 형편에 처해 있을 때조차 소탈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탈, 그 자체인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을.
분명한 것은 평소에는 물론이고 식사시간에는 특히, 나이라던가 명예나 재산,
그런 것들의 크고 작음에 대한 *'참을 수 없는존재의 가벼움' 까지 반찬으로 모셔 놓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늘 점심은 나보다 아들을 위해서 제대로 된 정성을 쏟았다.
당면과 후추와 파 송송을 필히 넣은 갈비탕에. 생채, 고들빼기김치, 그리고 멸치볶음
이 주를 이룬 식탁이다.
오늘저녁 사라사 거리에 있는 한국관에서 있을 모임에는 반전을
전개하듯 털로 된 반코트를 입고 나갈 생각이다.
때로 나 이리도 생뚱맞다.
내 특유의 생활방식이며 나 홀로 치르는 데모다.
춥긴 춥다. 마음도 꽤나 추운 날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테라의 소설 제목
여울이라는 말
-복효근 여울이란 말 예쁘지 않나요? 내 애인의 이름이 여울이었으면 좋겠어요. 세월이 여울져간다는 말 어딘가 여유 있어 보이지 않나요? 강여울 여울여울 기복도 결도 보이지 않는 그 한가로운 표정이 넉넉해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강이나 바다에 바닥이 얕거나 너비가 좁아서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이라는 강퍅한 뜻을 가진 말이란 것도 아시나요? 내 애인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단박에 그 빠른 물길에 휩쓸어 가버리면서도 그 표정은 여울이란 말처럼이나 끄떡없어서 내가 여울에 빠져 허우적댄다 해도 남들이 듣기에 어째 그 동작이 춤처럼은 느껴지지 않을래나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는 그 뻔뻔한 그래서 천만번은 더 빠져나 보고 싶은 여울 여울이란 말 참 예쁘지 않나요?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종교에 관하여
심보선
1
세기말을 지나 휘황한 봄날이다
귀를 틀어막은 청소부가 실패한 비유들을 쓸어 담고 있는데
꽃가루들은 사방에서 속수무책으로 흩날린다
눈물을 획책하고 있는 저 미세한 말씀들, 지금은
알레르기가 종교를 능가하는 시대라서
파멸과 구원이 참으로 용이해졌다
2
소식이라도 한번 주지 그랬니
난 너무 외로워서 아무 병에라도 전염되었으면 하다가
어제는 느즈막이 강변에 나가 놀다 들어왔다
니가 돌려보낸 편지봉투 속에 편지지처럼
잘게 찢긴 달빛들이 물결 위로 흐르고
밤하늘에 빼곡하게 뜬 별자리들
그 하나하나에 일일이 귀의하고 싶더라
너를 잊기 위해 나 그간 여러 번 개종하였다
3
아침에 가출한 탕아가
저녁밥 먹으려고 귀가하고 있다
방랑의 증거로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사막에 나가면 눈이 너무 따금거려요, 아버지
얘야, 거긴 사막이 아니라 그냥 공원 놀이터란다
어쨌든 내일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어요
필요한 것은 단단한 다짐이 아니라 신용카드 몇 장
4
꽃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져 흩날리는 생의 신비여
십자가 위에서 으아, 기지개 피는 낙담한 신성이여
이제 내 몸엔 구석구석마다 가지각색의 영혼들이 깃들어 있다
다들 사소해서 다들 무고하다
새에 대한 반성문
詩 복효근 이 몽당빗자루 같은 날 운암댐 소롯길에 서서 날개소리 가득히 내리는 청둥오리떼 본다 혼자 보기는 아슴찬히 미안하여 그리운 그리운 이 그리며 본다 우리가 춥다고 버리고 싶은 세상에 내가 침 뱉고 오줌 내갈긴 그것도 살얼음 깔려드는 수면 위에 머언 먼 순은의 눈나라에서나 배웠음직한 몸짓이랑 카랑카랑 별빛 속에서 익혔음직한 목소리들을 풀어놓는 별, 별, 새, 새, 들, 을, 본다 물 속에 살며 물에 젖지 않는 얼음과 더불어 살며 얼지 않는 저 어린 날개들이 건너왔을 바다와 눈보라를 생각하며 비상을 위해 뼈 속까지 비워둔 고행과 한 점 기름기마저 깃털로 바꾼 새들의 가난을 생각하는데 물가의 진창에도 푹푹 빠지는 아, 나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냐 내 관절통은 또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냐 그리운 이여, 네 가슴에 못 박혀 삭고 싶은 속된 내 그리움은 또 얼마나 얕은 것이냐 한 무리의 새떼는 또 초승달에 결승문자 몇 개 그리며 가뭇없는 더 먼 길 떠난다 이 밤사 나는 옷을 더 벗어야겠구나 저 운암의 겨울새들의 행로를 보아버린 죄로 이 밤으로 돌아가 더 추워야겠다 나는 한껏 가난해져야겠다
2011년 10월 23일 일요일
방을 얻다
나 희 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에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시,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러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새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2011년 10월 22일 토요일
양파는 가슴속에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안도현 양파는 가슴속에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짜장면 속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양파라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대로 짜장면 냄새가 되어 버린다. 그것이 양파의 숨결이다. 양파의 숨결이 없다면 짜장면의 맛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게 있다. 사랑에는 속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편리한 것보다는 편한 게 사랑 아닌가. 사무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가슴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무엇으로 맺히는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맺힘. 바로, 사무침이다
종이에 손을 베고
-이해인- 눈부시게 아름다운 흰 종이에 손을 베었다 종이가 나의 손을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도 피가 나다니 쓰라리다니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다짐해본다 세상에 그 무엇도 실상 가벼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들이 남을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누가 사는 것일까
김경미 약속시간 삼십 분을 지나서 연락된 모두가 모였다 우리는 국화꽃잎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서 웃었다 불참한 이도, 더 와야 할 이도 없었다 식사와 담소가 달그락대고 마음들 더욱 당겨 앉는데 문득 고개 돌린다 아무래도 누가 안 온 것 같다 잠깐씩 말 끊길 때마다 꼭 와야 할 사람 안 온 듯 출입문을 본다 나만이 아니다 다들 한번씩 아무래도 누가 덜 온 것 같아 다 모인 친형제들 같은데 왜 자꾸 누군가가 빠진 것 같지? 한번씩들 말하며 두 시간쯤이 지났다 여전히 제비꽃들처럼 즐거운데 웃다가 또 문득 입들을 다문다 아무래도 누가 먼저 일어난 것 같아 꼭 있어야 할 누가 서운케도 먼저 가버려 맥이 조금씩 빠지는 것 같아 자꾸 둘러본다 누굴까 누가 사는 것일까 늘 안 오고 있다가 먼저 간 빈 자리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저 기척은 기척뿐 아무리 해도 볼 수 없는 그들에겐 또 기척뿐일까 우리도 생은 그렇게 접시의 빠진 이 아무리 다 모여도 상실의 기척, 뒤척이는
스침에 대하여
송수권 직선으로 가는 삶은 박치기지만 곡선으로 가는 삶은 스침이다 스침은 인연, 인연은 곡선에서 온다 그 곡선 속에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다 스침은 느리게 오거나 더디게 온다 나비 한 마리 방금 꽃 한 송이를 스쳐가듯 스쳐 가는 것 오늘 나는 누구를 스쳐가는가 스침은 가벼움, 그 가벼움 속에 너와 나의 온전한 삶이 있다 저 빌딩의 회전문을 들고나는 스침 그것을 어찌 스침이라 할 수 있으랴 그러니 스쳐라, 아주 가볍게 - 송수권의 <스침에 대하여> 중에서 -
2011년 10월 21일 금요일
아무르 강가에서
박정대
그대 떠난 강가에서
나 노을처럼 한참을 저물었습니다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낮이
밤으로 몸 바꾸는 그 아득한 시간의 경계를
유목민처럼 오래 서성거렸습니다
그리움의 국경 그 허술한 말뚝을 넘어 반성도 없이
민가의 불빛들 또 함부로 일렁이며 돋아나고 발밑으로는
어둠이 조금씩 밀려와 채이고 있었습니다, 발밑의 어둠
내 머리 위의 어둠, 내 늑골에 첩첩이 쌓여 있는 어둠
내 몸에 불을 밝혀 스스로 한 그루 촛불나무로 타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대 떠난 강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타오르다 보면 내 안의 돌멩이 하나
뜨겁게 달구어져 끝내는 내가 바라보는 어둠 속에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날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초저녁별들이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야광나무 꽃잎들만 하얗게 돋아나던 이 지상의 저녁
정암사 적멸보궁 같은 한 채의 추억을 간직한 채
나 오래도록 아무르 강변을 서성거렸습니다
별빛을 향해 걷다가 어느덧 한 떨기 초저녁별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19회 소월시문학상 작품집』(문학사상사)에서
2011년 10월 20일 목요일
구월이 오면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구월의 강가에서 생각하는지요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우리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구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2011년 10월 19일 수요일
선물
맹하린 10월 셋째 일요일이던 어머니날 무렵. 나는 일 년 중 가장 큰 대목을 위해 사흘이나 복닥거리며 보냈다. 아니, 한 달 내내 준비하며 지냈다고 봐야겠다. 어디에서 그렇게나 많은 우리의 한국인 젋음들이 오고 오던지, 생각할수록 신비스럽다. 내게 동생 같은 친구 두세 명이 해마다 큰 행사를 치를 때마다 기꺼운 마음을 보태며 도와주는 데도, 그리고 아들과 거의 밤새워 일하는 데도 주문에 비해 턱없이 상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줄서 있는 고객들이 많을 때조차도 전화 받고 배달 보내고 틈틈이 꽃바구니나 꽃다발을 만들어 내느라 나는 내가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으로 흐르는 중인지를 완벽하게 잊고야 마는, 내가 나에게서 꽤나 멀어져 있는 순간들의 연속인 과정으로 떠밀리듯 가고 갔었다. 물론 또래의 친구들이 도와 준 날들도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몇 년을 힘든 내색도 없이 해내던 일을 고작 한 나절하고는 일주일 동안 몸살을 앓는 연약형 체질인 걸로 부족하여 귀족형 여인들이라서 내 쪽에서 사양하는 입장으로 굳혀진 셈이다. 그렇게 일하고 저녁에 친구들과 식당에 닿아, 친구들이 즐겨하는 보양전골을 시켜주고 아들과 나는 따로 시킨 돌솥비빔밥이나 순두부찌개를 너무 지쳐 거의 못 먹고 앉아 있노라면 이윽고 친구들의 염려가 마치 꽃꽂이처럼 장식된다. 일찍, 먼저, 어서 집으로 돌아가 쉬라는 권유바구니와 배려다발되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와 잊지 않고 해내는 일이 지폐를 정리하는 일이다. 경기가 아무리 곤두박질을 친다고 해도 우리의 2세들이 어머니날에 이행하는 연례행사는 날이 갈수록 더하면 더 했지 결코 시들지는 않는 것 같다. 남편이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가 생존해 있을 때는 와병 중이던 그에게 정확한 액수를 알려주기 위해 지폐의 얼굴을 가지런히 정리한 뒤 세어보다가, 결국 다 못 파악하고 쓰러져
잠들기 마련이었는데, 그래서 그 다음날 새벽에야 매상액을 남편에게 알려줄
수 있었는데, 그런데 그가 떠나고 난 4년 동안 도대체 왜 졸리기는 한데 끝까지
모두 세어내기까지 할 수 있는지, 그 진위가 참으로 의아스럽다. (나의 맘고생 모조리 다 챙겨들고 떠난 남편이여! 나는 이리도 의연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꽃가게를 운영하는 일이 중노동이긴 하지만, 꽃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우아함의 대명사라도 된다는 듯 매번 부러워하는 단순편리형인 지인들. 대다수의 그들 때문에 나는 그럭저럭 행복한 사람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비일비재이고 부지기수다. 불현듯 아들이 깜짝 놀라며, 너무 바빠서 내게 선물한다는 걸 잊었노라고 몹시도 미안함을 표시해온다. 그럴 때 나는 일단 짓궂어지는가 하면 매우 너그러워지기도 한다. “ 글쎄, 그랬더라니까! 내년엔 절대로 잊지 않았으면 고맙겠다는 것도 알아둘래? 그런데 난 선물 받았는데……. 그렇게나 많은 일을 도와준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선물은 결코 없다고 보는데 “ 이쯤에서 나는 속으로만 말한다. (너 사는 모습 전체가 내게 선물이야. 고마워 아들!) 이왕 고마움의 장을 펼쳤으므로 나는 친구들에게도 내 안에서 끝나는 나만의 메시지를 건네기 시작 한다. (친구들, 고마워 나의 일을 자기들 일처럼 도맡아 해줘서.) (파수꾼이 되어 준 친구들도 감사합니다. 어찌하여 고생의 극치로만 여겨지는 고난도의 희생을 사서 하는지 쉽게 용납이 안 되지만, 마음마다 자주 실금으로 갈라짐을 자인하면서 완전 밉지만, 그렇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였습니다. 그 어떤 선물보다 커다란 선물 같아요. 감사합니다. 만약 그대들이 어머니였고, 내가 어머니가 아니었더라면 일이 여기에 이르진 않았을 것만 같아 문득 송구스럽습니다. 한동안 나는 내 감성을 어떻게 하면 표현하지 않는가에 몰두하며 어떻게 지우는가에 대해서만 정신을 빼앗겨 왔던 듯도 합니다.) 새삼,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오늘은 바로 그런 날이다.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 (黃芝雨)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우산
맹하린 비 때문에 우산을 펴지는 않아요 아리도록 미어지는 마음을 펴는 거에요 해 반짝 얼굴 내밀어 우산을 접는 건 아니어요 다독다독 너무 과다하게 펼쳐지려는 마음 가다듬으려는 의미를 접는 거에요 감성이, 선연한 평온이나 고뇌에 닿아 있을 때 기다려도 비 내리지 않으면 무의식적이게도 우산을 폈다 접었다 그래요 그 어떤 사막에서도 우산을 패대기치지는 않았거든요 우산은 어쩌면 생존 주머니 같아요 살아가는 갸륵한 구도 가득어니 펴지거나 접히거든요 저런! 몇 년이나 아무 일도 안 일어났군요 난생 처음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어요 내 눈은 어느새 우산을 찾고 있어요 이미 우산을 펼치고 있는 나의 손이어요 비가 나를 초대 할 때면, 비는 그래요 시도 때도 없이 손짓하고 불러내요 비에게 낯가림 하듯 우산을 펴 왔어요 역광을 받은 것처럼 우산 속에서는 비의 얼굴 잘 안보여요 비의 무릎이나 발이 주로 보이죠 찢기고 벗겨지고 헐어버린 무릎과 발이어요 보이세요 격정으로 뿌리 뻗으며 발끝으로 다가서는 비 문득 위기에서의 생존되어 달래듯 우산을 펴고 있어요
2011년 10월 15일 토요일
어머니날에...
온갖 실패와 불행을 겪으면서도 인생의 신뢰를 잃지 않는 낙천가는 대개 훌륭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 난 사람들이다. 앙드레 모루아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풀로리앙 집은 어머니의 몸을 대신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몸이야말로 언제까지나 사람들이 동경하는 최초의 집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안전했으며 또 몹시 쾌적하기도 했다. - S. 프라이드 청춘은 퇴색되고 사랑은 시들고 우정의 나뭇잎은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어머니의 은근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 나간다. 올리버 호움즈 남에게 어떠한 행동을 하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도 결정된다. 남에게 행복을 주려고 하였다면 그만큼 자신에게도 행복이 온다. 자녀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행복을 느낀다. 자기 자식이 좋아하는 모습은 어머니의 기쁨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이치는 부모나 자식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이기철 나는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스무 번 미워했다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랴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돌멩이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구르고 새들은 나뭇잎의 건반을 두드리며 귀소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갈아입힌다 어둠이 나무 그림자를 끌고 산 뒤로 사라질 때 저녁 밥 짓는 사람의 맨발이 아름답다 개울물이 필통 여는 소리를 내면 갑자기 부엌들이 소란해진다 나는 저녁만큼 어두워져서는 안된다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는지
2011년 10월 13일 목요일
편지
채호기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 소근소근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중 몇 개의 조약돌은 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 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겠죠. 그토록 자제하려 애써도 어느새 평온함을 딛고 빠져나와 세찬 물살을 가르는 저 돌들이 당신 가슴에 억지로 가라앉혀둔 말이었겠죠. 당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는 심장 속에 두근거리는.
우표 한 장 붙여서
천양희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 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 않는 네 슬픔 같아 떨어진 후박 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어둠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볼 때까지 헐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 한 한 사람의 눈먼 자를 생각한다 누가 다른 사람 나만큼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 장 붙여서 부친 적 있나
2011년 10월 12일 수요일
섶섬이 보이는 방 -이중섭의 방에 와서
나희덕 서귀포 언덕 위 초가 한 채 귀퉁이 고방을 얻어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방보다는 차라리 관에 가까운 그 방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들이 해변에서 묻혀온 모래알이 버석거려도 밤이면 식구들의 살을 부드럽게 끌어안아 조개껍데기처럼 입을 다물던 방, 게를 삶아 먹은 게 미안해 게를 그리는 아고리와 소라껍데기를 그릇 삼아 상을 차리는 발가락군이 서로의 몸을 끌어안던 석회질의 방, 방이 너무 좁아서 그들은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높이 가질 수 있었다 꿈 속에서나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새를 타고 날아다니고 복숭아는 마치 하늘의 것처럼 탐스러웠다 총소리도 거기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섶섬이 보이는 이 마당에 서서 서러운 햇빛에 눈부셔 한 날 많았더라도 은박지 속의 바다와 하늘, 게와 물고기는 아이들과 해질 때까지 놀았다 게가 아이의 잠지를 물고 아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잡고 물고기는 아고리의 손에서 파닥거리던 바닷가, 그 행복조차 길지 못하리란 걸 아고리와 발가락군은 알지 못한 채 살았다 빈 조개껍데기에 세 든 소라게처럼 *화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가 서로를 부르던 애칭
2011년 10월 11일 화요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Feriado(국경일)에
맹하린 국경일이었던 어제도 나는 가게 문을 열었다. 이웃 가게들이 모두 열기 때문에도 열고, 휴일에 묘지를 방문하는 고객들을 위해서도 열고, 그리고 가게가 곧 내 오피스텔 역할을 함으로 해서도 연다. 이유다운 이유를 전부 대라고 누가 그런다면 갖다 부칠 이유라는 게 너무 많기만 하다. 아침나절엔 부인회장인 N여사의 기습방문이 있었다. 차기 한인회장 출마를 이유로, 추천을 받기 위한 서명용지를 든 채였다. 아르헨티나 한인사회에 여장부한인회장이 탄생될 기미가 싹튼 셈. 오후 2시에는 Rivadavia 6700대에 위치한 Aromi라는 현지인 레스토랑 2층에서 카페아메리카노를 매우매우 맛있게 향을 음미하면서까지 천천히 마셨다. 토요한국학교에서 개최된 한글날기념글짓기대회 심사를 겸한 로스안데스문학지 편집회의가 있었던 덕택이었다. (조금 전 주총무의 파격적인 전화를 받았다. 고국방문 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는 찻속에서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어제 했었는데... 특별히 다시 해 온 것. 감격!!!) 오후 6시 무렵이 되자 가게 앞거리는 여름휴가철처럼 자동차도 사람도 전혀 안보여 결국 가게 문을 일찍 닫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가게도 집도 너무 좋아한다. 살짝 걱정이 앞선다. 이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부분이 자꾸만 넘쳐나서 나, 나중에 어찌 세상을 곱게 떠날 수 있으려나, 그 비슷한 염려다.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꽉꽉 채운 내 책들. 적당히 어지럽혀진 커다란 원탁의 내 앉을벵이 책상. 그리고 아직은 추워서 보일러를 켜둔 온돌방. 나는 시나 소설을 쓸 경우엔 원탁을 마주하고, 이런 식의 잡문을 쓸 때는 온돌에 납작 엎뎌 쓰는 습관을 지녔다. 더할 나위 없이 진중하려거나 가장 편하게 쓰려는 의중에서 그러는 듯하다. 잡문 성격을 지닌 글들을 앞으론 자주 써낼 생각이다. 이쯤에서 어느 이름이 떠오른다. 어떤 언어도 떠오른다. 문득 새록새록 아프다. 난데없지는 않은 그런 통증이다. 변화를 추구하듯 기도를 당기며 촛불을 켠다. 고통을 내던지기 위해 고통도 받아들이기를. 새로이 태어난 생명처럼 그리 살아가기를, 많은 분주함과 외로움 속에 살고 있는 이들 위해 좋은 글 좋은 음악으로 다시 거듭나기를. 결론적으로는 우리 서로 그대는 그대를 아꼈고, 나는 나만을 사랑했나니. 다시는 서로 전투 삼기를 원치 않사오니. 나는 상관없지만, 그대 그리고 그대 그리고 또 그대 세상의 바로미터 세계의 기상청 은둔이나 은유라기보다 음유, 그 자체. 온 누리 날마다 건설해 올리는 건축가. 혁명을 혁명답게 이끄는 혁명이 외롭다는 것도 인지하는 그리도 그리도 씩씩하고 의로운 선함이기를.
2011년 10월 10일 월요일
눈길 닿는 곳마다
맹하린 어떻게 된 일이지 대체 그 무엇도 심각하지가 않아 진지함에 푹 잠겨 사색적이라는 평 몹시도 껄끄러워 그러는 것처럼 하고 싶은 일 가득했었는데 꼭 해야 할 일만 챙기게 돼 옵티미즘에 손 내민 건 아닌데 늘상 잦은 미소 입가에 맴돌듯 살랑대 이러고 싶어 웃음보따리 꼬옥 꼭 여몄던 건 아닌데 아무 일에나 유예 앞서는가 하면 참선에 버금가는 느긋함으로의 집중 햇살 번지듯 마음 가득 퍼지고 있어 마른 논에 물 대듯 매사에 충일함의 물결까지 알맞추 찰랑거려 생일 선물 잔뜩 받아든 것처럼 날이면 날마다 넘실넘실 미소 피어나다가 눈시울 촉촉 젖어드는 이 현상은 과연 어떤 징조라고 봐야 할까 매양 눈길 닿는 곳마다 하늘 있어 그런 것 같기는 해 그건 곧 허공의 호홉까지도 감각되어지는 풀쳐 생각 같은 것 번개로 움칠대는 대개의 명징함은 영원의 이름이 묻어날 것도 같아 늘 바라보는 바다 더욱 환하고 끌밋하게 빛나는데
2011년 10월 9일 일요일
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합니다)
맹하린
엊그제부터, 새벽만 되면 소르살 꼴로라도가
노래를 시작한다.
우리 말로 하자면 유색의 개똥지빠귀다.
해마다 이맘 때면 유행처럼, 나팔수처럼, 응원단장처럼
나타나 도심의 첫시간을 상큼발랄경쾌하게 눈뜨게 해주는
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새다.
나는 대부분 기지개를 켤 즈음에 듣는 경우가 많은지라
매번 하루가 쾌청할 것만 같은 산뜻한 메시지를 받는다.
오늘 내게 아침을 선사하는 시는 <어머니의 그륵>이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이 구절에서 내 맘이 좀 아프다. 다시 한 번 일부러 기지개를 켠다.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나 나는 아침마다 기지개를 굳이 켠다.
대수롭지 않을 것만 같아도 기지개는 내가 나에게 건네는 아침인사다. 그러고 보면 첫새벽에 함께 하는 존재가 내겐 적잖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의 가장 커다란 행복바이러스들...... . 샤워, 음악, 시, 기도, 커피, 기지개... 그리고 기지개를 켤 때마다 필수적으로 덧붙이는 말
"그라시아스 아라 비다!!!!!!"
2011년 10월 8일 토요일
한국문화 페스티발에 다녀와서
맹하린
어제, 내가 어쩌다 들르는 트위터를 방문했다가
여러 간결하면서도 중심이 보이는 글들을 보았다.
“제가 일어나는 시간이 아침입니다. 12시에
일어나면 12시가 저의 아침이고, 4시에 일어나면
바로 4시가 제 아침입니다. 식사는 저녁 한 끼만
들지만, 제가 식사하는 시간이 바로 제 저녁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시간을 방목하고 있습니다. 제
시간은 숲처럼 무성합니다. “
-소설가 이외수
공지영 작가도 자주 보인다.
대부분 노무현대통령파가 주류라고 여겨진다.
나는 트위터에서 가끔씩 바보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엉뚱한 트위터리언이기도 하다.
정치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인지라 오늘은 최근 접한
명언 한 구절을 사뿐 올렸을 뿐이다.
“무덤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것은 내겐 의미가 없습니다.
밤에 잠자려고 할 때 뭔가 근사한 일을 했다고 느껴지는
게 중요합니다. “
_스티브 잡스
트위터를 좀 더 그윽이 들여다보면 한국의 오늘과 미래는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것처럼 폄하되고 매도까지 되는 경향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사실 그런 느낌을 강요받는 데다 주입되는
기분까지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면이 없다고 부정하진 못하겠고, 초점을 더 좀 부각
시켜 바라본다면 절망적인 현장 역시 없지 않아 있으리라고 수긍하게
돼 저절로 침묵을 지킬 경우 또한 많았다고 본다.
각설하고,
어제 아베니다극장에서 공연된 ‘한국문화축제’에 다녀왔다.
태평가, 사물놀이, 부채춤, 태권도, 비-보이, 풍물놀이.
그리고 해금과 첼로의 앙상블등 어느 것 하나 허술하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가장 역동적이고 활기롭고 강렬하며 작품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화려강산 만만세라는 의미가 골고루
스민 매우 아름답고 희망적이고 내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긍지와 감격으로 하나 되어 호홉했었던 참으로
뜻 깊었고 좋은 시간이었다고 여겨진다.
함부로 극찬을 얹으면 어떤 면으로는 저절로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만 같던 빼어난 무대였고 공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민자이므로 모국이나 모국의 문화라거나 전통에
반하거나 심취한다고 해서 누가 뭐랄 사람은 없을 테고 이렇다 할
무리수는 아닐 듯도 하다.
하기야 내 자유분방한 수식어는 깁스처럼 옥죄어 있을 시기를
겪을 때가 드문드문 있기는 있다.
그래도 내 방식을 고수하며 모처럼 칭찬 좀 펼치게도 된다.
무대와 관객이 하나였고 현지인과 교민 모두 함께 환호하고
함께 갈채를 아끼지 않으며 열광하던 시간이었다는 사실만은
자연스레 밝히고 싶다.
두 시간 동안 우리의 얼과 역사와 미래와 희망을 모두 발견하고
접했고 받아들인 참으로 감격적인 공연이었다.
나처럼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도 잊지 않고 초대장을 보내준
대사관의 관계자 분께 뒤늦게 감사하고,
이 공연을 현지인과 우리 교민들에게 기꺼이 선사하기를 마다 않고
불철주야 애쓴 흔적이 가득 보이는, 대사관과 중남미문화원에게도
새삼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게 된다.
한동안 한국인이라는 뿌듯함에서 못 벗어날 것만 같은, 말 그대로
대단히 아름답고 소중했던 밤이었어라.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
한류여 더욱 만개하라.
우리나라 만만세!!!
아르헨티나 비바!!!
2011년 10월 7일 금요일
내 원피스
맹하린 플러스 발상 무엇이든 플러스 발상을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면역성이 강하여 좀처럼 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늘 마이너스 발상만 하는 사람은 한심스러울 정도로 쉽게 병에 걸리고 만다. 똑 같은 상황, 똑 같은 라이프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기운이 없고, 병약한 사람이 있다. 이 같은 차이는 대부분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하루야마의 <뇌내혁명> 중에서- 우리 가게는 버스정거장을 앞에 두고 있다. 한국과 달리 버스정거장이 앞에 있어 좋은 일보다 버스정거장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귀찮은 일이 더 많은 편이라고 해야겠다. 버스를 기다리기 지루한 현지인이 불쑥 들어와 이렇다하게 뭐라도 구입할 의도는 전혀 안보이면서 저렇다하게 바쁜 내게 이것저것 캐묻는 일이 부지기수다. 대부분 분재에 대한 질문이다. 자꾸만 죽으려고 한다는 얘기다. 그럴 때 나는 되도록 명쾌하게 답해준다. " 주인은 살리고 싶은데 분재가 죽고 싶어 하나요? 식물 쪽에서 죽으려고만 안 하면 차츰 살아나요. 아무리 그렇단 들 주인의 사랑과 관심이 멀어지면 죽는 게 아니라 죽이는 건 당연지사죠." 20일쯤 되었을까……. 작업실 안에서 어머니날에 대비하느라 열심히 리본을 접고 있는데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누가 재미있게 부른다. "저기요!" (네, 여기요.) 갓 스물 정도 되어 보이는 한국아가씨였다.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생면부지의 얼굴이었는데, 대뜸 휴지를 좀 얻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가로수 둘레의 난간에 앉았었는데, 그만 바지에 껌이 붙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일단 떼어내 주려고 내 나름대로의 친절과 조치는 취했으나 내 노력과는 상관없이 전혀 말끔하지가 못했다. 일단 집에 돌아가고, 껌이 붙은 바지 위에 신문을 깔고 다림질을 하면 쉽게 제거가 될 거라고 나는 부연설명까지 잊지 않았었다. 하물며 껌이 허옇게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이 누군가의 눈에 띄지 못하도록 내 검정빛 원피스를 그녀의 상의 안에 입혀주기도 했다. 빌려주는 옷이라서 함부로 입는 옷이 아닌, 아끼는 옷을 내어 준 것이다. 그녀를 보내고 작업실에 들어서니 아들이 실실 웃었다. 말하나마나 결과는 뻔 하게 예측 된다는 듯 한, 묘한 뉘앙스가 엿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렇게 20일이나 지나게 되었다. 내 지인이나 친구들에게야 뭐라도 빌려주면 돌려줄 때까지 마냥 잊는다. 지금 나보다 그들에게 훨씬 더 필요할 게라고 도리어 편하게 맘을 먹기도 한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는 그래서도,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그 아가씨가 이글을 읽을 확률은 전무하다고 봐야겠지만 일단은 적게 된다. 그 뒤 아들은 자주 실실 웃는다. 나도 웃는다. 내 웃음이 훨씬 실실이다. 쉬잇! 이건 극비다. 내가 가끔은 나도 모르게 실실 웃는다는 사실 말이다. 내 안에 숨어 있다가 가끔 나를 호되게 몰아 부치고 기필코 참견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착각하는 또 다른 내가 단박에, 그리고 가차 없이 나를 향해 일갈을 터뜨린다.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듯 지극히 냉소적인 일면까지 내비치며……. (자식도 잃고 사는 주제에 그까이꺼, 까짓 원피스 하나? 뭐 어때서!!!)
에필로그: 오늘(10월 8일), 맨 처음 인사를 저기요! 그렇게 시작하는,
얼굴이 유난스레 하얀 한국아가씨가 어김없이 저기요! 그러면서 우리
가게로 들어오더니, 작은 종이백을 내민다. 뭐죠? 라고 묻는 내게
옷이요, 라는 답이 먼저 건네져 온다.
내 원피스가 돌아온 것...
나는 잘 세탁되어 보송보송 새틋함까지 느껴지는 내 옷을 돌려 받았는데...
그런데 왜 나의 모국애를 돌려 받은 기분인 것일까?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화장을 하는 여자
맹하린 버스 향해 손을 든다 승객 많은 버스가 외로울 확률 파다해서 외로움은 덜 외로워진다면 모를까 외로우려고 할수록 안 외롭다 오라 삐꼬* 속에서도, 버스 안의 밀집 가운데에서도 현지인들 각 개인의 숨겨진 공간 교묘하게 칸칸으로 금 그으며 투명한 커튼까지 치고 있다 북새통 안에서도 금세 비워지는 나의 앞자리 창 쪽에 앉은 모로차* 누구라도 앉기를 기다린 것처럼 나볏이 화장을 시작한다 용감한 생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세상이라는 고난 모조리 응축 시킨 것만 같은 거울, 흘겨보고 치켜보며 세월의 갈피마다 스민 옹색함 애써 감추거나 기어이 드러내는 여자 마주 바라볼 필요는 없는 간격에 안도 하며 눈을 감는다 또는 뜬다 감으면 보이고 뜨면 안 보이는 불편한 와중이다 때로 생은 파격적인 상황에서도 주목을 못 받는다 내 외로움의 목적지 아베쟈네다*는 가까워지고 드디어 화장을 끝내던 여자 대안 제시하듯 핸드폰의 얼굴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다 거울이 된 여자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그녀의 핸드폰 나 일어선 의자에 다른 생애가 머물고 모로차 다시 거울 바짝 당겨 화장을 시작하고 있다 나의 사방은 왜 이리도 낯설까 한동안 거울보기도 두려울 것만 같은 느낌의 가냘픈 어깨 껴안으며 무대 내려서듯 아침나절 위로 하차를 시도한다 인파로 북적대는 아베쟈네다*라는 장르, 발길 내디딜 때마다 자동문처럼 앞을 터주고 있다 새삼 우주인처럼 보여지는 낯선 현지인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찬 공기를 풍선처럼 불며 스치듯 오고, 그리고 간다 운명의 신이 일찍부터 던져대는 그물에 사로잡히지는 않은 것 같은 하루의 첫머리다 다행이다 나는 드디어 외따롭다 *오라 삐꼬; 러시아워 모로차; 까무잡잡한 여자 *아베쟈네다; 한국인 유태인 볼리비아인 등등의 상인들로 밀집된 아르헨티나 제 1의 의류도매상가 지역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그리움을 닦으며
맹하린
어제 정오.
아베쟈네다지역 산니콜라스와 아랑구렌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한
'초밥왕 1번지'에서 점심약속이 있었다.
10여 년 전에 환국했었고 잠깐 여행을 온 문우 K여사를 환대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문협의 고문들이 거의 대동되었던 것 같다.
만년신사 C선생님, 걸어 다니는 사전 P선생님, 백발이 성성한 K선생님,
어떤 환경에서도 뒷바라지를 즐기는,
뒷바라지의 대명사라고 표현하고 싶은 왕언니 S여사,
선교사인 P여사, 미니스커트가 잘 어울려 윤복희로 불림 받던 주인공 K여사, 그리고 나.
초밥과 우동은 맛이 꽤나 그럴 듯 했다.
식탁이 들썩여질 정도로 오가는 독설들도 모처럼 신이나 과연 독설다웠고
특히 맛깔스러웠다. 양념으로 뿌리던 내 독설 또한 톡 쏘며
그분들을 파안대소로 이끌었다고 본다.
모두들 나의 상쾌함을 산뜻해 하던 시간 역시 살몃 있었다.
넘치는 20여년.
슬픔과 암울의 시절을 안슬픔과 못암울이라는 명찰 가슴에 바꿔달며
다른 사람들의 시야로 보면 얄밉고 당당할 정도로 씩씩하게 살아냈던 날들이었다.
이제 겨우 나는 평화가 어떻게 생겼고, 비운다는 과정이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가까스로 터득한 늦깎이 철딱서니로 겨우 환원된 게 아닌가 싶다.
문협의 막내 정은님이 편지에 이름 붙여준 '멋´, 그걸 위해
앞으로는 진정 그리 살아내려고 한다.
자연을 사랑할뿐더러 자연 그 자체이기를 소망하는 내게
우정이나 사랑, 그거 참 골치 아픈 애증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들어, 나를 곰곰 묵상의 풀밭으로 이끌어주는 가장 긴 내 마음속 언어는
겉으로야 그다지 길지는 않다.
너무나 흔한 말…….
(역류를 고집하지는 말아야지... .)
지금, 새벽인데도 화안하다.
묵은 감성 사그락사그락 닦이는 중이라서 그렇다는 걸
내가 나에게서 눈치 채게 된다.
2011년 10월 4일 화요일
독감
맹하린
예전에야 소스라치며 줄행랑이었다
생강차 서너 잔 목안에 넘겼을 뿐인데도
저항력 문제를 떠올리기도 전
감기 정도 신경 안 쓰는 북새통 속을 현재진행형에서
미래지향적으로 건너뛰는데
쿨럭쿨럭 휘몰아치는 기침이 단연 폭풍우다
진저리치며 약 삼켜도
소리 없이 진군해와
폭군의 기질까지 의기양양 드센 편
승부를 결판낼 심산인 모양이다
그렇게 다가오는 집념일수록 가장 저돌적이어서
작전을 바꿀 수밖에 없다
늘 매료되고 등불 켜듯 막연한 느낌을
현실에 퍼붓는 우울한 탐색은
분명 진전되어야할 과제
단정컨대 감기 그 무정부주의자는
쉬엄쉬엄 걸어도 된다는 의미와 다름 아닌 것
자극적인, 너무도 자극적인
토막 난 호통의 망치 들어 도약하라, 간격을 살펴라, 낯섦도 익혀라 등 두들기며 고열 얹은 독감의 질책 기침되어 잦아든다 오늘, 봄나물 당길 만큼의 미각 모처럼 찾아든다 회복의 기운을 챙길 기준이상은 되겠다
꺾고 비틀다
꺾고 비틀다
맹하린
H처럼 잉태되는 경우에만 쓰는 건 아니어서
지면 위에 태어나는 족족 죽이고 버릴 수는 없어서
죽이거나 버리려고 쓰는 건 아니어서
감성이 글의 얼굴 위에 잔잔히 번지다가
곧 출산할 거라는 소식 지인들에게 전달할 때면
너무 강렬하게 파고드는, 아릿함, 더불어 씀벅임까지
거품처럼 이내 자취를 감추는 멀쩡한 안부보다
불쏘시개 닮은 꽤나 당돌한 심지 되어, 당장에 불붙으려는
여러 노골적 질문들은 사실 시의 분화를 진행시키는 활화산
외롭더라도 지속되어야 할 탐미와의 상쇄
현란한 문명의 가벼움 더욱 사뿐히 받아들이라는
때로 새뜻할 수도 있는 일종의 메시지
스스로를 꺾으며 살아 왔을, 비틀며 지내왔을
겹질리는 긍지 속에 삽삽함 넉걷이 하듯 구겨 넣는다
안다, 나라는 존재 언제나 뜬금없다는 거
쟁점이 될 만하면 굳이 멀리하는,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 갈 때 특히 과감하다는 것도
이점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때로 말은 왜 곡진함에 실리는지
뭐랄까, 스스로의 내면이 누군가에게 깨물린다는 느낌과
무관하지만은 않은 모종의 통점?
내가 나를 견디며 다독여 왔을 손길 그제야 펼쳐지며
어려서 쇠비름 꺾어 주문을 외우듯 내가 나를 꺾어들고
장수풍뎅이처럼 비튼다
꺾어지고 비틀리던 내가 줄가리처럼 점차 비워진다
연두와 초록으로 겹쳐지던 관념만은 편애하듯 챙기고
그건 일종의 습관적 유형을 죽이거나 버리는 행위
과중한 일 닥칠 때마다 물어 나른 휴식의 가지 얹으며
적막의 둥지를 짓는다
초봄의 우기 서서히 건조 부르고 바삭바삭 거뜬하려는 저녁
사유 제의하듯 강가에 선다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소풍 후에
맹하린
몇 년 전이었다.
내 가게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세 블록이다.
그 길은 몇 년 전 나와 아들이 노상강도를 만났던 장소라서 나는 일부러 그 길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고, 아들은 그런 식의 경험 따위를 내세워 그 길을 두려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일부러 더 그길로 간다는 걸 내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 적이 있다.
나는 외국에 나와 살지만 한인 타운에서 생활하는 일이 나름대로의 긍지라고 여긴다.
아는 사람들 만나는 순간, 격려하는 심정으로 등을 토닥여 주고 싶어지는...
어제, 문협에서 야유회를 갔었다.
내게 아픔이었고 내가 고통을 건넸을 확률이 더 많았던 날들, 어느 정도 강물에 띄우고
그리고 다시 생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이었다.
H일보에 칼럼을 쓰는 s여사가 전화에 대고 말했다.
-있잖아요, 어제 남편과 후리리다에 있는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봤는데요. 어쩐지 문우인 당신이 떠오르는 영화였어요. 꼭 한 번 가보세요. 제목은 봄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에요.
남편은 그 무렵 중풍을 앓는 중이었고, 대체적으로 내게 헌신적인 편이고 효자표 아들이긴 해도 나는 그럴 때 절대로 아들에게 신세지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리고 친구들은 하나 같이 바쁜 몸들인지라 결국 인터넷에서 찾아내 보았지만, S여사처럼 감명 깊다는 느낌은 못 받았던 것 같다. 난 원래 한국영화를 꽤나 싱거워 해왔고 내가 소금치며 맛보는 스타일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 가게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세 블록이다.
나는 중앙분리대에 조성된 산책로를 즐겨 오가는데, 아들은 남자가 무슨 산책로를, 그런 의도를 표방한 채 인도로 다니기를 당연시해온 편이다.
그런데 퇴근길에 나와 동행을 해야 할 경우엔 제일교회 건너편에 있는 한 블록의 산책로는 부득이 함께 가준다. 나란히는 아니고 꼭 싸운 뒤의 모자간처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걷는 자세가 역력하다. 그 다음 영락교회 건너편의 산책로는 나만 걷게 하고 아들은 D식당 쪽의 인도를 향해 걷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 길은 몇 년 전 나와 아들이 노상강도를 만났던 장소라서 나는 일부러 그 길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고, 아들은 그런 식의 경험 따위를 내세워 그 길을 두려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일부러 더 그길로 간다는 걸 내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간 적이 있다.
아들이 제일교회 앞의 산책로를 동반해 주는 행동의 진정한 의미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어느 날, 엄마를 한때는 에스콧해낼 수 있었다는 의미를 싣게 된 그 어떤 포석이 포함된 행위로 보이고 있다.
나중에 회한으로 남을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동작일 수도 있겠고 .
나는 외국에 나와 살지만 한인 타운에서 생활하는 일이 나름대로의 긍지라고 여긴다.
현지인 고객도 있지만 한국인이 대부분인 고객들을 접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몸담고 살고 있음을 감사로움으로 품고 사는 것이다.
중국의 고사에서처럼 문 위에 돌멩이를 매달아놓고 항상 조신하게 살아왔음을 아들은 나를 보며 익히 배워왔을 것이다.
재산 같은 걸 물려 줄 수 있는 존재는 못되지만 내 사는 모습, 내 살아온 모습, 내 살아갈 모습 모두 보이며 어떤 어려움조차 부끄럼없이 털어놓았을 뿐더러 소탈한 모습까지도 저절로 들키기 마련이었다고 자인한다.
아들은 적어도 세상에게 욕심을 부리지는 못했으나 세상을 거짓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여 온 이 엄마를 제대로는 깨우쳐 왔으리라.
항상 내가 꿈꾸어 온 세상이었다.
꿈이 꿈을 부르는 세상이었다.
아는 사람들 만나는 순간, 격려하는 심정으로 등을 토닥여 주고 싶어지는...
오늘은 그런 봄날 아침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들도 나처럼 무언가를 키우며 자긍하며 그렇게 숙연히 살아가리라는 사실이다.
마음이 넓어서 그렇다기보다 세상의 매력에 현혹되어…….
어떻게 세상을 원망할 것인가. 어떤 처지에서도 원망이 안 되는데.
불현듯 세상을 몇 백 년 쯤 살아낸 느낌, 오늘 가득어니 밀려오고 채워지고 있다.
어제, 문협에서 야유회를 갔었다.
바다처럼 넓은 강변을 지닌 ‘뿐따라라’였다.
회장이 직접 구어준 아사도도 매우 근사했었고, 특히 회원들이 윷놀이 중간 중간에 웃음과 다툼을 버무려 내지르던 함성..... .
회원들 근처, 매우 가까운 옆켠의 풀밭에 엎뎌 있던 내게, 끊임없이 들려오던 나뭇잎들이 바람과 함께 쏴아 쏴아 공연하던 합창소리도 대단히 환상적이었다.
회원들 근처, 매우 가까운 옆켠의 풀밭에 엎뎌 있던 내게, 끊임없이 들려오던 나뭇잎들이 바람과 함께 쏴아 쏴아 공연하던 합창소리도 대단히 환상적이었다.
내게 아픔이었고 내가 고통을 건넸을 확률이 더 많았던 날들, 어느 정도 강물에 띄우고
그리고 다시 생의 한복판으로 돌아왔다.
비록 세상을 찬미할지라도
다시는 세상을 아파하지 않을 테다.
다시는 세상을 아파하지 않을 테다.
2011년 10월 1일 토요일
편지
맹하린
동그라니 몸 웅크리고, 팽이처럼 엎딘 적 있나요
고단함 잔득잔득 껴안은 채
해체되는 신분질서의 도시 한 복판에
표류되어 떠내려가는 느낌은 맛보셨나요
뽑혀진 풀포기처럼 네 활개 잔뜩 늘어트리고
아세요
오로지 마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존재가치 드높이는 자리매김의 벽을
어딘지 모르게 감춰진 이미지 불현듯 부각되는
사람의 벽을 일컬음이어요
서로가 서로 향해 창백한 이마되어
지평을 열면, 대책이 안 서는 과제들은
경계를 지우며 이윽고 시야를 트이게 하죠
하고 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
혼자일 때에야 소통 확인하는 은은한 공명은
누군가의 절절한 마음을 밀쳐낸
대가인 듯싶어요
묵인만으로는 포용 할 수 없던 간격
번개 되어 화해의 호홉을 터뜨리기도 해요
바장이듯 노동의 황금률에 정신 함초롬히 퍼부은
반지도 버거워지는 하루의 끝자락일 때
어스름 자락마다 기억들 사무치게 가라앉아요
한 때의 허물을 잊고 사는 생은 흔해서
함성되어 쏟아진 소나기에
몇 십 년 혹은 그보다 더한 자생의 순간되어
또 하나의 또 다른 함성되어 외쳐요
초록 빛 숲의 안부 해오름을 앞당기듯,
반기는 군요
설움가닥 어루만지듯 격려 하면서요
설움가닥 어루만지듯 격려 하면서요
<눈을 감고 보는 길>
-정채봉
우리는 빈 마음이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그러나 미워할 때의 마음을 돌아보세요.
우리는 빈 마음이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만
사랑할 때의 마음은 정말 비어 있습니다.
그리움도 보고 싶음도.
그러나 미워할 때의 마음을 돌아보세요.
가득 차서 넘치지 않던가요?
끓어오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미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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