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9일 일요일
노 빠사 나다(No pasa nada=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맹하린의 생활단상(生活斷想)
아르헨티나중앙일보
1996년 12월 6일
오늘은 유난히 무더운 날이라고 모두들 오며가며 말했다.
건조한 기온은 피부까지 바삭바삭 말리고 있는 느낌으로 유도했다.
오후 7시에 가게 문을 닫고 교민 C씨의 공장으로 상품이 될 옷을 구입하러 가는 자동차 안에서였다.
남편은 무슨 말인지를 할까 말까 연신 망설이고 있는 눈치였다.
-왜요,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네요?
-새벽에 꿈을 꿨거든. 내가 생각하기엔 별로 좋은 꿈이 못되는 것 같아. 그래서 당신한테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여태 참았던 거고.
남편은 꿈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바퀴를 두 개나 잃어버려 여기저기 찾으러 다녔다고 한다. 얼마나 애를 태우며 찾아 헤맸던지 그 꿈을 떠올리면 아직도 진땀이 날 지경이라고 했다.
-당신 꿈이 언제는 맞았었나요? 내 꿈이라면 또 모를까.
나는 그렇게 반문하며 웃었지만, 그때부터 시야(視野)에 들어오는 차량들의 거치적거림에 바짝 신경을 세우며 팽팽하게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러나 금세 꿈 얘기도 긴장감도 잊고 말았다.
C씨 집에서 여름 원피스 종류를 구입하고 한인회관 앞길을 지나오는데, 갑작스레 어떤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남편이 운전하는 쪽으로 기울면서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는 남편보다 더 잽싸게 차에서 내려 황망히 그쪽으로 뛰어갔다.
체구는 작지만 노숙한 얼굴을 지닌 현지인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리 차에 부딪친 것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의 바퀴가 활처럼 휘어져 못쓰게 돼버렸고, 망가지면서 튀어나온 자전거 바퀴의 살인지 뼈인지가 우리 차의 바퀴를 찔러 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펑크를 내며 스르륵 스르륵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듣기에 몹시 거북했고 보기에도 가히 가관이었다.
중요한 문제는 바퀴 정도가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청년을 일으켜 세웠고, 다친 데는 없는 가고 조심스레 묻게 되었다.
불볕더위인 데다 마침 초저녁이라서, 집밖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신선한 바람을 쐬고 있었나 보았다. 청년의 가족들과 그 이웃들은...... .
하지만 그 사건을 고스란히 목격하게된 그들은 우르르 몰려 왔고, 청년의 머리와 온 몸을 꼼꼼하게 만져보며 상처의 유무(有無)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때에야 깨달은 점은 청년이 다운증후군을 겸한 지체장애자라는 사실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희극적이며 약간은 애수에 젖은 얼굴을 갖춘 청년은 그제야 커다랗게 부르짖었다.
거의 무의식적이다 싶게 절규처럼 .
그것도 두 손을 약간 올리며 어깨를 잔뜩 움츠리더니 여러 번이나.
-노 빠사 나다! 노 빠사 나다! 노 빠사 나다!
그들은 천만다행이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전거를 수선 소에 맡기기 위해, 청년과 자전거를 감싸 듯 보호하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우리 내외도 그럭저럭 다행한 일이었다고 마음을 놓으며 자동차에 올랐으나 바람이 완전히 빠져 버린 펑크 난 바퀴가 왜 그때 비로소 깨달아지던지.
남편은 트렁크에서 공구와 스페어타이어를 꺼내고 있었는데, 이미 떠나갔던 청년과 가족들이 우르르르 몰려오는 모습이 또 다시 눈에 들어 왔다.
불구자와 충돌했기 때문에 바퀴 값이라도 물어내야 마땅하리라는 항의 섞인 제안이었다.
변상을 거절하면 경찰서에서 복잡한 수속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협박만 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인정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을 텐데.
그럴 경우에 평소보다 더 차분해지고야마는 내 비장의 침착함은 그들을 이내 타이르고 설득하게 되었다.
-양쪽의 잘잘못을 떠나서 그 정도의 보상은 기꺼이 하겠어요. 하지만 협박이 섞인 언성은 좀 섭섭하군요. 얘기를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네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이 시간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차도를 마음대로 활주(滑走)하도록 가족인 당신들이 이 청년을 방관할 일은 아니지 않았나요?
때마침, 한인회관의 상주경찰이 다가왔다.
처음부터 목격을 했었다고 한다.
청년이 한 눈을 팔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별로 속력도 내지 않으며 지나가던 우리 차에 부딪치는 광경을 똑똑히 봤었다고 차근차근 자세한 설명까지 아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두말조차 못 꺼내고 곧장 물러갔다.
물론 나는 그 청년에게 바퀴를 바꾸는데 사용하도록 적정선의 금액을 건네주는 일 또한 잊지 않았다.
느닷없는 난리를 겪는 통에 바퀴를 교체하는 일에 의욕을 상실해 버린 남편은 몇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는 타이어 수선 소에 가서 정비사를 불러오게 되었다.
펑크 난 바퀴는 더 이상 손 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되어 새로운 바퀴를 구입해야 하리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 비로소 내 기억의 한 모퉁이에 접혀져 있던 남편의 꿈 얘기가 파르르르 펼쳐짐을 감지하게 되었다.
결국 자전거 바퀴와 자동차 바퀴, 그렇게 두 개의 바퀴를 못 쓰게 되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바퀴 두 개를 잃었다고 애쓰며 헤매고 다녔었다는 남편의 꿈은 아주 근사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 되었다.
남편도 나와 다름없이 꿈을 떠올리는 중이었을까.
-에이, 참. 밤에 차고에 집어넣은 후에나 말할 생각이었는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편을 보면서 나도 잊지 않고 말을 보탰다.
-여하튼, 뭐를 잃어버리는 꿈은 하나도 건질 게 없긴 하죠.
그렇게 단정하는 자체가 샤머니즘적인 미신행위가 아닐까를 자조(自照)해 보면서 나는 이윽고 생각났다는 듯 오싹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청년이 다쳤을 경우란 상상하기조차 두려웠던 것.
나는 마치 현지인이 된 것처럼 머리를 여러 번 흔들었다.
그리고 중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꼭 꿈을 실제상황으로 연결시켜야만 시원해요? 너무도 놀랐잖아요. 오늘...
-그야 당연하지. 그럼 꿈을 심심해서 꾸는 걸로 알았어?
나도 남편도 항상 서로를 그런 식으로 대응(對應)해 왔다.
-당신!
나는 난감한 일을 만날 때마다 습관처럼 장난스럽게 불러보는 호칭으로 남편을 부르며 옆을 돌아보았다.
-꿈이 안 맞아도 괜찮아요. 다시는 나와 세상에게 꿈 팔기 없어요. 알았죠?
순간적으로 운전대를 놓았다. 남편은.
그리고 어딘가 희극적이면서 약간은 애수까지 엿보였었고, 한껏 어깨를 움츠리며 해내던 쳥년의 제스처를 고스란히 본보이며 여러 번 소리쳤다.
-노 빠사 나다, 노 빠사 나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게 아니었다.
싱싱 신나게 잘 타던 자전거였다.
그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타면, 자꾸만 넘어지게 된 것이다.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이별 연습
맹하린의 생활단상(生活斷想)
남미크리스챤신문
2001년 9월 1일
공항의 진입로(進入路) 근처는 대낮처럼 밝았다.
쉴 새 없이 멈추고 떠나는 차량들과,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에워싸고 있는 분위기에서 생동감 까지 넘쳐나 일종의 설렘과 같은 기분을 안겨줬다.
로우터리 한편엔 선인장들이 붉은 꽃줄기를 꼿꼿이 펴들고 있었으며, 철늦게 피어난 화초들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은 언제나 가을이라는 계절을 시샘하듯 젖히며 다급하고 성급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기후인데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깊은 추위는 유별나다는 느낌까지 껴안게 한다.
아무리 여름이 얼마 전에 지나갔을지라도 겨울날에 고운 자태로 피어있는 짙은 홍색의 꽃떨기를 보게 되면 어떤 면으로는 변절스러움까지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날씨가 비교적 온화하고 악천후의 기온을 강퍅하게 버텨낸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나무의 재목들이 거의 쓸 만한 게 없다는 얘기를 언젠가 유태인 목재상에서 들은 일이 있다.
잘 부서지고 쉽게 꺾어져 버리는 습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대지는 어떤가.
평소에는 딱딱하게 굳어서 옹고집스런 성질이 있다가도 비만 내리면 푸욱 푹 발이 빠지는 찰흙이지 않던가.
그런 연유로 나무들이 쉽게 성장하는 반면에 뿌리가 깊숙이 뻗어나질 못하고, 그 뻗어남이 의외로 얄팍해서 웬만한 비에도 덩치 큰 나무들이 쉽사리 넘어지고는 했다.
이러한 자연적 조건을 아르헨티나의 경제와 비교해 보면서 나는 흠칫 놀라고 만다.
심심풀이 삼아 여러 번 흔들리고 일진일퇴(一進一退)를 거듭하는 형편이라고는 해도, 내가 얹혀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지나친 결례(缺禮)가 아닌가 싶어서다.
활주로 쪽에서는 낮은 폭파음처럼 비행기 뜨는 소리가 울려왔다.
공항에 닿을 때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는다'는 한용운의 싯귀가 생각난다.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질 운명에 있다'는 , 지나치게 쓸쓸한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까지도.
출입문 근처는 물건을 싣거나 내리는 일에 함빡 정신을 쏟고 있는 사람들로 어수선 하게 붐비고 있었다.
나는 열려진 문이 있는 데도 자동문 앞에 섰다.
스륵스륵 저절로 열려지고 있는 자동문 앞에서 어린애처럼 기분이 좋아져 문명의 혜택을 잠시나마 실감해 보는 것이다.
이 어린아이와 같은 천성(天性)을 언제나 버릴 것인가.
쓸쓸하게 웃으며 면세품을 팔고 있는 가게들을 스쳐 지나자, 팬암 항공사의 수속 창구 근처에 몇몇의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에게 감싸이듯 서 있는 정민 엄마의 희망에 찬 모습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정민엄마는 당장에 떠날 사람이고, 주위의 그들조차 미국으로의 재이민을 떠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수속을 밟고 있다고 알았던 사람들이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으므로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소탈하고 간편한 블루진 차림의 본토여인이 남편인 듯 한 남자와 석별의 포옹을 나누고 있는데, 그 포즈에 애틋함이 담뿍 깃들어 보여 나는 그만 눈물이 글썽여지고 말았다.
나는 그랬다.
아름다운 일과 만나면 눈물이 글썽여졌다.
묵시적이면서 감성에 찬 장면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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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92년도 7월 7일에, '친구를 떠나보내고'라는 제목으로 J일보에 게재했던 것이다.
82년도 부터 본국의 카토릭 경향잡지 등에 몇 번인가 투고를 한 적이 있었고, 나는 그 무렵 이미 여러 단편들을 써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교민사회에는 처음으로 발표하게 된 글이었으므로 의미있게 간직하느라, 단편 '우라깐'의 도입부분에 접목 시키기도 했었다.
속담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현대는 3년에 한 번, 또는 1년에 한 번씩도 강산과 도시가 변하는 추세에 있다.
그렇게 강산이 여러 번 변했을 만큼의 세월이 9년이나 흐르고 난 후인 지금, 공항 근처의 자연경관은 날이 갈수록 수려해지고 있는 반면, 더욱 넓혀지고 최신식이면서 초현대적이랄 수 있게 꾸며진 발전을 보이고 있지만, 예전과 달리 문명의 동굴 내지는 미로(迷路)같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도록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한 곳으로 변모되었다.
불경기의 여파를 자주 앵무새처럼 반복할 때는 언제고,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이 서거나 앉거나 걸으면서 하드 케이스를 가까이 하거나 끌며 술렁여대는 것일까.
이민 생활 20여 년 동안에 참으로 많은 이들을 떠나보낸 것 같다.
누구나 떠날 때는 평소에 차지하고 있던 자리의 몇 배나 되는 넓은 자리를 휑하게 남기고 떠나는 법이라던가.
떠나고 난 기차는 아름답다는 시(詩)가 아니더라도 떠나려는 이들, 그리고 떠난 뒤의 그들은 어쩌면 그리도 살뜰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
느닷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이별의 특징은 아무 것도, 그야말로 아무 것도 준비조차 안하면서 기꺼이 그들을 위해 떠나보내려 했다는 데에 있다.
섭섭했던 기억이란 전혀 없고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점, 그리고 아쉬웠던 일들만 날이면 날마다 새록새록 풀잎의 싹처럼 자라날 것이다.
매우 차분하거나 조금 들떠 보이거나 의외로 평화로워 보이는 그들과 상관없이, 속으로 갈무리하듯 이별연습을 하면서, 마지막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의 심정이 아마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석별(惜別).
국어사전에는 서로 헤어지기를 애틋하게 여김이라고 적혀 있다.
능력이 있다면 국어사전의 그 뜻을 바꾸고 싶어진다.
사람이 헤어질 때 남아 있는 사람들만이 애틋하게 여긴다는 뜻이라고.
이 겨울에.
나는 예감한다.
아끼던 이들 몇을 더 선선히, 그리고 더욱 의연하게 떠나보내야 하리라고.
그러나 그들에 대한 기억을 더 이상 지우지 않겠다.
영원히 간직하며 아끼도록 하겠다.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장모(丈母)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9년 4월 20일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9백 30세까지 살았고, 이브는 8백세 이상을 살았다고 한다. 어떻게 해서 아담은 그렇게 장수(長壽)할 수 있었을까? 그야 당연하다. 바로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유머다.
나는 딸이 없다.
그런데 요즘 내 가까운 이웃들이 사위나 딸 얘기를 부쩍 내게 자주 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디즈니랜드의 '시골 곰 잔치'라는 인기쇼의 주인공인 곰이, 짝사랑하는 문어 돌로레스에게 바치는 노래가 떠오른다.
"다른 세상, 우리는 딴 세상에서 살아가네!"
글쓰기란 때로 약간이나마 유별 날 필요가 있다.
독특하고 개성 있게 나의 주위를 새삼 조명(照明)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은 장모인 그들의 입장이 한 번 되어 본다.
친정엄마, 또는 장모인 그들의 심기(心氣)가 몹시 불편해져 보여서다.
아무리 고달프고 바쁜 이민생활이었을지라도 나름대로 애지중지 길렀다고 자부(自負)해 왔던 딸이 어느 날 시집이라고 갔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함께 있는 장소임을 망각한 채 시어머니만을, 마치 친정엄마는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어머님, 이것 좀 드세요. 필요하신 거 더 없으세요? 어머님의 입맛에 맞으시면 더 가져오라 할게요. 어머님, 어머님!"
결혼하기 전, 친정엄마에게는 한 번도 나타내지 않던 친절과 애교를 그렇게나 십분 발휘하고 있는 딸.
의당 그래야 하고, 알뜰살뜰 새 살림을 꾸려 나가면서 시부모까지 깍듯이 모시는 본때 있는 집안의 딸이 되기를 기도처럼 바랐었고 등을 토닥이며 격려까지 해주고 싶던 예전의 희망사항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하물며 느닷없이 웬 뒤틀리는 심사(心思)인 것일까.
딸의 하는 짓이 얄미워 밤에 잠이 다 안 온다.
그렇게 예의 바르게 시어머니를 공경하는 딸이 볼상사나워, 모처럼 걸어오는 딸의 안부전화조차 선뜻 받아지지가 않는다.
그리고 까닭 없이 서글프다.
더불어 터져 나오는 한숨.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사정이 그렇다고 한 번 보낸 딸을 다시 빼앗아 올 수도 없는 문제다.
공연스레 백년지객(百年之客)의 손님인 사위까지 원망스럽다.
문득, 신혼여행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펑펑 울던 생각까지 휘몰아친다.
당연히 보내야 했고 좋은 사위를 얻었다고 감사의 기도까지 드린 마당에 왜 그렇게 빼앗겼다는 생각만 집중적으로 들던지.
한때 미국에서는 '결혼한 미국인의 반수가 이혼을 하고, 그 이혼한 사람의 반수가 여자 편에서 이혼을 제기하고, 이혼을 제기한 여자의 반수를 장모가 뒤에서 조종한다고 하는 말이 유행했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런 말만 읽어도 마음은 더욱 부글거린다.
그리고 횅댕그렁하게 텅 빈 느낌까지 회오리친다.
혼수비용으로 기만달러씩을 들여 이고지고 실어 보낸 자신이 갈수록 미련스럽고 후회된다.
그런 식으로 쩔쩔 매며 지내는 딸의 변모(變貌)는 불쾌지수의 극치다.
어깨에서 가슴께로 통증 비슷한 게 옮겨 다니는 느낌이다.
춥고 시리다.
이러다 병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 하는 가운데, 어느 연구소의 현명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비결이 새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락은 신체적으로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주며 일상생활의 고뇌에서 탈피하게 한다.
*매일 산책하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남을 이해하며 다툼을 피하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웃어라.
결국 웃어야 하는 모양이다.
딸은 시집이라는 새 터전에 믿고 맡긴 채 그야말로 여유와 평온을 갖추고 더불어 사는 삶을 이룩해야 할 것만 같아진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매력은 터질 듯 무너질 듯 아슬아슬 위태롭다가도 몇 년에 한 번 씩은 호경기가 불어 닥친다는 데에 있고, 장모라면 어렵고 두려운 존재로 여기면서도 장모를 가장 많이 모시고 사는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라는 점도 전혀 배제할 수만은 없는 사실인 것이다.
누군가 결혼을 하고 있고 앞으로 수도 없이 결혼들을 할 것이다.
지구는 변함없이 궤도를 향한다.
우리의 딸들은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가슴 찡하게 친정엄마를 의식(意識)하면서도 , 속은 물론이고 겉으로도 시어머니만을 떠받들며 살아 갈 것이다.
분가(分家)는 기본이다.
어쩌다 만나는 사이도 기본이 되어 버렸다.
이왕 빼앗겼으니 잘 살아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대체 자식이란 무엇일까?
장모는 또 무슨 못난, 왜 이다지도 뒷전만 같은 역할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노래나 부르게 된다.
하필이면 그 노래다.
미국에 여행 가서 박장대소 하며, 그러나 절반은 눈물 찔끔대며 들었던 곰의 짝사랑 노래.
"다른 세상, 우리 모두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네!"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한 아들이 세상의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
아노니모=작자미상(스페인어권)
내가 바라는 것들 모두를 들어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내가 요구하는 것을 얼마만큼 받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럴 때도 있습니다.
내게 아무 때나 야단치지 마십시오.
그럴 때마다 당신에 대한 존경심이 감소되는 걸
순식간에 깨닫게 됩니다.
또한 나에게 소리 지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나는 그러기를 결코 원치 않습니다.
내게 명령하지 마십시오.
어떤 때, 명령을 피하고 부탁처럼 말해도
나는 더욱 더 잘 들을 수가 있습니다.
약속은 꼭 지켜 주십시오.
좋은 약속도 중요하지만
나쁜 약속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보상(補償)을 약속하면 꼭 지켜 주세요.
비록 그 약속이 벌을 내린다는 것이었을지라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내 형제와의 비교는 내게 일말(一抹)의 고뇌이며
일종(一種)의 패배인 것을.
당신이 딴 사람과 나를 비교할 경우
제가 좋은 쪽에 있으면 다른 사람이 나로 인해 고통 받습니다.
나쁘게 비교하는 자리에 나를 올려놓으시면
내가 나 스스로에게 커다란 부담을 쌓게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당신의 생각을
너무 자주 바꾸지 마십시오.
먼저 정당하고 적절한 선택을 하십시오.
당신의 생각과 긍지에 대해서
내가 혼자서 일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자립심을 안겨 주십시오.
당신이 내 대신 모든 일을 해내면
나는 절대로 아무 일도 배워낼 수 없게 됩니다.
내 앞에서 거짓을 행하지 마십시오.
나한테 거짓말을 시키는 일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비상수단이 되고 타당한 이유가 있을지라도
그럴 때는 우선 기분이 안 좋게 되며
당신이 내게 말하는 다른 것에 대해서도 신뢰가 사라지고 맙니다.
언제든지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왜 잘못을 한 거냐고 따지지 마십시오.
때로는 나도 모르게 잘못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틀리거나 잘못 했을 경우
당신의 실수를 인정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에 대한 판단을 더 높은 곳에 둘 것입니다.
더불어 나는 잘못을 인정하는 법까지 배우게 됩니다.
당신의 친구에 대한 친절을 나에게도 베푸십시오.
가족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요.
당신이 꺼리는 일에 대해서
내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나는 당신이 하는 일만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무리 거기에 대한 별다른 단서가 붙을지라도
나는 당신이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 말라면 안하고 하라면 해야 할 때에
혼란이 생길까 그점 몹시도 두렵습니다.
내게 신(神)에 대한 믿음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본 받게 해주십시오.
당신이 믿음이나 사랑 없이 살아가는 걸 보는 일은
학교에서 아무리 많은 공부를 익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는 걸 깨우치게 됩니다.
내가 내 문제, 내 고민을 꺼낼 때
제발 시간이 없다는 대답을 하지 마십시오.
내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거나
또는 중요하지 않을지라도
시간이 없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대답하는 당신을 앞에 두고
나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자꾸만 흔들리게 됩니다.
내가 남을 이해하는 자리에
돕는 자리에
사랑하는 자리를 가까이 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자리에 남을 수 있도록
당신은 우선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그런 위치에 있는 당신을 좋아합니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존경하게 됩니다.
아무리 당신이 그런 일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라도.
.........................................................
-초여름
아들과 사이 좋게 의논하며 번역 했습니다.
...........................................................
<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납덩어리와 금덩어리의 변신(變身)
맹하린
옛날에.
부지런하고 규모 있게 생활하기를 모범으로 삼는 농부가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알뜰한 성격이라서 한 푼 두 푼 기회 닿을 때마다 모은 3천 냥을 은밀히 간직하고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집에는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와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나그네는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샛노란 금덩이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별안간 부탁드려 죄송한 일이지만 이 금덩어리를 맡으시고 돈 3천 냥만 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며칠 안으로 삼부 이자를 포함해서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 금덩어리는 농부의 눈에 몇 만 냥도 더 나가는 값어치로 가늠되었다.
하물며 며칠도 안 지나 3부 이자까지 주겠다는 언질이었다.
당장에 현혹된 나머지 농부는 서슴없이 돈을 내 주었다.
그런데 밤중이 되어서야 석연찮은 의심에 휩싸이게 된 농부는 나그네가 맡겨 둔 금덩어리를 꺼내 세심하게 이리저리 살펴보게 되었다.
이윽고 그 금덩어리가 단지 도금을 했을 뿐, 하찮은 납덩어리에 불과 하다는 걸 알아챈 농부는 혼비백산 놀라고 말았다.
"당했구나, 그 인간이 도둑놈이었다니!"
농부는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고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돈을 되찾을 수 있을까를 순간적으로 모색(摸索)하기 시작했다.
농부는 궁리에 궁리를 다 쏟게 되었다.
(도둑놈은 금덩어리도 아닌 납덩어리를 맡겼으므로 돈을 돌려주러 올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도둑이 돈을 돌려주러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납덩어리를 다시 금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
날이 밝자마자, 농부는 장터로 나갔다.
그 장터에서 가장 입이 빠르고 말 많기로 소문난 주모(酒母)가 꾸려 나가는 주막(酒幕)으로 들어가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이미 전작(前酌)이 있었던 것처럼 둘러대는 일도 잊지 않고 해냈다.
이윽고 술에 취한 척 엉엉 울며 주정(酒酊)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주모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농부에게 다가간 주모는 도대체 웬 소란인지를 캐묻게 되었다.
"세상에, 무슨 이런 고약한 일이 다 있답니까? 내 하도 기가 막혀 당장 죽고 만 싶은 심정일 뿐입니다. 어젯밤 어떤 선비께서 우리 집에 묵었는데 아. 글쎄 몇 만 냥은 족히 나갈 금덩어리를 하나 맡기면서 3천 냥을 빌려 갔지 않겠소. 그런데 그만 간밤에 도둑이 들어왔지 뭡니까? 값나갈만한 물건이라고는 그 금덩어리 밖에 없었는데 그만 그걸 훔쳐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그러니 내 이 신세를 어찌하면 좋겠소? 며칠 있으면 그 선비 어른께서 금덩어리를 돌려달라고 찾아오실 텐데, 그런데 과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오? 나는 죽어야 합니다. 죽을 수밖에 별다른 도리는 없을 듯싶소이다. 이 일은 주모(酒母)만 알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절대 비밀이오. 금덩어리를 잃어버린 걸 그 선비님이 아시기 전에 어떻게든 그 도둑을 잡아야지 않겠냐는 말입니다요."
한 바탕 굿을 치룬 후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나절도 되기 전에 농부의 목적은 달성(達成)되었다.
말 많은 주모는 농부의 말에 살과 피를 붙이고 발라서, 온 장터에 소문을 퍼드렸다.
그 소문은 그 지방 전체에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당연지사 그 도둑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흐흐흐. 호박이 넝쿨 채 들어왔다 했더니 금상첨화(錦上添花)구나. 좋다! 당장 그 얼빠진 농부놈 집으로 가야겠다. 어서 금덩이를 되돌려달라고 다그친다면, 놈은 꼼짝없이 있는 재산 모두 처분해 내게 넘겨주지 않고는 못 배길 테지. "
이렇게 중얼대던 도둑은 돈 3천 냥에 3부 이자까지 합친 보따리를 들고 농부의 집으로 찾아 들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도금(淘金)한 납덩어리와 농부의 회초리였다.
위의 예화는 탈무드에서 읽었던 것도 같고,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봤던 것도 같으며, 한국의 예화집에서도 접했던 걸 약간 손을 보았다.
반향사고(反響思考)는 결코 우연히 이룩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각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다.
침착함은 선천적으로 형성되는 것만도 아니다.
사회와 가정과 교육 환경의 영향과 후천적 형성으로 성립된다.
어떤 일에 당면(當面)해도 우선 침착성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을 올바로 주시하고 반향사고로 끌어내도록 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과 대면한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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