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일 수요일

포럼(Forum=Foro)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7년 3월 15일

TV 방송국 Canal 13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4시에 "Forum"이라는 '미니재판소'를 방영한다.
라틴말인 포럼은 서반아어로 Foro라는 말을 파생 시켰는데, 고대 로마에 있던 공공사건, 재판, 상거래를 하던 중앙광장과 법정을 뜻한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일부러 틈을 내어 포럼을 시청할 때가 많다.
이 '미니재판소'에서는 굵직굵직한 사건보다는 이웃 간의 사소한 마찰이나, 지나치리만큼 결벽을 챙기는 치밀하면서도 순수성 넘치는 송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음이  흥미롭다.

어려운 말이 돌출된다 싶으면 사전을 들추면서라도 내가 열성으로 그 프로를 시청하는 정확한 이유는, 아르헨티노(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적나라한 인간관계와 생활철학이 작은 부피로 축소되거나 혹은  부각되는 면이 나의 시선을 오롯이 끌어 당겨서다.

*뒷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떠들며 사는데 지독한 안면방해에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부디 선처해 달라.

*옆집 사람이 낙숫물을 우리 집 쪽으로만  흐르게 만들었는데 일종의 주권침해라고 본다. 확실한 판결을 내려 주기 바란다. 너무 계획적이면서 지나치게 무분별한  행동 아닌가?

*같은 동네의 Vecino(이웃)인 Muchacho(젊은이)가 아침마다 요란한 화장에다 여장을 한 채 동네 한 가운데를 질러 다닌다. 그건 우리의 어린 자녀들에게 풍기문란을 유발하는 데다  교육상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속히 대책을 강구해줬으면 한다.

*30년 지기의 친구가 전기프라이팬을 빌려 갔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을 돌려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시침 뚝 떼면서 수리해 줄 생각은 커녕,  원래 고장 난 걸 빌려 줬더라고  되레  화까지 내며 우긴다.  Inmoral(비도덕적이다)!

보고 듣기에는 아기자기하고 하찮은 것 같아도 당사자들에겐 커다란 사건이고 돌발사고이고, 충격적일 수도 있는 그러저러한 송사(訟事)에 대응하는 재판관.
그의 명쾌하면서도 신속한  유추해석과 판결은 미니재판소에 참석한 방청객은 물론이고, 시청하는 이들, 하물며 나로 하여금 시원한 카다르시스를 안겨 주기에 넘치도록 충분하다.
포럼을 일종의 애정을 쏟으며 열심으로  시청하면서 아르헨티노들의 철저하도록   완벽한 개인주의적 주관에 깊이 공감하고 감격할 때가 많았다.

고국이건 한인사회건 소속감과 사명감에 젖어 일할 만한 간성지재가 한껏 몸을 사리는 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많은 걸 희생하면서까지 앞장서 일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이들 또한 없지는 않은 듯 싶다.
난세에 나서서 구태여 마음을 다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열심히 생업에 올인 하고 골프 같은 운동에나 잡념을 쏟는 이들이 더 많은 추세이기도 하고.
잔생이 보배(못난 체 함이 이롭다)라는 옛말이 전혀 그르지 않다는 판단에서 일부러 그러는 모양이다.

포럼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작은 일에 목소리를 높이는 게 그나마 순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솔직하고 당당하면서도  담담하기까지 한 자세들이던지…….
 아르헨티노들.
작은 부분에서조차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휴머니즘적인 불요불급의 인격을 소유한 사람들이 아닐까를 새삼 유념하듯 깨닫게 된다.







-초여름-
  



나는 간혹 글쟁이 노릇이 힘들지 않은지
내가 나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내 대답은 짧거나 길다.
오늘은 약간 길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타고난 일이잖아.
운명과 같은 일이고 .
자유롭게 안주할 수 있고 축복도 함께하는 일이라고 가벼이, 또는심각하게 생각해 왔었지 않을까.
매우 단순한 각도에서도  특이한 이면을 찾아야 하긴 해.
글쟁이만큼 기준이 애매모호하고 혹독한 처신도 드물거야,  아마.)

첨예로운 세상을 만끽하는 이들은 늘 따로 정해져 있다.
세상은 항상 그들만의 것처럼 부상되기 마련이다.

거의 1년 정도 잊고 지냈던 드라마 시청을,  돌파구라도 찾듯 새삼  시도한다.
나는 아무에게서도 현실을 똑바로 이해하는 방식을 익히지 못했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수처럼 간직한 , 물질에 대한  욕망  같은 것도  제대로  터득하지는  못했다.

내 비록 글에게는 리얼리즘을 선호했어도 ,  나 스스로에겐 이상주의만을  추구해 왔던 게 아니었나 어제, 그리고 오늘 가까스로 자인한다.
회심하는 마음 역시 포옹처럼 껴안는다.








2012년 1월 30일 월요일

노동법


맹하린의 생활단상(生活斷想)

아르헨티나 중앙일보

1996년 3월 6일

장사를 하는 조건에는 그다지 거치적거림이 없을 정도로 현지 언어에 접근했다고 내 나름대로 착각에 빠져 살지만, 특이한 분야에 부딪치면 전혀 들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낱말이 잡힐 듯 잡히지 않아 나도 모르게 당황할 때가 있다.
시청이나 세관 정도면 그래도 적당히 의사소통을 해내는 편인데, 유독 변호사를 만날 경우 당혹감은 배가(倍加)되고 만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정도가 아닌, 말 한마디가 결정적인 판단을 좌우(左右)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나는 통역사로 아들을 대동한다.
그 또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현안이라는 것은, 아들은 하라는 말을 안 할 때가 있고, 하지 말라는 얘기는 꼭 해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정서차이가 아닐는지.

복잡한 노동법에 묶여 있는 현지 사정 때문에 가끔 잊을 만 하면 종업원 문제가 대두된다,
그럴 경우 필수적으로 변호사를 내세우고 해결책을 모색해야하는 애로점은 분명 나 혼자서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보통 때는 형제 같고 조카 같이 다정다감한 종업원들이지만, 보상금이나 보너스 문제에 부딪치면 치밀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데 지나치리만큼 철두철미해서 저절로 넌덜머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가능하면 종업원들에게 양보하면서 마찰을 피하려는 내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어 종업원들과 이렇다 할 불편한 지경까진 가지 않았었는데, 혼전임신한 직원 때문에 덴겁하게 혼이 난 적이 있다.

한 달에 서너 번씩  병원에 간다면서 결근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오랜 안정을 취해야한다는 의사의 진단서만 있으면 한 달이 아니라 두 달이라도 휴가를 줘야 했다.
월급은 월급대로 지불하고 임신보너스도 월급의 두 배였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의 몇 달은 아예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월급날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너무도  당당하고 의젓한 그 표정과  태도라니.
그럴 땐 내 기분이 좌지우지해서일까.
그 종업원은 임신한 배가 더 나와 보이도록 일부러 배를 불쑥 내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책상위의 오뚝이'가 아니라 '우리 가게 종업원 우습구나야, 배는 불쑥 내밀고' 의 노래라도 터져 나올 판국이다.

현지 노동법이라는 게 고용하는 사람 쪽을 고려한 보호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복리(福利)가 제대로 안겨지도록 유리한 방책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웬만큼 느긋한 성격이 아니면 사용자 측에서 일찌거니 두 손 들고 항복을 선언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일 저 일에 신경 쓰고 시일을 끄느니, 차라리 보상금을 내주어 파면시키는 게 그나마 수월한 일이 된다.
문제가 된 일들의 마무리 역시 필수적으로 변호사를 대동해야하고 구비서류에는 기필코 서명을 받아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서명이 빠진 서류란 또 다른 문제의 여지를 야기시킬 확률이 다분한 게 아니라 그런 서류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지인은 집으로 퇴근하던 종업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출퇴근시간 전후의 1시간 안에 일어난 사고는 고용인도 보상해야 한다는 법조항에 걸려 가해자 측과 맞먹는 대가를 치렀다고 한다.

습여성성(習與性成).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가닥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지 노동법이  보다 더 완화의 전환점(轉換點)으로 들어서지 않는 한 경제적 성장과 산업혁명은 먼 미래의 일이 되리라는 관점이 당연지사처럼 밀려든다.
새롭고 획기적인 컴퓨터 시설과 인조인간 로봇을 이용하는 방식이 점차적으로 발달되어, 노동법의 완충지대가 아니라 노동자의 수를 줄이는 시대로의 변혁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분야는 한계가 있을을 어쩌랴.
이 꼴 저 꼴 거부감이 생기면 종업원도 두지 않고 혼자 일하면서 살거나 가족끼리만 일하면 가장 편할 것이다.
아무리 그러해도 혼자서 이룩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어느 사회, 어느 일에 있어서도 공생공존(共生共存)의 관계는 결코 무시할 수없는 필연의 과제임을 이래저래 인정하게 된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노동법을 강화시키는 복리사업에는 성공을 거뒀을지 몰라도 노동정신을 개선하는데 있어서의 발전에는 다소 미약한 점 없지 않아 있다.
분명한 것은 아르헨티나는 노동법의 천국도 되지만,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사실이다.

종업원들의 배포 큰 요구를 일일이 다 받아 주라는  정부의 선심과 배려라는  게, 빈민을 위한 보호정책으로만 부각되는  방향으로 치닫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양날의 칼이 될 확률이 매우 크다는 걸 새삼 깨우치게  된다.

해묵은 빈티지 오디오의 상쾌한 음색이 달콤한 계절이다.
노동법을 잊고 내 주위와 가족에게 더욱 관심과 아낌이나마,  이제라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곰곰  해내게 된다.



2012년 1월 29일 일요일

내 마음의 텃밭



맹하린의 생활 산책

아르헨티나 한국일보

1996년 9월 7일 토요일
-


한국산 항아리 판매!
좋은 값에 드립니다.
Asamblea oooo번지.




일간신문을 뒤적이다가 위와 같은 광고를 보고 서둘러 항아리를 보러 갔다.
중간 크기는 50달러, 약간 큰 건 100달러였다.
유약을 잘 발라서인지,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게 단박에 소유욕을 불러 일으켰다.
암팡지게 야무지고 예쁘긴 했으나 지나친 가격이라는 단정이 뒤따르게 되어 아쉽지만 포기했고, 이내 마음도 바꿨다.
아무리 배를 타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옮겨 놨다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값이었다.
밖으로 나오는데 마당 한쪽에 어쩌면 눈에 익은 듯도 싶고,  약간은 낯이 선 것도 같은 풀잎들이 꽃샘추위에도 연두 빛으로 밭을 이루어 파릇파릇 보기에 탐스러웠다.
화초라면 잡초까지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나는 몇 포기 얻을 마음에 발길을 다시 집안을 향해 돌리게 되었다.
그댁의 따님인 소녀가 마침 외출하려다가 나와 맞닥뜨렸다.
"저어!  이 꽃모종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아, 그거요? 내 엄마가 그러는데 질경이라고 해요."
"질경이? 한국의 시골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그 질경이 말인가요?"
"나는 잘 몰라요. 내 엄마가 더 잘 알아요. 엄마한테 말해요."
한국말이 서툴었지만 소녀는 또박또박 대답을 잘했다.
때마침 따라 나온 소녀의 엄마에게서 나는 질경이 몇 포기를 선뜻 얻을 수 있었다.
"여름에 한국 나갔다가 친구한테서 이 질경이 씨앗을 얻었어요. 화초가 아니고 나물이나 약용으로 쓰인다고 했어요. 있잖아요. 질경이처럼 억세다는 풀. 그런 뜻을 갖고 있어선지 나물을 해 먹으면 몸에 좋다고  해요. 씨를 차처럼 달여 먹으면 신장염에 좋다나 봐요."

비록 항아리는 값이 안 맞아 못 샀지만 그때 몇 포기 얻어온 질경이가 금세 포기를 늘여나가고 씨까지 맺어 차츰차츰 번져나가다가 모판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색조를 이루게 됐다.
나는 그걸 나물이나 약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틈날 때마다 바라보기도 아까워하며 환희작작한다.
진초록의 그 강렬한 색채도 색채거니와, 강한 생명을 지닌 번식력 또한 나를 탄복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가 어릴 땐 질경이가 피워 올리는 기다란 줄기가 꽃이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었는지도 모른다.
기다란 기둥을 갖고 있는 풀이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 기둥을 따서 길게 땋아 여러 가지 꽃들을 곁들여 머리에 얹는 화관을 만들어 놀던 소꿉놀이 기억이 새롭다.

나는 이윽고 어린 시절의 나로 잠시 돌아가 보기도 한다.
내 마음을 가장 감동시켰던 건 강과 산과 들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특히 자운영이 심겨진 논들에게서 언제나  감격적인 반응이 앞섰다.
자운영 꽃들이 파르라니 꽃을 피우고 난  한참 후엔 소를 몰아 쟁기로 땅을 뒤엎는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비료보다 월등한 생장을 촉진하는 거름구실을 한다는 사실은  훨씬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보라와 자주와 하양이 섞인 자운영 꽃들의 차갑고 깔끔하면서 슬프게 화려한 색조는 내 기억의 터전에 그립고 그립게 만개해서 때때로 보랏빛 강을 이루고 자줏빛 들판을 펼쳐져 왔을 것이다.

지금에야 걱정도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을 벗어나 다시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살고 싶을 때가 내 생의 여정 중에 여러 번 있었던 것 같다.
많은 것을 획득하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많은 소중한 것을 잃게 되던 날들도 분명 있었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인생을 놓치는 방식이 곧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껏  잃은 것보다는  더 많은 귀한 것을 간직하고 있다고  자긍한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자면  무소유중의 무소유라고 할 수 있지만, 나 스스로 판단하기엔 부자 중의 부자가 바로 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신에게서 받은 게 너무도 많고 흡족하다고  언제나 감사하는 성격을 간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때는 아무 걱정도 몰랐던 게다.
무엇보다 고요한 나날들이었으니까.
고국을 떠나와 사니까 하찮게 여기던 질경이조차 새롭게 소중해지는 나날들이다.

뜻하지 않은 나라,  모든 게 나직한 나라에 당도하여,  겸허로이 일상을 맞고 보내는 틈틈이 나는 나의 작은 뜰을 고즈넉이 자주 지켜 보게 된다.
또한 내 화단 뿐아니라, 마음밭까지 예쁘게 장식해 주고 사는 꽃나무들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도 된다.
나는 마음속에도  텃밭을 일구고 살아가는 셈이다.
질경이처럼 억세고 질긴 잡초까지 아끼고 북돋아주는 텃밭을.



2012년 1월 27일 금요일

SUBE(대중교통수단 단일전자임금제도)



   맹하린


구정(舊正) 전날은 아들의 생일이었다.
아들은 그동안 생일에 적절할 듯한  어떤 선물을 해도, 쓸데없이 왜 아까운 시간과 돈을 낭비하나, 그런 눈치만 보여왔다.
그리고 옷이나 운동화를 선물하면,  다시 또 사들일까를 염려한 나머지  1년이 지나야 겨우 그 옷이나 그 운동화를 사용해내는 기질이 있었다.
철없는(?) 어미의 버릇을 단단히 좀 고쳐주려는 의미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예외적이면서도 특별한 존재니까 자기처럼 살지는 말라고 그런다.
(물론이고 말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하며 살기를 좋아하지, 아무렴.)
그리하여 아들은 언제나 거의 단벌처럼 옷을 입고, 운동화 하나를 6년 정도 신어낸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동서가 이 나라에 살 때,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  그녀의 아들들이 사들인 유명메이커의 한국 옷이나 명품 운동화를 두어 보따리 정도 가져다주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건 더 안 입고, 더욱 안 신어 내면서 곧장 이웃돕기에 보내는 걸 아들은 거침없이 단행해 왔다.
명품을 싫어하기도 하는 데다, 본인은 양반이기 때문에 남이 입거나 신던 신은 절대 가까이 안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생일이 닥치면, 나는 생각다 못해 봉투라도  건네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런 식으로 생일을 맞고 보낸지 몇 년쯤 되었을 것이다.
물론 미역국이나 잡채나 생선전 같은 , 주로 아들이 즐기는 생일식탁은 빠짐없이 준비해 준다.
하지만 케이크도 사양한다.
나는 100 페소부터  소중하게 여기는데
1페소조차  소중하고 큰 액수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아들은 그렇게 건네주는 돈으로 책을 산다.
물론 한글이 딸리니까 서반아어나 영어로 된 서적이다.
그냥 책이 아니라 주로 고전이고  헌 책일 때가 많다.
아들과 내가 가장 마음이 잘 통할 때는 각자 다른 언어로 된 책을 읽고 난 후, 서로 느낀 감상을 진지하게 주고받을 때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를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는 아들
아들이 얼마나 수준 높은 철학책들을 읽어내는지,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아들 앞에 서면 오메, 기죽어! 이다.

임진년이 시작되었을 때의 아들 생일날, 나는 봉투에 3백 페소를 넣었는데 그만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반납을 받게 되었다.
불경기에 무슨 선물이 따로 필요하냐면서 필요하면 그때그때 타서 쓰겠다고 나온 것이다.
아들은 몇 년 동안 과외지도비를 모아둔 저축이 있어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결코 자랑이 못된다. 자랑이라기 보다 오히려 수치가 아니려는지.
하지만 나는 글쟁이니까 말하고 싶은 사항은 말하게 된다.
이리도 문명이 날로 첨단시대를 향한 발전과 성과를 거듭하는 세상에,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을 뿐이고.
또한 나처럼 뒤늦게 고생하는 것보다, 미리 당겨서 고생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세상공부라고 말없이 두둔하는 심정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수도권의 시내버스와 기차요금을 오는 2월 10일부터 전면적으로 인상하리라고 전격 발표했다. 1.5페소 정도 하던 금액이 4페소까지 대폭 오르리라는 전망이다.
단지,  SUBE 카드를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인상을 적용시키지 않겠다는 별도사항이 첨부된  발표였다.

SUBE 카드를 배부하게 된 날의 우체국은 가히 장사진을 이루었다.
24일 정오경에는 SUBE 카드가 바닥이 났다는 안내문이 일부 우체국의 정문에 붙여지기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5월의 광장 근처의 배부사무실에서는 1천 개의 SUBE 카드가 짧은 시간 안에 재빠르게 나눠졌다고도  한다.
많은 수의  사무원들은 새벽 4시에 줄을 서서 오전 10시에나 배부 받을 수 있었다고 현지 TV의 뉴스는 속보처럼 전하고 있다.
정부는 이틀동안 270만장의 카드가 배부됐다는 중간발표를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당일에는 줄 서야 하니까 하루 이틀 지난 후에야 가봐야겠다고 아들은 중얼댔었다.
26일인 어제,  인터넷을  검색하여 가장 가까운 장소 세 군데를 적던 아들은 뜻밖에도 반시간 안에 돌아 왔다.
첫 번째 갔던 곳은  이미 끝난 상태였지만. 디렉토리오 거리에 있는 문방구는  의외로 한가하여 금방 신청을 했노라는  설명이었다. 그곳조차 얼마 남지는 않았다면서,  카드를 보여 주기까지 하더라는 얘기였다.

AFIP(연방세입청)과 ANseS(사회보장국)에서 소비자의 정보를 전산화 시킨 후, 정부보조금 지원을 최대한으로 제한하려는 계획 아래, 이와 같은 제도가 긴밀하게  구성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 일리가 깃든  창출이라고 나름대로 수긍하게도 된다.

느닷없이 나는 달러의 변동도 적고, 물가의 변동지수도 낮은 나라에 살고 싶어진다 .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점만 바라보며 참고 참으며 살자니, 이리도 거추장스런 일에까지 신경을 잠시라도 빌려 주며 지내야 함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나는 한국이 좋다고 하는데, 아들은 이 나라를 몹시도 아끼고  사랑까지 해내고 있다.
한 번도 이 나라에 대해서 투덜대는 모습을 못 보았다.
분명한 것은 나도 아들도 이 나라에게 크게 바라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오게 되었나 보다.
다시 참고 참으며 살아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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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6일 목요일

2세들




   맹하린


이반은 아들의 대자(代子)다.
이반이 유아영세를 받을 때 아들이 대부(代父)를 서 준 것이다.
그 토록이나 어렸던 이반이 벌써 대학 2년생이 되었다.
가끔씩 친구들을 몰고 우리 가게에 오는 이반.
어제도 친구들과 함께였다.
자동차 안에 두 명, 가게에 함께 들어온 두 명.
이반은 주문할 때 말한다.
"Cumpleanos de mi viejo, tia(내 아빠 생일이에요, 이모)!"
올 때마다 매번 그 비슷한 이유를 달지만, 사실은 친구 아빠의 생일이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반의 아빠는 지방도시  Tucuman에서 의류소매상을 경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반의 아빠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유학 중인 이반을 만날 겸 의류상품을 구입하러 내려 왔을 확률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반은 매번 그런 식으로 우리 가게를 선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하게 안겨온다.
나는 그럴 경우 이반을 위해 만드는 꽃을 훨씬 더 풍성하게 보태는 편이다.

이반의 여동생 테레지나는 예전에 내가 옷가게를 할 때,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자고 날마다 찾아오던 아기였었다.
여기서 내가 정작 얘기를 펼치려는 건 이반의 성격이랄까 태도에 대해서다.
이반은 나를 띠아=Tia(이모)라고 부르는데, 이반이 한 번이라도 왔다 가면 내 머리나 가슴은 이반이 말끝마다 붙여준 띠아라는 호칭의 여운에 취해 정신이 붕,  떠있을 지경이 된다.
이반은 한국말이 딸려도 약간 딸리는 정도가 아니다.
그래서 주로가 아니라 전부 까스떼쟈노(서반아어)를 사용하는데 중요한 것은 말끝마다 띠아가 붙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Si, Tia(네, 이모).
"Quiero Ramo Redondo Tia( 둥근 다발을 원해요. 이모)."
Muy lindo armo Tia(참 예쁘게 만들었어요, 이모)
Hasta Pronto Tia, Te Quiero, Tia(곧 다시 만나요, 이모. 사랑해요, 이모)
....서반아어문으로 쓰다 보니까 , Tilde(엑센트 부호)가 여럿이나  빠졌다.  한컴엔 그게 없다. 새로 찾기가 복잡해 그냥 쓴다......
그렇지만 나는 이반의 그런 말투나 자세를 절대 아부로 여기지 않고 친절과 존칭으로만 기껍게 받아들인다.

아들의 친구 아드리안은 또 어떤가.
아르헨티나의 사립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대형슈퍼 '디스코'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미국으로  재이민을 간 아드리안도 참 특이한 편이다.
아들을 만나러 오거나 만날 약속이 있을 때마다 자동차로 아들을 데리러 오고, 극장이나 외식을 한 뒤엔 꼭 집에다 데려다 주기까지 했던 아드리안. 예쁜 애인이 언제나  함께였다.
그런데 아드리안은 아들 뿐 아니라, 나까지도 집에다 데려다 주기를 서슴치 않았다.
(아들은 자가용에 대한 필요를 전혀 못 느끼는, 아주 엉뚱한 성격이다.)
아들과 외출할 시간도 꼭 내 퇴근시간에 맞춰서 정하고 우리 가게로 오고는 했다.
처음엔 부담을 줄여주고 방해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사양했었다.
거절할 때마다  몹시 난처한 얼굴이 되었으므로, 결국  성의를 무시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대로 맡겼었다.

( 어느 날의 삽화가 그립게 떠오른다.
결혼식 꽃장식을 맡은 날, 아들과 신혼차 리본을 다는 중에 소낙비가 내렸었다.
시간을 미룰 수도 없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타난 신혼차였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때마침 도착한 아드리안은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내 자기도, 친구도 아닌, 나를 내내 우산으로 받쳐 주고 있었다. 예쁜 애인은 차안에 남아 있었고.
그날, 아들과 아드리안은 비를 흠뻑 맞아야 했다.
나는 소나기인지 감동의 비인지가 마음안으로 자꾸만 흐름을 감지했었다.
마음안에 소나기를 가장 많이 맞은 사람은 단연 나였다.)


아드리안은 말끝마다 띠아가 아니라 네, 가  붙는다.
하지만 네, 가 한 번만 붙는 경우를 결코 못보고 못 들었다.
"네네."
"네네네."
그렇게 두 번 아니면 세 번 붙는 네, 다.

얼마 전, 문협의  P선생과 할 얘기가 생겨 전화를 넣었다.
역시 대학생인 P선생의 아들이 받았다.
"아버지 계신가요?"
"아니요, 안 계세요."
"몇 시에 돌아오시죠?"
"아니, 안 돌아 와요."
이쯤에서 내 머리는 손톱만큼의 소리라도 전화기를 타고 전달될까를 염려하며 잽싸게 구르고 구르기를 거듭한다.
"아, 한국에 가셨어요?"
"맞아요. 그래서  안 돌아와요."
"그렇군요. 다음에 또 전화 할게요."
"그래요, 또  해요."

말끝마다 띠아가 붙고
말끝마다 네라는 대답이
두 번이나 세 번이 되고
오늘 돌아오지 않을 때는
안 돌아온다고 표현하는
우리의 2세들.
그들을 대할 때마다 마음 뿌듯한 든든함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아르헨티나의 특성상 탈선하는 2세는 손으로 꼽을 정도일 따름이다.
누구나 생업에 열심한 부모를 닮아 절약하고 부지런하고 친절함에 익숙한 모습들이다.
그들 젊은이들의 풋풋함으로 인하여 우리 아르헨티나 교민사회는  갈수록 싱그럽게 변화를 획득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의 미래는 의외로 밝다
나는 우리의 2세들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적인 선비기질과 서양적인 자유분방함이 우월한 방면으로만  뒤섞여
기본은 된
기본이 보기 좋은
기본마다 튼튼한 영역을 이룩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사람은 우선 기본부터  갖춘다는 게 쉬운 일도 같지만 특히나 어려운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밝은 미래다.
그들.
우리의 2세들이 가야 할 앞날은.

탈무드는 말한다.
'다섯 살 난 자식은 당신의 주인이고
열 살 난 자식은 노예이며
열다섯 살이면 동격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기르기 나름인데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