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9일 금요일

냄비시위


 





-초여름-

시위에 동원된 통계인원 추산의 간격이 너무 큽니다,
정부의 녹을 먹는 경찰청 발표=10만 명.
언론 발표=25만 명.
마끄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정부경찰당국 발표=50만 명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11월 8일...


         맹하린


아베쟈네다 지역에 둥지를 틀었던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옥상에서 어스름이 내려 앉기 시작하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커피와 간식을 들고 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검정색의 긴 모직코트에 역시 검정인 약간 긴 모자를 쓰고 수시로 지나다니던 유태인 랍비들을 보며 나는 아들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들은 신앙심 때문에 이 땡볕에 저런 차림으로 나다니는 거니?"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 믿기 때문이죠."
그 무렵 신앙생활에 자주 갈등을 겪던 남편이 옆에서 실토하듯 말했다.
"하느님이 한 번이라도 보인다면 나는 의심 없이 더 확실하게 믿을 수도 있을 텐데……."
매사에 우리 내외의 사부역할에 충실하던 아들은 그리도 명쾌하며 적절한 답을 ,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산뜻하게 풀어냈다.
사실, 우린 아무 것에도 문외한이고 뭐든 잘 모르는 것처럼 간접적인 논술교육을 그런 식으로 유도하는 시간을 즐겨 가졌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빠!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의 저 나무들을 좀 보세요. 저 나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바람의 모습이 아빠 눈에는 안 보이시죠? 사람은 나무이고 바람은 하느님이십니다. 신을 기필코 확인하려고 주장하는 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돼요.  바람이 누구에게나 보인다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교회신자가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신을 보아내고 믿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믿음 아닐까 싶어요."

11월 8일에.
아르헨티나 중도좌파정부에게서 극우파이며 쿠테타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우두머리들이라고 불리는 세력들, 그들이 주요도시에 운집하여 대대적인 냄비시위를 벌이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경고하듯 포문을 열고 있는 와중이다.
어떤 변수와 파장을 몰고 올지 현지사회전체가 사태의 추이를 각자의 조리개를 맞추며 관심껏 지켜보는 시점이다.
그렇잖아도 침체된 경기 역시 바짝 움츠린 가운데, 가장 예민한 촉각을 세워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모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사회분위기다.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무슨 일이 안 벌어지기를 바라고 바란다.

우리 가족이 이민이라고 도착했던  30여 년 전에는 아르헨티나의 차도나 인도들은   종이라던가 작은 부피의  쓰레기들  천지였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니까 나까지도  자가용을 탈 때마다 차창으로 휴지나 과일껍질 정도 버리는 일은 다반사로 실행했었다.
어떤 면으로는 재미까지 느꼈고 즐기는 느낌조차 깨닫게 될 정도였다.
그만큼 투명하지 못한 사회의 어수선하거나 어지럽혀진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걸쳐 기류처럼 감돌았지만 지금보다는 순박하며 때 묻지 않았던 세상이기도 했다고 추억된다.
현재의 아르헨티나 거리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청소부들이 형광색 유니폼 차림으로 키보다 커다란 빗자루를 사용하며 잦은 청소를 해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청소부들은 비질도 한국과 반대로 한다.
옆이나 앞으로 쓸어내는 자세가 아니라 오로지 밀고 밀어낸다.

나는 하여간에 활자중독자다.
쓰지 않으면 읽고, 읽지 않을 땐 쓴다.
읽을 때는 모르겠는데, 쓰는 동안에는 세월이나 시간관념을 완전히 잊는 편이다.
결국 나는 가는 세월을 좀 멈추려고, 내가 나를 격려하려고 쓰고 읽어 왔는지도 모른다.
나를 보호 하고  위로하려고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신은 오늘 또한 재산의 많고 적음을 상관치 않고, 소외계층이 된 이들의 마음을 크고 작게 움직이고 있다.
보이거나 안 보이는 존재가 되어 우리와 한 세상을 살며 이해와 용서와 은총의 나눔을 수도 없이 베푸는 것이다.

11월 8일에.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더 이상의 태풍과 맞먹는 정치변동이 결코 안 벌어지기를 바라며 약도를 들여다 보 듯 거리를 지켜보게 된다.
형광색 청소복의 청년이 기다란 빗자루를 밀고 밀면서 청소부 고유의 카트 있는 쪽을 향해,  역동적이며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



2012년 11월 4일 일요일

햄버거 할아버지

한국일보

    -장명수 칼럼 -


'햄버거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근검절약을 한평생 생활 신조로 삼았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오면 할아버지는 함께 외식하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가는 곳은 항상 햄버거 집이었다. 집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차를 타고 좀 멀리 교외로 나가야 하는 곳까지, 늘 같은 체인의 햄버거 집을 찾아 가셨다.

처음에 가족들은 "손주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도 햄버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다른 외식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할아버지가 햄버거 집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갈비란 본래 한 두대 먹는 것"

몇 년 전 장남이 갈비 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계산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다. "가족 외식으로 이런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음식에 비해 값이 터무니 없는데 왜 이런 바가지를 쓰느냐. 또 갈비란 본래 한 두 대, 많아야 두 세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식당이 떠나가게 떠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귀아귀 먹어대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할아버지는 꾸중하셨다.

자녀들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몇 번 외식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정한 곳이 햄버거 집이었다. 생선 채소 고기 등 여러 종류의 햄버거가 있으니 식성대로 고를 수 있고 맛도 괜찮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패스트 푸드는 몸에 안 좋다"고 며느리가 반대했지만 "한 달에 두 세 번 먹는 다고 나쁠 것 없다. 또 우리 같은 노인에겐 햄버거가 별식이다. 모든 물건은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라고 할아버지는 주장하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오늘의 노인 세대는 물자와 돈에 대한 생각이 젊은 세대와 많이 다르다. 물자가 귀한 시대에 성장했고, 전쟁을 겪으며 굶주림을 체험한 세대여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화장지 한 장도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는 손주들이 화장지를 마구 뽑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는 메모지가 있는데도 이면지를 사용하고 종이 봉투, 나일론 보자기, 몽당연필, 리본, 포장지, 단추 등을 버리지 못해 온갖 잡동사니에 묻혀 산다.

요즘 나는 노인들의 이런 생활 태도가 더 없이 아름다운 미덕임을 발견하고 있다. 물자를 아끼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삼가는 마음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겸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무를 잘라야 만들 수 있는 화장지를 반으로 나눠 쓰는 할머니는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나무들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종이를 아끼는 것이다. 물건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햄버거를 선택했던 할아버지는 구두쇠가 아니라 생활경제 학자였다.

"갈비란 본래 많아야 두 세 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절제와 점잖음이 배어있다. "실컷 먹고 실컷 마시고 실컷 즐기겠다."는 요즘 풍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대를 이어 전해내려 온 굶주림의 기억이 세계 경제 10대국을 넘보는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무엇이든 '실컷' 하겠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와글와글 식당

이런 욕구에 편승한 바가지 상혼이 음식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고, 실컷 먹고 마시는 문화가 식당을 시끄러운 장터로 만들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맛있다는 식당은 지글지글 굽고, 부글부글 끓이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연기와 김이 자욱하다. 이런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만족하는 고객들이 이런 식당을 번창하게 한다.

나도 전에는 구두쇠와 궁상이 미덕임을 몰랐다. 자신을 위해 물자를 풍풍 쓰는 것이 천한 것임을 몰랐다. 절제와 절약이 반듯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절제의 미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된다. 화장지를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손주들에게 물려줘야 할지 안타깝다.



새로운 희망




       맹하린


10월 셋째 일요일이던 올해의 어머니날엔 사흘 동안 무척 바빴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엔 1시간 정도만 눈을 부쳤을 정도로 주문예약이 넘쳐 있었다.
당일 오후엔 예년과 다름없이 친구들이 일을 도왔다.

이틀을 밤샘한 셈이라선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긴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미용실에 다녀오고 기다리고 그러는 과정이 성가셔서 내가 잘랐다.
빗장뼈에 닿을 정도의 단발머리가 되었다.
꼼꼼하게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런하지는 못해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도리어 거울을 볼 때마다 약간 층이지는 끝부분이, 내가 나를 웃음 짖게 만들고 있다.
내년 5월까지 결혼꽃 장식도 몇몇 주문을 맡아둔 터라 때로는 바쁘게 지낼 것 같다.

며칠 전 악플러들에게 연거푸 타격을 입었다.
그로 인해 외로웠다면 다행이었겠는데, 그런데 울적함의 극치를 맛보고 맛봤다.
실명공개, 내 글에 대한 폄훼 등등.
기분전환을 위해 옷 하나  구입해 보려고 수입옷집에 갔다.
본국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구입해 왔을 게 분명한 울긋불긋한 한국 신상들이 하나같이 500페소(1백 달러 상당)가 넘었다.
대부분의 옷들이 거의  골프를 위한 상품들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금세 그곳을 나왔다.

몇 년이 걸릴 지 확언할 수는 없으나 환국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아기자기한 내 나라에서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최근 들어 퍽도 사무치다.
엄마와 형제들을 지켜보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기를 즐기며 나는 어쩌면 글도 안 쓰게 될 것 같다.
외롭지 않으면 글도 써지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동안 외로웠을까.
그렇다. 밝음이라는 이름의 외로움 속을 타박타박 여일하게 지나 왔을 것이다,
엇갈리는 상념들이 자주 나를 흔들어 놓고는 했었다.
우기의 빗소리에 실린 생의 편린들이 투명한 아우성으로 들리기도 했었다.
어떤 면으로는 가장 평화로운 심리상태를 회복하려고 느닷없이 나는 새롭게 희망 하나를 구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악플러들…….
그들은 위대하다.
아르헨티나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나를 몰아내는 일에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단지 관심이라는 미명하에…….
익명의 바다에서 현장성을 담보하고 감상성 역시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는데...
그런데 익명에 혼겁하여 최근의 나는 실명에도 거부감이 생기는 현상을 겪는 중이다.
언제라도 상투성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을.

환국.
요즘의 내게 절대군주의 존재처럼 유일한, 새로운 희망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부터 나는 잠재적인 직관력으로 환국을 희망해 왔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