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8일 수요일

푸틴도 참!!!


          맹하린


어제 저녁엔  문협의 월례회가  있었다,
17인의 문우들이 담소(談笑)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P고문의 특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머잖아 내 차례도 올 테지만, 나는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적성(敵性)에 안 맞아 하므로 부득이 졸작(拙作)이나 한 편 발표하게 될 것이다.

몇 년 전에는 서너 분만  참석할 정도로 와해(瓦解)될 위기(危機)에도 처했었지만, 문우 한 분 한분 마다 서로 노력하고 각자의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오늘의 화기애애함이 조성(造成)되었다고 여겨진다.
30여분의 문우들마다 삼십 종류의 따로국밥인 개성(個性)을 지녔지만, 나는 그분들 모두를 하나하나 다 존중하게 된다.
행여  내게 상처를 안긴 문우가 있을지라도 솔직히 겉으로야 어땠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용서했다.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항상 미움을 품고 살아야 할 테니까.
분명한 것은 그런 분들일수록  언젠가는 다시 같은 레퍼토리로  괴롭힐 확률이 넘쳐,  그러한 여건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 위해 내쪽에서는 항상 무뚝뚝함을 고수해 왔을 것이다.

문협의 월례회에 가기 위해 가게 문을 닫기전,  인터넷 뉴스에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동영상을 보게 되자,  나는 파안대소를 절로  터뜨렸다.
웃음이란 하나도 해로울 게 없다는 말은 진리(眞理) 같다.
그 순간,  점차적으로 커다랗게 높아지는 웃음을 웃으며 내가 쏟아낸 말은 이랬다.
"아니! 아니! 푸틴이 무슨  꼴통이라도 된다는  얘기야?"

나는 가끔 몇몇 남성문우들이 내 손에 운 베소(뽀뽀)를 하려고 할 경우 잽싸게 손을 떨치며 피할뿐아니라  냉엄하게 경고(警告)의 노란딱지까지  제시(提示)하는 성격이다.
물론 존경 나부랭이를 들먹이거나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걸 못 듣는 바는 아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일에도 지켜야할 간격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푸틴은 정치가다.
그리고 상대방은  종교지도자가 아닌가.
푸틴 참 모자라다.
정치가에게 걸맞는 노련함이 턱없이 부족하다.
정치를 무슨 꼴통들이나 하는 걸로 아는 모양인가.
정치가의 액션을 보며 꼴통인 이 사람은 리액션을 익힌 동영상이었다.







2012년 8월 6일 월요일

Pablito




           맹하린


빠블리또는 내가 자주 가는 나무시장의 현지인 종업원 빠블로의 애칭(愛稱)이다.
내 아르헨티나 이름 마르가리따도 꽃시장이나 나무시장에서는 마르가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나무시장은 광활(廣闊)한 영역이다.
몇 헥타르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으나 수백 종류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각양각색의 단지(團地)를 이루고 각자들의 개성 넘치는 옷을 울긋불긋 떨쳐입은 채  상쾌하게 잘들 살고 있다.
나무시장의 철칙(鐵則)은 화원(花園)을 하고 있다는 증명을 제시하지 못하면 단박에 출입금지를 당한다. 절대적으로 개인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는 수칙(守則)을 고수한다.
윗선에 계신 높으신 현지인 사주(社主)가 직접 개입하지를 않는 시스템이라선지 종업원이나 사무원들이 마냥 여유롭게 일해서 나처럼 고객의 급 주문을 받은 사람은 초반부터 조바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짜증을 내봐야 이래저래 본인만 손해다.
도대체 바쁜 사람을 반나절씩이나 낭비하게 만드는 상업태도가 가당키나 한 얘기인가.
생각의 끝자락을 부여잡은 나는  어느 날 부터 팁을 주기 시작했다.
역시 달라졌다.
30종반인데도 너무나 느릿느릿 일을 하던 빠블리또의 행동이 신비로울 정도로 잽싸졌다.
일본인을 부인으로 맞은 지 5년이 됐다는 일상사(日常事)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털어 놓는다.
그와 나는 자연스레 서로 뺨을 대는 인사까지 나누게 되었다.

토요일에 급 주문을 받은 여러 개의 축하화분들을 다듬고 포장하고 리본 달고 글씨 쓰고 납품하느라 주말을 몹시도 분주하게 보냈다.
얼마 전  두 나무에서 세 줄기의 꽃들을 탐스럽고 향기롭게 피워 냈던 행운 목 두 그루까지 모두 시집보낸 날이었다.
J교회의 창립40 주년 기념및 취임예배가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행운 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Palo de Agua라고 부르지만 나무시장에서는 라틴말에서 유래된 Massangena de Tronco라고 불린다.
가게의 면적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관리하기가 불편해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사들인다.
며칠 안으로 다시 나무시장에 가야할 것 같다.
빠블리또에게 적정선의 팁도 건네고 화분을 고르면서 그의 일본부인의 안부도 묻고 그럴 것이다. 맘 같아서는 작고 앙증맞은 부케형 꽃다발이라도 만들어다주고 싶지만, 보는 눈들을 샘나게 할  계기를 만들 것도  같고 해서 그런 내 맘을 살며시 접는다.

바쁜 와중이어서도 그랬지만 시사성이 있는 글이라서 급히 올리느라 어제는 제목과 본글에서 실수를 여럿이나 일으켰다.  오늘 새벽에야 깨달았기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고쳤다.
올림픽을 월드컵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나는 이럴  때 창피하지는  않아 한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아는 성격이어서다.
실수도 안하고 사는 사람은 소름이 돋는다는 주의(主義)다.

어제는 너무 지쳐서 저녁식사를 몇 가지 과일로 대신했다.
마르가리따인 나를 마르가로 불러 주는 현지인들이 있어 나 그나마 사는 일 팍팍하지가 않다는 느낌이다.
한국인들…….
내가 아는 한국인들은 겉으로는 친구라고 피력하면서도 언제라도  꼭 나이에 대한 예절과 의리를 지키려 해서 그점 꽤나 거북하고 불편하다.
때로는 잊고 싶은 게 나이인 것을.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당연하고 분명한 일이기는 하다.
내가 악마와 맺은 계약 중의 일부가 글에 대한 열정(熱情)과 나이를 잊고 사는 일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그렇단 들 이제 더 이상 악마와의 계약은 맺지 않을 작정이다.
악마와의 계약은 철두철미한 구석이 너무 많다.
깨뜨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하지만 계약은 이미 끝났다.
지금은 천사와의 계약을 지켜야 한다.
천사와의 계약 역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살면서 조금씩 선(善)한 흐름으로 흐르면 되는 일이라 다행이다.

내가 소원(所願)하고 있는, 소박하다면 소박한 꿈 몇 가지만 이룩하면 내겐 특별히 소원할 일도 없다.
무얼 더 바랄 것인가.
뒤늦게 중노동자로 고생을 하고 있지만, 내게 일이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내가 살아가는 여정(旅程)에 빠블리또와 같은 현지인들이 있어 나는 반갑게 안녕을 주고받고 손 흔들어 감사할 따름인 것을.
사는 일은  어떤 면으로는 감사(感謝)를 익히는 일이다.

추위 속에서도 봄이 포르르르 날아온 모양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소르살 꼴로라도(유색의 개똥지빠귀)의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었다.



2012년 8월 5일 일요일

런던올림픽 경기를 보며


           맹하린


한국과 영국이 대결을 벌인 런던올림픽 축구의 8강 전, 특히 연장전에서의 승부차기골  장면들을 지켜보면서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어려서는 아르헨티나와 스포츠강대국들만을 편들던 가족이 한국 아나운서, 그리고  축구 해설가의 사투리와 억양을 골고루 흉내 내면서 절대적으로  한국 편을 들고 있어서였다.
“아~ 골입니다!  자, 이제~ 한국이 이겼습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입니다!”
그렇게 소리 높여 흉내 내고 외칠 때마다 내게서는 웃음이 폭탄처럼 터졌었다.
(가족이여! 우리의 장난스러움은 언제나 우리한테만 사용하도록  조심하자,  우리는...)
남미축구를 관전할 때처럼 아슬아슬한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내 조국의 선수들이 열심을 다해 뛰는 모습은 참으로 듬직하고 흐뭇했다.
모든 운동경기에도 운(運)이 따른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 경기였다.

런던올림픽의 축구경기가 시작될 무렵.
영국을 대표하는 가수 폴 메카트니는 인터뷰를 통해 강하면서도 예리한 지적을 마치 영국 벌의 대표나 되는 것처럼 웽웽웽, 쏘아 댔었다.
“영국의 축구대표 감독은 축구에 대해서 잘 모르는 위인이다. 영국은 베컴을 기용했어야 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페널티킥을 베컴처럼 자신만만하게  소화해낼 선수는 드물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영국 벌 폴 메카트니의 말이 매우 적절했다는 결과가 생기고 말았다.

이번 월드컵에 아르헨티나 축구팀이 출전하지 못해서인지 거리마다  너무나  조용했고, 어딘지 모르게  아늑하기까지 했다.
청소년 대표 팀으로 선수를 집약하느라 그런 일이 생긴 모양이다.
아르헨티나 축구는 20세로 제한된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남미 4개국 안에는 들었지만,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브라질과 다른 나라 팀이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기로 암묵적 선을 그어서 부득이 참여하지 못하는 황당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기발하게 급조한 협정이었다고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경비를 줄이자는 의도가 가장 강했지 않았나 싶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되는 사태다.
참으로 현실적이기도 했고, 비현실적이게도 보였던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중계방송을 통해 수영, 펜싱, 축구, 테니스, 그리고 로마시대의 골리앗처럼 생긴 선수들이 던지는 원반던지기까지 흥미진진 관전하면서, 4년에 한번 씩 열리는 월드컵이 있어 사는 맛 그런대로 쏠쏠하다는 느낌이 연신 들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 때,  총연출가인 세계적 영화감독 대니 보일은 ‘ 경이로운 영국’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고 아름답게 연출했다.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엔 롤링이 <피터 팬>의 첫 구절을 낭송하는 장면도 감동이었으며, 피날레로 비틀스의 폴 메카트니가 ‘헤이 쥬드’를 합창하는 장면 역시 장엄한 마무리로 장식 되었다.

어떤 매체에서든 내게 세계최고의 명작소설 다섯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두 번이나 세 번째에 넣고 싶은 소설이 영국의 ‘트레인스포팅’이다.
그 작품을  영화화 했던 감독 대니 보일은 이번 올림픽 개막식이 정치적 관점을 특별히 배제했다는 면을 유난히 강조했었다.
영국의 축구감독은 한국과의 경기 내내 석고처럼 굳어 보였으며 속이 타들어 가는 듯 한 표정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정황을 지켜보면서, ‘영국이 산업사회의 시작이었고 세계 산업화에 일익을 가져 왔다는 점을 알리려 했다’고 개막식의 진정한 모티브와 초점에 대해 강조에 강조를 했던 대니 보일…….
그가 공식 인터뷰에서 간접적이면서 패권주의적으로 표현했던,  영국을 우월주의의 권좌에 오르게 하고 돋보이도록 이끌려던 발언들이 미묘하게 오버랩 됨은 내 개인의 편향된 시선에 불과한 것일까,  잠시 유추해 보게도 된다.

오늘 정오쯤, 세계랭킹 9위인 아르헨티나의 대표 테니스 선수  델 뽀뜨로와 세계랭킹 2위인 노바크 조코비치 ******(링크) 선수가 동메달 쟁탈전을 벌이는 시합이 있었다.
일하는 틈틈이 그  경기를  보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광경에 한동안 사로 잡히게 되었다.
델 뽀뜨로의 적수인 세르비아의 프로 테니스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 때문이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관중석의 아기 울음소리에 신경이 쓰여 오롯이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 했던 것.
그는 관중석의 아기 아빠에게 아기를 내가 봐 줄까요? 아니면 아기를 내게 줄래요?
정도의 제스처를 과감하게 보냈고,  아기아빠는 곧장 아기를 안고 퇴장했다.
곧장 퇴장하는 아기를 안은 아기아빠의 주위에 앉거나 서 있던  관중들은 대체적으로 웃는 분위기였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결국 승리는 델 뽀뜨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내 제2의 나라 아르헨티나의 선수 델 뽀뜨로의 고군분투에 가깝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렇지만  아기의 울음을 결코 무시할 수 없어 하던,  어느 프로 선수의 예민했고 아픔으로까지 느껴지던 , 한 편의 예술작품과 같던 장면을  한동안 잊지는 못할 것만 같은 예감이다.
동질감은 아니더라도 동감에 젖는 나를 아스라히 깨닫는다.
스포츠의 거장이 되는 길은 그다지 평범한 길이 아니며, 너무 인간적인 면에 연연해서도  곤란하리라는 점 또한 아릿하게 안기던  순간이었다.







2012년 8월 3일 금요일

‘내일이면 집 지으리 새’에 대하여








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더운 여름, 추운 곳 얘기 하나 해야겠다.
인도 설산에 가면 아주 게으르기 짝이 없는 새 한 마리가 있다.
얼마나 게으른지 그 추운 설산에 살면서도 절대 추위를 피할 둥지를 짓는 법이 없다.
밤이면 설산의 눈보라와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면서 ‘내일이면 집 지으리, 내일이면 집 지으리’ 하면서도 막상 날이 밝아 햇빛이 고루 퍼지면, 지난밤의 고통 같은 것은 까마득하게 잊고 종일 놀기에 바쁘다.
그러다 다시 밤이 되면 추위와 눈보라에 오돌오돌 떨며 ‘내일이면 집 지으리’를 밤새 되뇌게 되는데 , 이 새의 이름이 바로 한고조(寒苦鳥)다.
도를 닦겠다고 ‘불문에 들었어도 게을러서 제대로 도를 닦지 못하는 사람’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게으름뱅이 새야말로 참으로 인간적이다.
꼭 추위를 피할 집이 아니더라도 우리야말로 어제의 다짐을 오늘에 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일엔 무얼 해야지, 다짐하면서도 막상 내일이 되었을 때 그 다짐을 잊고 그냥 넘어간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그 가운데 중요한 일도 많았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 다짐 안 지켰다고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진 것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소설가


-초여름-

오디 나무를 포스팅 할 때...
Eagles의 Hotel California를 올렸었는데 어제 보니까 없어졌다.
그래서 다시 올린 셈~
Hotel California는 내가 좋아 하는 음악 중의 하나라서...



2012년 8월 1일 수요일

서반아어



     맹하린


    1987년


이민 온 지 2년이 지났을 무렵, 서반아어를 배우기 위해  꼬리엔테스 거리에 있는 학원에 다닌 일이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었고, 현지인 여성이 강사였다.
여러 가지 동사변화와 인칭변화에 대해서 하나씩 깨우쳐 가면서, 그동안 서반아어를 얼마나 무지(無知)하게 사용해 왔는지, 지금껏 사용해 왔던 짧으면서 긴요했던 말들이 모두 항의하면서 나를 향해 와르르르 달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디로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까지 했다.

노력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극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몇 달 가지고 해결될 일도 아니어서 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행여 말하는 중간에라도 제대로 표현하려는 의식만은  갖추고 있는 셈이니 그점이 하나의 수확(收穫)  이라면 수확이라고  할까
분명한 것은 한걸음 한 걸음 배워나가다 보니까 새로운 언어와의 만남에서 오는 희열 비슷한 느낌 같은 걸 획득하게도  되었다는 사실이다.

서반아어에 제대로 접근해 봐야겠다고 결정적인 결심을 굳히게 된 건 초등학생인 아들 덕택이었다.
어느 주말, 티뷔이에서는 초등학생들이 학예회 비슷한 걸 공연하고 있었다.
물론 현지인 어린이들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소원이라도 된다는 듯 간절한 음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엄마가 언제 저 애들처럼 이 나라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하하하."
나는 기가 막혀서 그렇게 허심탄회 웃어댔지만 마음속으로는 쇳덩이가 심장을 툭 밀치는 기분이었다.
결국 내가 그 초등학생들 보다 서반아어를 훨씬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던가.

고국에 있을 때 명절이 되면 외국인 장기자랑대회가 열렸었다.
외국인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필수적으로 한복을 입고 나와서는 주재국 언어인 한국말로 장기자랑을 해내는 프로였다.
그런데 사실 너무 반지르르하게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 나오게 되면 어딘지 모르게 얄밉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특상을 받은 미국인의 이런 얘기가 인상 깊었다.
-가게에 치약을 사러 갔습니다. 한국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니까 발음이 매우 안 좋았지요. 내가 쥐약 주십시오, 그러니까 가게 주인이 놀라면서 쥐약은 약국에서나 판다고 대답했습니다. 쥐약이 아니고 쥐약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게 주인은 내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계속 답답해 죽겠다고 그래요.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설명했습니다. 내 이를 닦으려고 그러니까 쥐약 필요합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그때서야 내 말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쥐약 아닌 치약을 내 주었습니다.
그런 정도의 실수는 적당히 재미있었고 위트 또한 넘쳐 보였다.

작심(作心) 3일이라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시작이 된다는 속담을 떠올리고 하루에 한 마디라도 외우고자 노력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적어도 가족에게서 놀림을 받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싹튼 결과였다.
굳건한 의도를 안고 아침이 되면 단어나 숙어를 하나하나 찾아서 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평소의 나는 한다면 해내고 안 한다면 안하는 철저한 주관을 간직한 편인데, 어인 일인지  서반아어만은 한다면서 안 하는 분야로 자주 탈바꿈을 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서반아어를 너무 잘 하면 내 나라 말을 조금씩 앗길까를 염려한 의중(意中)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가요를 잘 안 듣는다.
듣자마자 가사가 머릿속에 입력되어 하루 종일 머리나 입가에서 맴도는, 여러모로 성가신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는 계산은 잘 못하는 머리지만 외우는 건 수월한 머리라고 자인한다.
그런데 왜 서반아어는 그리 쉽게 입력이 안 되는 것인지 도대체 내가 나를 이해(理解)하지 못하겠다는 심정이다.
이제라도 다시 시작하겠다.
무조건 외울 것이다.
오늘의 숙어는 이렇다.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그러나…….
(No Quiero interrumpir. Pero...)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반전인가요?
그러나, 그러나...
반전(反轉)이 서반아어로 뭐였더라?

나는 현재 한서사전에서 반전을  찾는 중!!!


-초여름-

지난 주말의 분주함으로 인하여 나는 며칠을 녹초되어 지냈다.
글을 쓰는 건 물론이고 워드작업조차 불가능했던 날들이었다.
일요일 밤의 꿈엔 내가 모르는 나라에 도착되었다.
너무나 낯선 나라여서 나는 평소의 나답게 웃었고  손까지 흔들며
그 낯설고 물선 나라를 빠져 나왔다.
"내가 사는 나라에 다시 가렵니다.  아직은 그 나라를 사랑해요."
나는 다시 살아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