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일 수요일
여행
-박경리
나는 거의 여행을 하지 않았다
피치 못할 일로 외출해야 할 때도
그 전날부터 어수선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나다니기를 싫어한 나를
구멍지기라 하며 어머니는 꾸중했다
바깥 세상이 두려웠는지
낯설어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도 남 못지 않은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꿈속에서도 여행을 했고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혹은 배를 타고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런 여행은 아니었지만
보다 은밀하게 내면으로 내면으로
촘촘하고 섬세했으며
다양하고 풍성했다
행선지도 있었고 귀착지도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있었으며
밤 하늘의 별이 크다는 사하라 사막
작가이기도 했던 어떤 여자가
사막을 건너면서 신의 계시를 받아
메테르니히와 러시아 황제 사이를 오가며
신성동맹을 주선했다는 사연이 있는
그 별이 큰 사막의 밤하늘
히말라야의 짐진 노새와 야크의 슬픈 풍경
마음의 여행이든 현실적인 여행이든
사라졌다간 되돌아오기도 하는
기억의 눈보라
안개이며 구름이며 몽환이긴 매일반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이기철
저녁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진다
놀이 만지다 두고 간 산과 나무들을
내가 대신 만지면
추억이 종잇장 찢는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어둠 속에 내려놓고
풀잎으로 얽은 초옥에 혼자 잠들면
발끝에 스미는 저녁의 체온이 따뜻하다
오랫동안 나는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해야 하리라
내 등뒤로 사라진 어제, 나 몰래 피었다 진 들꽃
한 번도 이름 불러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
눈 속에 묻힌 씀바귀
겨울 들판에 남아 있는 철새들의 영혼
오래 만지다 둔 낫지 않은 병,
추억은 어제로의 망명이다
생을 벗어버린 벌레들이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너무 가벼워서 가지조차 흔들리지 않는 집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이 아려온다
짓밟혀서도 다시 움을 밀어 올리는 풀잎
침묵의 들판 끝에서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제부도
- 이재무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깊이 말인가?
제부도와 대부도 사이
가득 채운 바다의 깊이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그리움 만조로 가득 출렁거리는,
간조 뒤에 오는 상봉의 길 개화처럼 열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말인가? 이별 말인가?
하루에 두 번이면 되지 않겠나
아주 섭섭지는 않게 아주 물리지는 않게
자주 서럽고 자주 기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자랑스러운 변덕이라네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뼈아픈 별을 찾아서-아들에게
-이승하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들아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 밑에서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하지 않는다면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아들아 네 등뒤로 떨어지며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뼈아픈 별이기에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들아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 밑에서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하지 않는다면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아들아 네 등뒤로 떨어지며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뼈아픈 별이기에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연못을 파고 살아야지
-공광규
몸에 연못을 파서
수심을 뚫고 올라온 연꽃을
수면에 모시고 살아야지
흙탕물을 맑게 하고
쓰레기를 가라앉힌 연못
그 바닥에서 솟아오른 연꽃을 모시고 살아야지
연못의 마음은 수평
다시 수평을 잡는 수면
몸에 날아오는 돌 하나쯤
퐁당! 맑은 소리로 받은 뒤
다시 수평으로 돌아와야지
벌레가 뛰어들면
수면을 약간 흔들어
반짝반짝 아름다운 물별을 보여줘야지
마음에 천둥이 와서
수심을 흔들고 수위가 넘쳐 눈물 보이더라도
이내 수평으로 돌아와야지
몸에 연못을 파서
깨끗한 뼈가 드러나도록 파서
수면에 연꽃을 모시고 살아야지
몸에 연못을 파서
수심을 뚫고 올라온 연꽃을
수면에 모시고 살아야지
흙탕물을 맑게 하고
쓰레기를 가라앉힌 연못
그 바닥에서 솟아오른 연꽃을 모시고 살아야지
연못의 마음은 수평
다시 수평을 잡는 수면
몸에 날아오는 돌 하나쯤
퐁당! 맑은 소리로 받은 뒤
다시 수평으로 돌아와야지
벌레가 뛰어들면
수면을 약간 흔들어
반짝반짝 아름다운 물별을 보여줘야지
마음에 천둥이 와서
수심을 흔들고 수위가 넘쳐 눈물 보이더라도
이내 수평으로 돌아와야지
몸에 연못을 파서
깨끗한 뼈가 드러나도록 파서
수면에 연꽃을 모시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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