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고
감동이며
아끼고
사랑하는
내 지인님들
이웃 블로거님들
형제들
가족들
올해 내내 관심을 쏟아 주셔서 무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옵소서.
엎드려 절 올립니다.
맹하린드림
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2012년 12월 29일 토요일
나만의 시위(示威)
맹하린
영주권 혜택(惠澤)이라거나 사면(四面)령이라는 매혹적인 카드가 재선을 앞둔 대통령 크리스티나 정부로부터 제시되었던 몇 년 전, 아르헨티나 땅에는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가 발생하였다.
인접국 이민자들이 꾸역꾸역 날이면 날마다 몰려들었던 것이다.
지독히 보수적이고 개인주의에 철저하고 오만가지 깔끔을 다 끌어다 떨던 아르헨티노들은 현저하게 줄어든 것처럼 보일정도로 느닷없는 일이 느닷없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줄어 들기도 했을 것이다.
나라에 무슨 일만 생기면, 달러 파동이라거나 경제파동만 닥쳐도 쓸만한 인재들과 석학들이 속속 스페인이나 미국 등으로 전격적인 이주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들만 갔을까.
난다 달린다 하는 한국인들도 부지런히 재이민을 떠났다.
그렇게나 약삭바르고 탁월한 선택의 달인들인 그들이 과연 빈손으로 떠났을까...
웅얼웅얼 억양 없는 말투로 음험함을 감추고 여기저기 나대는 볼리비아노 세상이 그때 비로소 도래했었다.
손이 거칠다고 오랫동안 회자(膾炙)되어 왔던 페루아노들도 한몫 하는 세상 역시 여러 몫을 시작했다.
한인 타운 주변에서 주로 주말에만 설치던 날치기들이 작금(昨今)에는 우리 교민경제의 메카인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밤낮으로 신출귀몰(神出鬼沒) 활동을 펼친다.
5인조 권총강도로 승격한 텃수다.
경찰이 가담했다는 설도 있고, 어떤 이는 비닐로 된 까만 쓰레기 봉투에 하루매상을 들고 가던 중 강도들을 만났는데, 그런데 그들과 실갱이 하는 과정에서 고액권의 현찰들이 길에 좌르르 쏟아지는 놀라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퇴근길의 한국인들에게서 하루의 매상액인 몇 만 페소에서 몇 십만 페소가 자동차와 함께 강도에 털리는 일이 시작된 지는 거의 일 년이 다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교민들이 대부분 좋은 차를 지녀서인지 보험회사의 위치추적에 의해 자동차는 신속하게 되찾는 추세이긴 하다.
경찰에 신고해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건 다반사(茶飯事)고, 날이 갈수록 그 빈도가 심해지자, 일부 교민들이 자경단이라는 임시 보안위원회를 결성했다.
어제 그분들을 주축으로한 시위가 아베쟈네다 3800대에 위치한 공원에서 3백여 명의 교민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선 가진 자들의 시위는 이렇다 할 집중을 못 받는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려는 의도에선지 언제나 없는 자들을 우선으로 하는 편향만을 엿볼 수 있다.
아베쟈네다는 우선적으로 해결을 봐야할 현안들이 서로 옷깃을 붙잡고 함께 몰려 서 있는 모양새다.
치안문제, 좌판쟁이들문제, 주차장문제.
저녁 7시경부터는 도둑들이 기습작전처럼 나타날 것만 같은 예감만 어스름으로 감싸오는 암흑과 같이 음산한 가로등도 없는 아베쟈네다 지역의 거리, 거리들.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인 마끄리의 부인은 유명브랜드의 옷을 창조하는 여류명사다.
그녀가 거래하는 제품공장엔 볼리비아노를 위시한 인접국 사람들이 골고루 고용되고 있다.
광범위한 시야로 조명하자면 마끄리는 인접국 사람들을 사열(査閱)은 하되, 외면하고 싶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그러한 기미가 자주 드러난다,
아르헨티나 전역에 행해지는 11월 2일이던 위령의 날…….
마끄리 부에노스아이레스시장은 볼리비아노들의 묘지에 초대되어 위령행사에 적극성을 띠고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을 정도로 그들 이민자들을 대내외적으로 두둔하는 추세를 보여줘 왔다.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마끄리를 우리의 한인묘지에 초대해올 능력이 안 된다면 인접국 사람들과의 티격태격을 제압하는 일은 영원히 요원(遙遠)한 희망이 될 것이다.
혹자는 산타페 거리의 만떼로(좌판 쟁이) 문제는 해결이 된 상태인데 왜 우리는 그거 하나 결판을 못 내고 있는가에 통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충분히 절감하게 되는 얘기다.
3년에 한 번씩 유태인 주인에게 기십만달러의 쟈베(전세금과는 다르게 되돌려 받지 못하는 권리금)에, 매달 기천 달러의 월세까지 지불하는 현실의 그들에겐 복장이 터질만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인 기반을 너무나 승승장구 이룩하던 그들 산타페 거리의 상인들도 아베쟈네다 지역의 한국인들처럼 오랜 세월 고민하고 울분을 식히고 그래 왔었다.
하지만 그들은 좌판쟁이들을 물리치는 가장 첫째 계획으로 일단 매스컴을 먼저 끌어 들였다.
그들은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았던 것이다.
시위를 계획할 때마다 기사화시키기를 첫째 이슈로 삼았던 산타페 거리의 상인들.
나날이 발전하는 좌판기사에 저절로 시달리고 지쳐 은근슬쩍 사라져 간 산타페 거리의 좌판 쟁이들…….
현재 산타페 거리의 좌판 쟁이 문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말끔히 청산 된 상태다.
우리 인생사는 매사(每事)에 그래왔다.
당장 근절시키기 힘든 일도 결정적인 계기(契機)가 주어지면 단박에는 어렵더라도 어느 날 홀연 해결점을 되찾게 된다.
고육지책(苦肉之策)에만 힘과 지혜를 기울일 게 아니라, 진정한 국면을 꿰뚫어 내야할 시기다.
우리 가게의 간판은 몇 달 동안 상이용사(傷痍勇士) 신세다.
우박에 찢기고 할퀴어 그림과 글씨가 사라진, 불구자와 다름 아니다.
연방세입청과 세상과 나의 신(神)에게 보내는 내 나름의, 나만의 시위다.
잔생이 보배가 되는 세상이 아닌 것 같으면서 못나 보이는 게 자유로운 세상에 나는 살고 있는 중이다.
내 맘이 흔들리면 어느 날 간판을 고치게 될 것이다.
나는 간판 정도 고칠 여유는 된다.
아베쟈네다에서 두 개의 옷 가게를 경영하는 내 지인이 현지인 가정부를 믿고 매상마다 항상 넣는 장농 속에 허술하게 간직하듯 넣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놓고 점심이나 저녁을 외식으로 채우는 사이, 현지인 가정부가 솔솔 훔쳐간 금액이 무려 6십만 페소가 넘었다고 . 우연히 그 일이 들통나게 되었고 추궁하여 판자촌에 찾아갔더니, 17만 페소는 남아 있고, 그동안 집도 구입했으며, 이웃과 친구에게 이자놀이까지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니 우리 교민이 쉽사리 표적이 안 될 도리라고는 없으리~
(60만 페소...암시세로 10만 달러 상당.)
-초여름-
우와~ 동영상의 말미에 우리 가게 고객이고 상연회고문변호사인 토니님이 나온다. 나는 우리네 1. 5세들의 활약이 너무나 든든해져 ㅎㅎㅎ 웃었다. 이리도 단순하고 장난기 넘쳐서 나는 내 악플러들에게 자주 터진다~~~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폭죽놀이
맹하린
크리스마스나 제야(除夜)를 더욱 극적이고 특별하게 즐기려는 의도에서, 그리고 마귀를 쫓는 의미에서도 시작된 역사와 전통이 함께 하는 의식(儀式)인 폭죽놀이.
밤 12시면 전국적으로 일제히 폭죽과 폭탄이 터뜨려지기 시작하여 새벽까지 전쟁터를 방불케 하던 아르헨티나.
이민 30여년 만인 올해의 크리스마스이브엔 처음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보냈다.
정부의 수입품규제정책과 연휴가 그 일에 한 몫 했을 테지만, 불경기의 여파(餘波)라거나 물가상승 역시 여러 몫을 담당했으리라.
그토록 장관이면서 스펙터클한 소음 속에서도 새 나라의 착한 어린이처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가족에게서 다른 행성의 별종 취급을 받던 내가 어젯밤엔 여러 번 잠을 뒤척였다.
폭탄소리라는 자장가가 없는 크리스마스이브는 너무나 허전하고 맨송맨송 서먹서먹 허무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눈을 감은 채 여러 생각 속을 헤매다가 가까스로 새벽을 맞게 된, 주룩주룩 비 내리는 일로 시작되던 2012년 크리스마스…….
아르헨티나여!
내 자장가 돌려 줘요~~~
-초여름-
전주문협 일에 열정을 다하고, 수필집과 시집을 여럿이나 출간한 김용옥 시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나야 잡문이나 쓰면서 세월아 네월아 살고자 작정을 굳힌 지 이미 오래여서 감회가 새롭다면 새롭겠습니다.
너무 아낀다는 일이 너무 크거나 작은 상처로 안긴 모양새가 된 이들에게 치유를 전하는 글이나 가끔 써내고 싶은 접니다.
이 세상 최고의 명의(名醫)는 자기 몸 안에 모시고 산다는 명언처럼, 가족의 상처 역시 가정(家庭)안에 안주해 있겠고, 내 지인들과의 치유 비법 또한 이민공동체 안에 살아 숨쉬고 있음이 정석(定石)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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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옥이어요
2012-12-24
김 용옥
받는 사람: 맹하린언니
시간이 낯설게 만들어선지
내가 사람을 두려워해선지, 언니 생각을 이따금 하면서도
얼른 편지를 쓰게 되지 않습니다.
우린 대부분 '사는게 바빠서'라며
점점 한 개의 외딴 섬이 되어갑니다.
이게 현대인의, 잘 배우고 잘 산다는 현대인의 특징 같아요.
난, 이 동네에서는 잘 지내는 편입니다.
대부분 문인관계로 이삼십년씩 쌓아온 우정 덕분이지요만.
그리고 요즘엔 오직 글을 쓰고 책을 발간하며
인생을 정리하고 있어요.
언니에겐 아랫사람이 별소릴 한다 싶겠지만요 ㅎㅎㅎ.
사람도 자꾸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밥을 먹어야
잔정이 들고 인연이 질겨진대요.
형제도 멀리 살고 거의 만나는 일 없고 보면 멀어지더라고요.
세상을 이해하는 사상, 사는 방법, 매기는 가치가 다르니까요.
나이들수록 '독립된 인간'이란 걸 깨닫는 거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절대고독을 깊이 생각합니다.
이제야 철이 난 거지요 인생에!
언니.
연말도 그냥 한 마디의 흘러가는 시간으로 보입니다 이젠.
그래도 새해는 좋습니다. '새'가 붙은 여러 단어를 끌고 오니까요.
새 마음 새 다짐, 새 목적 새 관계 새 일을 찾아 나가렵니다.
올해엔 수필집 2권을 냈습니다.
내 일을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묶은 거지요.
내년엔 더 많은 열매를 맺어놓으려 합니다.
여기저기 연재하던 수필들과 제구실 못한 시들을 엮으려고요.
언니, 나, 늙어 죽을 준비를 한답니다. ㅎㅎㅎ
언니 언니 하린 언니.
언니에게, 새해2013년이, 특별한 시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2012년 12월 24일 월요일
간격(間隔)과 차이(差異)
맹하린
나를 언니라며 따르는 외숙 씨가 일요일 오후에 가게로 찾아왔다.
외갓집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지니게 된 여인이다.
아베쟈네다 지역에서 의류도매상을 하는 그녀는 자기 소유의 가게에서 세 아들과 함께 장사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직장에서 일한다.
외숙 씨는 금요일과 토요일에 겪은 사건을 내게 자상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오후 대여섯 시쯤, 길에서 사케오! 그런 외침이 순간적이다 싶게 들리자, 가게마다 일사천리로 셔터를 내리는 소음과 장면이 마치 영화의 한 컷과 같았다고 한다.
1천 개를 웃도는 크고 작은 상점들로 조성된 의류도매시장인 것이다.
직접 겪어 낸 건 아니지만, 나로선 상상만 해도 극적(劇的)인 장면이 저절로 떠올랐다.
한국인을 위시한 유태인 볼리비아인 등의 인접국 사람들까지 마구 뒤섞여 길마다 가득 메운 인파…….
마야 달력의 종말은 그렇게 역지개연 되어 흘렀나 보다.
외숙 씨는 세 아들과 하루 종일 함께 장사하는 일이 생각처럼 든든하고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많고 잦은 견해차이와 세대 차이에서 오는 부대낌이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길 쪽에서 사케오! 그런 부르짖음이 터지자, 현지인 고객이 몇 장인가 골라 놓은 옷들에 대해서 외숙 씨 판단으로는 속히 지불 받으면 간단한 것을 아들들은 단체로 결정 짓더라는 거였다.
지금은 옷을 팔 계제가 아니므로 빨리 나가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고객이 나가기도 전에 외숙 씨는 한국말로 왜 장사를 그런 식으로 하는가고 물었고, 세 아들은 고객이 나간 걸 확인하자마자 합창을 해내는데 미리 짜고 하는 말처럼 거의 앵무새와 같았고 매우 똑 같은 말이었나 보았다.
“엄마는 지금, 이 위급사태 속에서 꼭 그러셔야겠어요?”
나는 문우 K선생과 나눈 얘기를 꺼냈다.
내 오른 발의 발등에 붙여진 찜파스를 발견하고 K선생은 놀라 물었었다.
지난 목요일 정오에, 현지인 식당 Viccico에 가던 길이었다.
“저녁마다 셔터를 내리고 열쇠를 잠글 때, 쇠줄로 매단 자물통도 두 개를 더 달아요. 꽃집에 가져갈 게 뭐 있겠을까 싶겠지만, 일단 문을 부수면 손해고, 그 일을 방지하려면 그래줘야 안심이거든요. 그런데 셔터 문을 닫을 때, 가족은 약간의 틈이 보여도 상관을 안 하는 성격이죠. 잔소리를 하지 않는 나와, 잔소리를 전혀 안 좋아 하는 가족을 위해서 나 스스로 셔터를 내리는 방법이 차라리 편하다고 단정하게 되었고, 셔터 문이 꽉 잠기도록 나는 내 오른 발로 쇠문을 두어 번 밀거나 차고 그러죠. 그 과정에서 생긴 아픔이랍니다. 거의 다 나았어요. 요즘은 왼발로 밀고 차요.”
하하하 웃던 K선생은 본인의 고충을 답으로 제시했다.
T de Alvear 거리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아들 관우는 쓰레기를 버리는 부엌문을, 이 어수선한 시국에 열쇠로 안 잠그는 습관만을 고수하고 있단다.
K선생이 문만 닫는 일로는 약하니까 열쇠까지 잠그라고 해도 밖에서는 손잡이가 없는 문인데 구태여 필요 없는 염려는 피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고 들은 척도 안 한다고 했다.
결국, K선생이 일일이 잠그는 수고를 실행할 수밖에 없다고.
외숙 씨는 세대차이와 견해 차이에 만족치 못하고 나라차이에 대한 설명까지 아끼지 않고 돌아갔다.
사케오!
그 외침으로 세상이 온통 아득해지도록 소란스러울 때, 외숙 씨의 옆 가게에서 장사하는 볼리비아인은 셔터를 다 내리지 않고 반만 내리더니, 덜 겁내고 느릿하게 다급한 고객들을 끌어 모아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더라는...
원래 대목이란 끝 무렵이 압권인데, 그 볼리비아인 가게는 고객이란 고객은 모두 도맡아 대목을 잔뜩 누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모종(某種)의 시나리오에 의한 약탈사고의 뒤끝이라선지 일 년에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어제와 오늘, 사케오 문제만은 거의 잠잠해진 국면(局面)에 접어들었다고 보인다.
문명이 고도의 발전을 거듭했고, 인구밀도 역시 치밀해질 대로 치밀해졌으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곡진(曲盡)함 또한 극명(克明)한 간격과 차이를 보이는 현대사회에 우리는 실리듯 흐르고 있다.
마야달력의 종말 일을 아르헨티나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나는 그럭저럭 잘 견뎌냈다.
지진과 쓰나미와 전쟁 보다는 가벼운 부대낌이었다.
게으르고 단순명료 하며 휴식을 휴식답게 휴식할 줄도 아는 나지만, 글과 일과 사건을 만나기만 하면 전광석화처럼 머리가 회전하는 사람이 나다.
나는 이토록 드라마처럼 살고 있고, 사는 게 더할나위 없이 북새통 같을 때가 많지만 감사할 몫은 결코 잊지 않는 편이다.
마치 감사할 순간을 잊으면 다시는 감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새삼 놀라 버리는 사람처럼.
마음이 평화롭고 기쁨 가득한 성탄~~~
새해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 날들 많으시기를 내가 아는 모든 이를 위해 기원 하옵나니!!!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약탈자들
맹하린
일부 지방에 홍수가 났고
모쟈노노총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소요사태라고도 하고
정부나 크리스티나 대통령에 대한 반발심이 원인이라고도 하는 약탈사태...
이번 사태의 발화점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시 바릴로체에선 크리스마스 이전에 큰 사태가 발생하리라는 소문이 지난 일주일 간에 걸쳐 알게 모르게 무성했었다고 한다.
연방정부는 사회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에서 국경수비대 400명을 급파했다.
파견된 경찰들에겐 "사태는 진정시키고, 진압은 피하라"는 지도층의 지시가 내려진 가운데 출동한 경찰들이 지켜보는 2시간 가까운 와중에도 약탈은 계속 되었다고 일간지 클라린은 보도했다.
전투경찰이 투입된 후에야 사태의 국면이 진정됬다고 전하며 오후 1시경에는 투석전을 벌이는 주민과 최루탄과 고무탄을 쏘는 경찰 사이에 극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는 기사도 또 다른 긴장감에 한몫을 했다.
오랜 가뭄 끝의 들불처럼 번진 이번 소동으로 아르헨의 민심은 날로 흉흉해 져 있다.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슈퍼마켓을 위시한 58개의 대소형 식료품상이 도시의 여기저기서 털리는 불상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쇠뭉치에 머리를 맞은 경찰 1인이 중상(경상 4명)을 입었으며, 2명의 사망자와 수많은 중경상자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털린 상점은 292이며, 500여 영업장이 파손되었고, 약탈자들 5백여명이 연행된 상태라고도 뉴스는 전한다.
이번 약탈사태는 빈곤, 마약, 실업 등이 빚어낸 극도의 경제악화가 주원인이었다고 주장하는 측들도 있다.
교회지도자나 현지 언론은 "사회불만이 고조되는 중이다"고 정부당국에 누차 경고한 바 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연말이고 졸업시즌이라서 대목인지 소목인지를 맞고 있어, 이미 써 놓은 글도 포스팅을 못하고 있는 처지지만 우선 짧게나마 해당되는 동영상을 올린다.
그 어떤 일에도 부화뇌동(附和雷同)을 안 하는 성격이고, 무더위에도 선풍기나 켠 채 일하는 체질과 주관을 지녔지만 마음은 몹시도 시리고 추운 여름이다.
-초여름-
링크 된 동영상의수입품회사는 1백만 달러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값비싼 향수등을 약탈해 갔다는 해설입니다.
먹을 게 없어서 훔친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telefe링크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우리는 어떤 노인이 될까
[삶과 문화/12월 11일]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지난 주 지식사회의 최고 화제의 인물은 한 늙은 시인이었다. 그는 상당히 비논리적인 이유로 여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직후, 자신의 옛 동지이며 존경 받는 '원로' 한 사람을 마구 공격하였다. 이 공격 또한 논리의 범위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어 사람들을 매우 민망하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그 시인의 변모를 변절이나 전향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려 했다. 하지만 변절은 지극히 봉건적인 개념이고, 전향은 존재의 실존적 위기국면에서 행해지는 정치적ㆍ사상적 선택이니, 해당 사항 없는 듯하다. 전두엽 뇌세포의 경화와 호르몬 기능의 변화와 불균형으로 인해, 판단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고 언어가 빈곤해진다. 반복된 외로움은 높은 경지의 수양과 고고(孤高) 대신, 오히려 존재를 독단과 무성찰의 상태로 내몬다. 이는 일반적인 노화의 과정일지 모른다. 그런데 타인들을 모두 몽매자로 몰고, 시적인 언어는커녕 극우들이나 쓰는 거친 비유를 사용한 것을 볼 때 시인의 경우는 평균을 넘는 수준인 것으로 사료된다. 세월은, 한때 범접할 수 없이 뛰어난 언어와 불굴의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조차, 무지하고 평범한 노인네의 그것과 방불하게 만든 것이다. 어제 또다른 자리에서도 시인이 화제에 올랐다. 처음의 충격과는 달리 며칠 사이에 시인은 웃음거리나 농담의 소재가 되어 있었다. 시인 개인과 그가 속한 세대 전체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어느 나이쯤 가장 현명하고 균형감 있는 존재로 되는가. 나이 들고도 윤리적이면서 지혜로운 존재일 수 있는 건 언제까진가. 독일의 인지학자 우르술라 스타우딩거는, 인간의 지혜는 20대 중반 이후에는 절로 증가하지 않으며, 끝없이 새로운 것과 접촉하는 소통력과 개방적 학습능력을 갖고 있어야 늙어도 '지혜'가 증대될 수 있다고 했다. 즉 늙음과 지혜는 어느 시점 이상이 되면 서로 역함수관계에 놓인다는 뜻이겠다. 노화와 우경화의 사회문화적 관계에 대해서도 실로 다대한 논의와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의학ㆍ정치학ㆍ문화학ㆍ심리학자가 참여하는 학제간 탐구가 필요하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퇴락하는 것은 육신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 숙명이다. 대개의 인간은 지적ㆍ정신적으로도 쇠퇴를 거듭하다 결국 사망한다. 늙어 몰락하다 죽게 인간을 설계한 신을 원망하고 싶다. 시인처럼 한때 아름다웠던 존재의 슬픈 노쇠와 전락은 '잘 늙기'야말로 노령화사회의 최대ㆍ최고의 개인적ㆍ사회적 과제임을 역설해준다. 노추는 실로 남의 일이 아니다.
잘 늙기 위해 우선 개인적 차원의 과제가 있다. 사실 노추라는 단어는 너무나 두렵고 선명한 개념이지 않은가. 이 개념에 비춰 '자기'라는 모호한 현상을 쉼 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노추의 전단계에는 반드시 '꼰대' 단계가 놓여 있을 것이다. 노추와 치명적 소외 이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꼰대됨'에 대해 성찰해야겠다. 그런데 어느 수준 이상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업데이트할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조력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친구가 아닌, 다른 젠더와 세대의 인간들에게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에게 의존하다간 극우 노인단체 회원들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사회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부친의 말년을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공상 비슷한 것을 했다. 특히 남자 노인들을 위한 재사회화 및 생존 능력 강화를 위한 상설 교육 기관과 정신적 복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1년에 2~3개월씩 입소해서 정치ㆍ사회ㆍ문화ㆍ경제 뿐 아니라 요리ㆍ빨래 등의 가사, 그리고 의사소통 및 감정표현 능력 등을 다시 교육받고 훈련하는 것이다. 물론 젠더와 가족관계에 관한 내용과 정기적으로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것도 프로그램에 필수이다. 그래야 거의 10%가 넘는 노인 자살도 줄이고 한국 민주주의도 공고해질듯 하다. 뭐든 집단으로 뭉치길 잘하는 386세대가 노인이 되면 이 공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지난 주 지식사회의 최고 화제의 인물은 한 늙은 시인이었다. 그는 상당히 비논리적인 이유로 여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든 직후, 자신의 옛 동지이며 존경 받는 '원로' 한 사람을 마구 공격하였다. 이 공격 또한 논리의 범위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어 사람들을 매우 민망하게 만들었다.
혹자들은 그 시인의 변모를 변절이나 전향 같은 개념으로 해석하려 했다. 하지만 변절은 지극히 봉건적인 개념이고, 전향은 존재의 실존적 위기국면에서 행해지는 정치적ㆍ사상적 선택이니, 해당 사항 없는 듯하다. 전두엽 뇌세포의 경화와 호르몬 기능의 변화와 불균형으로 인해, 판단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고 언어가 빈곤해진다. 반복된 외로움은 높은 경지의 수양과 고고(孤高) 대신, 오히려 존재를 독단과 무성찰의 상태로 내몬다. 이는 일반적인 노화의 과정일지 모른다. 그런데 타인들을 모두 몽매자로 몰고, 시적인 언어는커녕 극우들이나 쓰는 거친 비유를 사용한 것을 볼 때 시인의 경우는 평균을 넘는 수준인 것으로 사료된다. 세월은, 한때 범접할 수 없이 뛰어난 언어와 불굴의 강건한 정신의 소유자조차, 무지하고 평범한 노인네의 그것과 방불하게 만든 것이다. 어제 또다른 자리에서도 시인이 화제에 올랐다. 처음의 충격과는 달리 며칠 사이에 시인은 웃음거리나 농담의 소재가 되어 있었다. 시인 개인과 그가 속한 세대 전체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어느 나이쯤 가장 현명하고 균형감 있는 존재로 되는가. 나이 들고도 윤리적이면서 지혜로운 존재일 수 있는 건 언제까진가. 독일의 인지학자 우르술라 스타우딩거는, 인간의 지혜는 20대 중반 이후에는 절로 증가하지 않으며, 끝없이 새로운 것과 접촉하는 소통력과 개방적 학습능력을 갖고 있어야 늙어도 '지혜'가 증대될 수 있다고 했다. 즉 늙음과 지혜는 어느 시점 이상이 되면 서로 역함수관계에 놓인다는 뜻이겠다. 노화와 우경화의 사회문화적 관계에 대해서도 실로 다대한 논의와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의학ㆍ정치학ㆍ문화학ㆍ심리학자가 참여하는 학제간 탐구가 필요하다. 결국 나이가 들수록 퇴락하는 것은 육신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 숙명이다. 대개의 인간은 지적ㆍ정신적으로도 쇠퇴를 거듭하다 결국 사망한다. 늙어 몰락하다 죽게 인간을 설계한 신을 원망하고 싶다. 시인처럼 한때 아름다웠던 존재의 슬픈 노쇠와 전락은 '잘 늙기'야말로 노령화사회의 최대ㆍ최고의 개인적ㆍ사회적 과제임을 역설해준다. 노추는 실로 남의 일이 아니다.
잘 늙기 위해 우선 개인적 차원의 과제가 있다. 사실 노추라는 단어는 너무나 두렵고 선명한 개념이지 않은가. 이 개념에 비춰 '자기'라는 모호한 현상을 쉼 없이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노추의 전단계에는 반드시 '꼰대' 단계가 놓여 있을 것이다. 노추와 치명적 소외 이전에, 예방적 차원에서 '꼰대됨'에 대해 성찰해야겠다. 그런데 어느 수준 이상 나이가 들면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업데이트할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조력을 얻어야 한다. 그것은 친구가 아닌, 다른 젠더와 세대의 인간들에게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친구에게 의존하다간 극우 노인단체 회원들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사회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몇 해 전 돌아가신 부친의 말년을 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공상 비슷한 것을 했다. 특히 남자 노인들을 위한 재사회화 및 생존 능력 강화를 위한 상설 교육 기관과 정신적 복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1년에 2~3개월씩 입소해서 정치ㆍ사회ㆍ문화ㆍ경제 뿐 아니라 요리ㆍ빨래 등의 가사, 그리고 의사소통 및 감정표현 능력 등을 다시 교육받고 훈련하는 것이다. 물론 젠더와 가족관계에 관한 내용과 정기적으로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것도 프로그램에 필수이다. 그래야 거의 10%가 넘는 노인 자살도 줄이고 한국 민주주의도 공고해질듯 하다. 뭐든 집단으로 뭉치길 잘하는 386세대가 노인이 되면 이 공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글쟁이라는 사실만으로
맹하린
지난 목요일 정오.
아베 지역의 산 니콜라스 거리에 있는 초밥왕에서 문협고문들과 점심을 먹었다.
모듬초밥과 튀김과 우동이었는데 적당한 양이라서 산뜻하면서도 좋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식사마다 가볍고 상쾌하게 끝마치는 경향이 있다.
배부르게 먹는 일을 멀리한다는 얘기다.
갈 때는 주룩주룩 내렸지만, 돌아 올 때는 억수로 쏟아지던 비의 질주가 장관 중의 장관이었다.
비 내리는 일도 유행이 따르는 것일까.
최근 들어 한 달 동안에 내릴 강우량이 하루에 다 채워졌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얼마나 웃고 떠들었는지 길게 붙여 놓은 원목식탁들은 묵묵부답 점잔을 피우는데, 어찌하여 그릇들마다 끼리끼리 부딪치고 들썩이는 느낌 쾌청만발이었다.
지방도시 뚜꾸만으로 이사간지 4개월된 H선생은 의류소매상을 하면서 틈틈이 수영과 서반아어공부도 새로 시작했노라고 한다.
같이 레미스를 타고 갈 때, 손수 그린 수묵화 부채를 우아하게 부치며 L회장이 말을 꺼냈다.
나 역시 해마다 여름이면 그녀에게서 부채를 선물로 받았다고 보는데, 막상 들고 나가면 누구에게 주기를 선호하고 그런다.
더위를 잘 안 타는 데다, 중노동자인 나와 부채는 어딘지 모르게 잘 안 어울리는 느낌이라서다.
그런데 L회장이 그만, 그 우아함을 레미스에 놓고 내렸다.
인생 참 흥미롭다.
어떤 사람은 그처럼 아끼는 우아함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말없이 놓고 다닌다.
놓고 내린 후에라야 아차 싶은지 저만큼 가는 차를 정작 쫒아갈 기세이기도 하다.
그 우아함은 운 좋으면 돌아 올 것이고, 혹은 운이 닿지 못해 안 돌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L회장의 아들이 그러더라고 했다.
부모세대는 저 사람이 나 없으면 어찌 살아갈까, 그런 책임감으로 건강에 더욱 유의하며 살아가지만, 자식세대는 상대가 없으면 못산다는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다.
기성세대의 배려가 일종의 열등감에서 생긴 소산(所産)이라면, 젊은 세대의 가치관은 어쩌면 우월감의 소산(所産)이 아닐까 하는 의미로 내겐 거의 유머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K선생이 한국으로 돌아 가게 되는 3개월 안에 우리는 목요일 정오면 가끔씩 만나서 점심을 나누기로 중지(衆志)를 모았다.
K선생을 핑계로 우리가 우리를 돌아가며 대접하게 될 것이다.
도꾸가와 이에야스를 연상시키는 C선생의 장남께서 식사 중간쯤 중후하게 생긴 문처럼 느닷없이 문쪽에 나타났는데, 점심 값을 살며시 치르고 갔다하여 우리는 그점도 즐겨 웃어댔다.
지난 목요일 정오에 C선생이 Clapton에서 이미 한 턱을 냈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식사 하러 들렀다가, 용케도 아버지의 탕탕한 웃음을 옆 홀에서 음악의 리듬을 선별하듯 캐냈지 않나 싶다.
해 묵은 정.
모두 20년 이상 문협의 밥을 다달이 함께 나눴던 분들이다.
고운 정보다 미운 정이 더 자주 스미듯 들었을 것이다.
나는 본국이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선 장난스레 예견(豫見)정도는 논한다. 하지만 선거인 등록을 해본 적도 없고, 투표조차 결단코 안하는 주의(主義)다.
나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열정을 다바쳐 줄까지 서가며 해낼 것이고, 내 관심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당선이 되는 일인 것이다.
헷갈린다.
며칠 전만 해도 근엄한 분이 유리한 듯 보이더니, 공동 어쩌고가 변수로 부각되는 판국이다.
자고로 말이 청산유수라서, 말이라는 칼날 덕택에 당선 되는 통령님은 전례에 없었지 싶다.
아무리 그래도 나로선 어떤 격식이나 모종(某種)의 제도나 틀에 박힌 정책이 한참이나 오래 전부터 거북스럽고 성가시다.
글쟁이는 다른 사람이 꼭 하는 일을 주관을 같은 걸 지키거나 부리며 안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일이 다가오면 일을 하고
글이 손에 잡히면 글을 쓰고
기쁨이 안겨 오면 기쁨과 지내고
그리고 질타가 내게 흙탕물처럼 튕겨 오면 나는 의연히 옷자락 좀 서너 번 털어 내거나 빗물에 흘러 보내기에 초연해 왔을 것이다.
내가 아직 살아 있고
내가 여전히 자유를 추구(追求)하면서
나 항상 첨예로운 존재들과의 대립이나 갈등 속에서 지낼 경우 또한 아주 드물게 있어 왔고...
그런 가운데 더욱 오롯하고 느긋할 수 있는 경지를 조금이나마 쟁취하고 여유로울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내가 언제라도 지향하게 되는 세상을 향한 겸애(兼愛)이며 선(善)인 것.
사람은 누가 비난하고 비판해도 본질을 향한 소중함을 놓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순리(順理)의 도(道)를 터득하는 길이다.
약간만 생각을 바꿔도 답은 금방 나오게 된다.
누가 나를 폄훼 한다고 해서 내 특유의 손톱만큼 정도인 미미한 고귀함이라거나, 너무나 잔물결 닮은 내 고요로움의 그 어디가 그토록 훼손된다는 얘기인가 말이다.
매사에 하하 웃고
비 오면 비를 받아 들이고
언제 어디서나 자문자답(自問自答)을 잊고 싶지는 않다.
내가 지금 잘 흐르고 있는가.
도도히 흐르는 내 앞의 강이 시나브로 맑고 유장(悠長)히 흐르지만, 더러는 굴곡으로 뒤채며 흐를지라도 나는 글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사는 게 거의 축복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최상의 섭리이며 무한대의 문학이라는 걸 새록새록 깨닫게도 된다.
살아감의 유열(愉悅)은 절대로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 보며
나 오늘도 근심걱정을 가까이 두며 살아오지 않았을 지금까지의 일상을 절로 감사하게 된다.
고즈넉함이 폭우(暴雨)처럼 흐르고 쏟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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