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디자이너’ -최윤희-
가장 비싼 강사, 가장 바쁜 강사, 가장 독특한 강사…. 그에게 붙는 수식어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지만 결국은 한 가지다. 행복을 전하는 강사, 행복 디자이너.
‘식식’거리는 압력밥솥 소리에 놀라 도망갈 만큼 연약한 전업주부, 남편의 사업 실패로 도망치듯 지방으로 내려가 살면서 우울증세까지 엄습해오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가족 동반 자살 대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최윤희 씨(61)는 압력밥솥의 시끄러운 소음도 식사시간을 알려주는 고마운 노랫소리로 바꿔 파악할 만큼 딴 사람이 됐다. 청와대 비서관, 흉악범, 룸살롱 여 종업원, 재벌 총수, 장애인 등 그를 찾는 사람은 대한민국 각지에 길게 늘어서 있다. 그들이 최씨를 찾는 이유도 한 가지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옛날에 애꾸눈 임금님이 살았어요. 임금님은 죽기 전에 멋있는 초상화를 남기고 싶었죠. 전국에 있는 유명한 화가를 다 불러서 그렸는데 아부를 잘 하는 화가는 눈을 성하게 그리고 정직한 화가는 애꾸눈 그대로 그렸어요. 임금은 눈이 성한 그림은 보기 좋았지만 가짜라서 던져 버렸고, 정직한 화가가 그린 그림은 보기가 싫어 던지면서 불같이 화를 냈죠. 그 때 한 사람이 자기가 그려보겠다고 했답니다. 임금님은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고 ‘바로 이거야’라고 소리쳤어요. 그 그림은 성한 눈이 있는 방향의 옆모습을 그린 것이었어요. 인생도 이와 똑같아요. 어느 순간에나 희망과 절망, 불행과 행복,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어요. 나도 이 사람처럼 최대한 좋은 쪽을 보고 싶어요. 그래서 저를 뽑아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고 설령 저를 떨어뜨린다 해도 귀사의 번영을 빌겠습니다.”
이 자기소개서로 그는 서른여덟 살 나이에 대기업 신입사원이자 카피라이터가 됐다. ‘특기-멍하니 하늘 쳐다보기, 취미-인상 쓰는 사람 간지럼 태우기, 희망 급여-물질은 완전 초월, 맘대로 주세요.’ 고용주가 보기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어째 요즘 이런 이력서를 썼다가는 ‘장난하나’란 생각에 똑 떨어질 것도 같다만, 당시 그의 소개서는(더군다나 창의력을 요하는 카피라이터였기에) 사장님이 무릎을 ‘탁’ 칠만큼 파격적이었다.
행운은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 못한 데서 찾아오는 것이라지만 꿈같은 일이었다. 물론 한 편의 드라마처럼 자기소개서가 우연히 빛을 발했다고, 그가 회사에 입성하기까지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장님의 선택에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38살, 경력 전무한 주부 신입사원이라니. 밥줄 걸고 사장에게 삿대질하며 최씨의 입사에 항의하는 직원도 있었단다.
그의 신입사원 생활은 굳이 듣지 않아도 ‘비디오’다. ‘제 발로 나가게 해 주겠다’는 각오로 그를 대하는 상사들의 집단 따돌림과 무시는 종종 눈물이라는 결정체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했다면 오늘의 영화 같은 인생극장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
견뎠다. 죽어도 평범한 건 싫다던 천성 덕분에 ‘히히 낙락’ 상사들의 괴롭힘을 잘도 받아쳤다. 그의 얘기에 한참 빠져들다 보면 ‘더 약이 오른 상사들도 결국엔 미운 신입사원에게 녹아내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겠네’라는 생각이 절로 엄습할 만큼 묘한 매력을 풍긴다.
화초 대신 약초임을 증명하다
카피라이터의 ‘ㅋ’도 모르는데 업무를 배우기는커녕 매번 해야 하는 일이라곤 상사의 각종 공과금 대신 납부하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 전화 받기, 커피 뽑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특유의 재치와 장난끼로 먼 길까지 공과금을 납부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덕분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는 그였다. 다짜고짜 반말로 ‘당장 부장을 바꾸라’는 전화 속 고객의 호통엔 “고객님, 제가 하늘처럼 존경하는 부장님께 그런 타락한 말을 어찌 전할 수 있겠사옵니까”라고 유머러스하게 받아치며 무너뜨렸다.
험난한 인적 네트워킹은 타고난 성격으로 극복했다지만 실력은? 별 도리가 없었다. 위궤양을 감수하며 밤새 공부하는 수밖에.
“처음 회의에 참석했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었어요. ‘PT’라는 둥, ‘티저’라는 둥 광고 전문용어가 난무하는데 정말 외계인이 된 것 같더라고요. 할 수 없이 광고 책을 ‘이~만큼’ 쌓아두고 이면지에 무작정 베껴 쓰면서 공부했죠.”
‘예쁘지 않은 나이 많은 아줌마.’ 화초가 아니라는 이유로 설움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결국 사내에는 화초가 아닌 약초가 필요함을 직접 증명해 보이며 그는 인생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생 한번 안 해보고, 모든 것이 맘먹은 대로 된다면 뺀질뺀질 인간미가 없다. 고통도 이겨내고 역경도 뛰어넘어야 향기가 나는 법. 아름다운 향수는 샤워 한 번에 사라지지만 발효된 인간의 향기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때 거지가 되지 않고 늘 순탄대로기만 했다면 지금처럼 책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서 강의를 하는 일은 상상조차 못했을 터. 그는 스스로 ‘오늘’의 뿌리를 절망에서 찾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킬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 예쁘고, 나이 많은 아줌마의 희망 스위치
라디오 생방송 중 개그맨 김영철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야겠죠?” 최씨는 툭 내던지며 답했다. “요즘은 너무 힘들어서 긍정 가지곤 안 돼. 초를 한 방울 떨어뜨려서 ‘초’ 긍정으로 살아야해.”
김씨가 우울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물었다. “선생님, 저는 입이 튀어나와서 잘 안 다물어져요. 늘 먼지가 입으로 들어와서 불편해 죽겠어요.” 역시 핀잔 섞인 최씨의 대답에 결국 대화는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냥 마셔. 뭐가 약이 될지 몰라.”
이게 바로 ‘초’ 긍정의 힘일까? 하루하루 지치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그는 이렇게 참아낸다고 했다.
“누군가가 묻더군요. 나는 24시간 행복해 보인다고. 아니, 내가 무슨 정신병자도 아니고 어떻게 늘 행복하겠어요.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밤 12시까지 방송 녹화하고, 강연하고 몸과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이제 파출부로도 안 써주는 나 같은 아줌마를 여기저기서 찾아준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그가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때론 마음속의 불이 꺼져버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재빨리 희망의 스위치를 올려라. 인생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긴다면 분명 숨겨진 힘이 솟아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지만 유독 사람들이 그를 찾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본인을 보며 ‘그래, 저 사람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잘 사는데, 저기에 비하면 난 얼마든지 할 수 있지’라는 자신감이 절로 생기길 바란다고.
고통을 무서워 않으면 숨겨진 힘들이 솟아날 거야
그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영화관에서 산다. 이른바 ‘망한’ 영화까지 빼놓지 않고 챙겨 본단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니까. 책도 밥보다 맛있단다. 꿀꺽꿀꺽 글을 삼키다 보면 때론 문학소녀도 됐다가, 악역과 싸우는 정의사도도 됐다가, 훌쩍훌쩍 눈물 콧물 닦느라 하던 일을 잊기도 한다.
2012년 11월 29일 목요일
2012년 11월 25일 일요일
축복은...
맹하린
목요일 밤에 누군가 서너 번 가게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똑 같은 전화번호가 여럿이나 입력되어 있었다.
가게의 셔터를 올리는 시간에야 진위를 파악(把握)하게 되었다.
본국에 환국(還國)했던 문우 k여사가 여행 삼아 아르헨티나를 재방문 했다는 사실을 알려 온 것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여행겸 다니러 오는 문우다.
아들 둘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게 가장 첫째가는 이유이며 동기(動機)가 되었을 것이다.
심성이 곱다랗고, 무슨 일에건 가장 먼저 앞장 서는 S여사가 한 턱 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일사천리로 고문님들과의 약속이 이루어졌다.
토요일엔 시간을 못 내는 나지만, 한국에서 왔다는 점에 약해져서 모처럼 짬을 냈다.
이미 예약된 주문들은 아침부터 미리 해낸 뒤 그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K여사는 아르헨티나를 방문 할 때마다 우리를 위해 꼭 선물을 마련해 온다.
작년엔 어깨에 두르는 숄이었고, 올해는 조립식 우산이다.
S여사는 청색 체크무늬.
나는 날씬한 아가씨가 네쌍둥이처럼 그려진 화사하면서도 고급스런 연분홍빛 우산이다.
K여사가 현지인 음식을 선호해서 해마다 우린 Vicco나 Clapton을 주로 이용한다.
아르헨티나에 제대로 맛을 내는 한국음식점이 없다는 연유에서도 더 그러하다.
서로 다투듯 이쪽저쪽에서 일주일 간격으로 식당과 날짜를 정한다.
치안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 누구나 정오 무렵을 주장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음식을 나누며 두서너 시간, 본국의 대선이라거나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이슈를 안 보이는 페치카에 독설처럼 툭툭 내던져 우리는 화제의 불꽃을 사르고 살랐다.
모두들 어느 정도의 경제적 궤도에 이르렀고, 나름대로의 사회적 성공 역시 거뒀다고 여겨진다.
덜 소유하는 쪽으로의 성공을 거둔 사람은 나밖에 없는 듯 보이지만, 그점 전혀 괘념치 않는다.
그들의 성공 사이를 비집고 나의 무소유의 씨앗이 싹터 오른 셈이니까.
성공 사이에서도 그들은 일종의 문제에 부딪치듯 존립했을 것이고, 나의 고달픔 사이에서도 기쁨은 샘솟았을 터이므로,
분명한 사실은, 나중에 이 세상 소풍을 끝낼 즈음...
많이 두고 가서, 하나도 못 가져가서 억울할 일은 없을 테니 나로선 그 점에서 특별히 거뜬하고 홀가분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다.
뒤늦게 맞은 중노동에 아낌없는 열정을 쏟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우리 모두 겪을 만큼 겪은 사람들이라서, 성공한 사람들 속에 껴 있는 나 역시 일종의 성공한 사람이라고 내가 나에게 토닥임과 같은 격려를 베풀게 된다.
문우들, 특히 고문들 한 분 한 분을 더욱 존중하고 싶다.
해마다 한 달 정도 머물었지만, 이번엔 3개월을 계획했다는 K여사를 위해, 가까운 곳으로 소풍이라도 다녀오자고 문협회장에게 제안할 생각이다.
나는 최근의 단순 소박한 내 생의 편린들을 자주 감사하게 여기는 중이다.
어제 오후엔 산책을 두어 번 더했다.
그럴 때의 나는 찬찬히 주변을 구경하며 관광객과 같은 상념을 품고 거닌다.
나무마다 잎새들마다 푸르름이 출렁였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원로 문우들과 세론(世論)을 펼칠 수 있고, 자연(自然)을 지켜보는 순간이 있어 축복(祝福)이라는 감명을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
축복(祝福)은 그렇다.
어느 정도 버리고 단순(單純)해져야 진정성을 되찾는다.
나 이미 축복(祝福) 속에 머물고 있다.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담쟁이처럼
맹하린
지난 주말의 사흘을 무척 분주하게 보내고, 오늘은 아르헨티나 주요 노총들이 주도하는 총체적 파업이 실행되는 날이라서 그럭저럭 한가하게 보내고 있다.
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치러질 결혼식 꽃장식이 하나만 잡혀 있어도 빠듯한 편인데, 신성교회와 시온교회 두 군데나 담당하게 됐었다.
그날 우리 교민사회에는 세 곳이나 결혼식이 있었다.
천주교 영세식도 같은 시간대에 겹쳐 있어 준비와 장식과 정리과정으로 잠자는 시간 빼고 3일 동안 1분도 쉴 새 없이 일했다.
친구들에 대해선 주말이 더 바쁜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최대한으로 존중해주며 가족과 둘이서만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웨딩 샵에서 치장 중이던 신부에게 전달되어야 할 부케를 J교회의 신부에게 전하게 되는 배달사고가 발생했다.
그럴 경우 나는 배달을 해준 레미스기사에게 전혀 내색을 안 한다.
모든 걸 내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신부의 이름만 적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럴 걸 예상하고 다른 신랑신부처럼 친구나 누구를 보내 달라고, 나는 바쁠 때면 넋이 나갈 지경이라며 누누히 부탁했건만 참 알뜰하고 편안하고 느긋하게 나를 부려 먹는 우리의 2세들.
5시에 보낸다는 부케가 어찌하여 아직도 도착되지 않았다고, 결혼식이 임박한 시간인 7시 전쯤에야 연락을 받게 된 나는 레미스를 타고, 차안에서 다른 부케를 만들며 식장을 향해 찾아가는 일까지 단행하게 되었다.
가게의 매장엔 영세를 축하 하려고, 주문도 없이 줄을 선 대여섯 분의 어르신 교우들...
나는 단지 시간을 단축하면서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부케를 전달하기 위해 가족에게만 맡기고 레미스를 불러야 했었다.
아리엘이라는 30대이고 머리까지 긴 현지인 기사는 바쁘고 정신이 없는 내게 가는 도중 내내 말을 시켰다.
현지인 신혼차가 리본을 단채 두 대나 지나갈 때마다 내게 소리치며 감탄 역시 아끼지 않았다.
“리본을 단 결혼 차 또 지나가요!”
그럴 때 나는 조용히 좀 하라고 잔소리 하는 성격은 아니다.
어떤 면으로는 내게 숨통을 좀 트이게 하려는 작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매사에 이런 식이다.
뭐든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는 긍정쟁이임을 자인한다.
거기까진 봐주겠는데, 내게 라몬 팔콘 3200대를 가자면 어느 길을 이용해야 제대로 가느냐는 질문까지 빗발쳤다.
(아이고 , 세상에나! 누가 운전기사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네!)
“우선 후안 베 알베르디 거리로 접어드세요. 라몬 팔콘 거리는 일방통행으로 오는 길이고. 후안 베 알베르디는 역시 일방통행이면서 가는 길이지만 번호가 일괄된 편이니까요.”
“아뇨, 내 얘기는 그러니까 후안 베 알베르디에서 어느 길로 돌아야 라몬 팔콘 3200대에 접어들 수 있느냐는 거죠.”
“한 두 블록 더 간들 어때서요? 그 정도의 격차가 있을 수 있다는 걸 미리 겁내는 건가요?”
그는 그제야 내비게이션을 튼다.
대다수의 레미스 기사들은 내비게이션을 어쩌다 사용하는 경향이 많다.
음악을 듣는 일에 방해가 되어서일까.
신성교회에 닿아 3층에 위치한 예배 실에 서둘러 오르려고 나는 어땠는가.
길고 커다랗던 엘리베이터를 나보다 느릴 거라고 순간적으로 불신하며, 새하얗게 반짝이던 대리석 계단마다 조리신발로 탕탕대며 뛰어 오르던 나의 슬리퍼 소리가 교회전체를 강압적으로 울려대던 느낌이 유난히 강했었다.
내려올 땐 죄인처럼 살금살금 고개 숙인 채 내려오던 내 모습이 새삼 그림으로 뒤늦게 떠올라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다. 지금의 나는...
하물며 양복들을 좍 빼입고 1층의 현관에 서서, 합창으로 나의 그런 모습을 웃어 주던 청첩인들의 약간 높던 웃음소리가 이제서야 놀림과 같이 들리고 있음에랴.
하객들이 도착하기 전에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중이던 신랑신부에게 부토니아와 부케를 전하며 환하게 불이 켜진 예배당 안의 꽃길과 강대상 주위에 장식된 꽃들을 새삼 둘러보던 나의 내면에도 환하게 불이 켜지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도 같다.
다행이다.
그토록 열정을 바쳐 일하고도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아침마다, 몰라보게 거뜬한가 하면 멀쩡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셈이다.
타고난 노동자의 신세에 매우 걸맞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지친 넝쿨이 아니라 강한 생명력으로 의지를 펼치는 담쟁이처럼...... .
최근 아르헨티나 인터넷 미디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膾炙)되던 Paro General(총체적 파업), 오늘은 바로 그날이다.
지난 1년간 소비와 투자가 최악인 사회현상 속에서 나는 지독하게 바쁘거나 마냥 한가한 날들을 마치 하루처럼 몰아서 겪어내고 있었다.
내게 일주일은 하루와 같은 개념(槪念)으로 흐르게 된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이다.
기본적인 개선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는 생활조건을 지금이라도 보상해 달라는 기치를 내 걸며, 아르헨티나노총이나 지식인들은 한 달이 멀다며 시위를 벌이고 파업을 단행하고 있다.
흡사 전염병의 만연처럼 강도들의 활약 또한 극성이 지나치며 이미 도를 넘은 수준이다.
생활조건의 개선은 극단주의자들과 시위단체를 근절시키기에는 너무 벅찬 과제처럼 보이는 현실이다.
민주주의 질서가 추구하는 바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그러한 염원이 폭력이나 시위를 지원하는 노조단체들의 논리적 토대(土臺)를 축소(縮小)시키는 사회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또한 그러한 모티브들이 결집되어 선량한 사회를 구축하는 계기(契機)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오늘을 맞고 보내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여러 면을 포착하면서 시대의 격변에 빈틈없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점이다.
왜 이다지 북새통을 만들며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현 시대의 우리 인간은!
2012년 11월 12일 월요일
도도하기는 커녕
맹하린
두어 달 전의 어느 새벽녘.
아베쟈네다 지역으로 일찍어니 꽃배달을 보내야 해서 6시 30분경에 집을 나섰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어떤 상점 앞에 경찰 차 3대가 경고등을 번쩍이며 주차해 있었고, 경찰들은 거적이 덮인 피해자의 현장 주위를 꼼꼼하게 조사 중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건지 태연자약 그 건너편을 잘도 지나오게 된다.
액션영화를 너무 많이 보아낸 결과지 싶다.
한국식당 앞 근처에 상주하는 노숙자 중의 한 청년이 쪼르르 달려 왔다.
보호 차원에서 나를 가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얘기다.
무슨 작전이 있었다고 한다.
잠바의 주머니에서 동전보따리를 꺼내 자랑처럼 보여 주었다.
"나보다 동전을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 있군요."
나는 그렇게 감탄을 나타내 주었다.
가게 앞에서 그에게 약간의 적선을 건넸다.
웹서핑하며 알았다.
마약을 판매하는 현지인 청년 하나가 Flores 지역에서 총격을 받았으며, 보복살인을 당했다는 기사였다.
사는 게 팍팍한 것 같은 기분이 몰려오면 서재를 헤매며 읽을 만한 책이나 시집을 고른다.
그리고 쓰기도 한다.
사는 일은 자박자박이지만, 글만은 도도하게 걷고 싶었었다.
그러나 도도하긴 커녕 적나라해졌을라나.
전면이 유리로 된 서재에서
글이나 쓰다가
음악이나 듣다가
화초나 가꾸면서
나 그처럼 근사하게 살고자 했는데
이리도 현장감 넘치는 시대를 걷고 있다.
박경리 선생의 유고 시집에서 마음 절절한 시 하나를 읽고
하물며 나는 아침 내내 기분이 땅속으로 스며 드는 느낌이다.
일 잘하는 사내
-박경리-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젊은 눈망울들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시 태어나면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
내 대답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울었다고 전해 들었다
왜 울었을까
-초여름-
키르츠네르 크리스티나 대통령의 개인 자산이 몇 년 전에 7백만 페소였는데
현재는 8천 9백만 페소로 불어 났다는 현지 경제학자들의 논평입니다.
3선이 있기까지의 정치변동을 염려하는 국민들의 우려는, 생활비조차 최대한으로 안쓰기 작전을 펼치는 와중입니다.
장사는 그럭저럭 안 되진 않지만, 그동안 인플레이션의 뛰어오름이 너무 급격했었나 봅니다.
지폐의 가치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 없어졌음을 날로 실감하게 됩니다.
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성찰목록
맹하린
지난 일요일 오후엔 친구 수산나가 다녀갔다.
나는 미사를 드린 지 몇 달이나 지난 처지라서 주로 성당 얘기에 대화의 초점을 맞췄다.
바람직하고 좋은 얘기들만 주고받았었다고 본다.
마음에 가라 앉아 있던 세월의 앙금도 각각 따로따로 휘저어 어딘가로 함께 흘러 보내기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날의 도움이 너무도 고마웠다는 표시의, 조촐한 선물은 살몃 그녀의 가방에 넣어줬다.
내가 전도사 가방이라고 놀리는 검고 칙칙하며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가방이다.
그녀는 귀가할 때마다 우리 가게 앞에서 버스를 탄다.
수산나의 집은 자가용이 세 대지만 그녀는 병원에 검사하러 다닐 때조차 버스로 다닌다.
나는 가끔 그녀의 요청에 의해 동전을 바꿔주는데, 그날은 그녀가 부담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거의 모자란 듯 얼굴을 잔뜩 허물어뜨려 웃으며 그녀의 손에 동전 몇 개인가를 덥석 쥐어주게 되었다.
형편으로 치자면 그녀가 나와 비교도 안될 만큼 잘 살지만, 동전만은 내가 더 많이 소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택시나 레미스를 주로 이용하므로 동전이 좀 넘치는 편이다.
"오늘은 감사하며 받을 게요. 성당에서 꽃집을 향해 오는 중에 거지가 쫒아 왔어요. 그런데 배고프다는 말에 맘이 아팠고, 그래서 헌금 내고 남았던 10페소를 선뜻 내줬어요."
그녀는 성당에 다닐 때 몇 십 페소만 지니고 다닌다.
몇 번에 걸쳐 어깨에 메었던 가방을 잊을만 하면 날치기 당했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참 검소요란휘황사치찬란이 각양각색이다.
L은 우리 가게에 들르게 되면, 갈 때는 절대로 그냥 못 간다.
남편이나 아들이 자가용으로 기필코 데리러 오도록 일을 언제나 그런 방향으로 꾸미는 것이다.
최신형 핸드폰으로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야단법석이 너무나도 지배적이다.
그래야만 만사가 든든해지는 모양이다.
(레미스나 택시 타면 두루두루 편한 것을...)
마음으로만 그렇게 생각할 뿐, 나는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과 나 스스로에게조차 충고, 또는 잔소리나 후회 따위를 삼가는 성격이다.
다른 사람에게 최대한으로 인격적 대우를 해주고, 작게나마 배려를 안기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라서다.
성당에 자주 못 갈 뿐 아니라 고해성사도 거의 못해내서 가끔은 '성찰목록'을 꼼꼼히 읽어내는 순간이 때로 내게 있어 왔다.
50여개 중에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몇 개만 제외하면 전부 성찰하게 되는 목록이다.
*자녀에게 좋은 표양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이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배우자와 다퉜습니다.
*이웃의 아픔이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세상에나!
이것도 죄, 저것도 죄였다.
"사는 게 다 죄지요"라고 했다는 어느 촌부가 바로 내가 아니기를 기도하게 될 정도였다.
조지 칼린의 명언이 저절로 떠오르는 토요일 오후다.
* 우리들의 재산은 예전에 비해서 몇 갑절이 되었지만 그 진실한 가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 우리는 말은 많이 하지만, 거의 사랑하지 않으면 너무 쉽게 증오한다.
* 우리는 어떻게 먹고사는 것은 배웠지만, 삶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 우리는 우리의 삶에 많은 시간을 보탰지만, 우리들의 시간에 진정한 삶을 부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 우리는 달까지 다녀오는 쾌거는 이루었어도, 새로운 이웃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건너는 데에는 힘들어 한다.
* 우리는 바깥세상을 정복해 나가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의 내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다.
* 우리는 큰일들을 해냈지만, 더 나은 일들을 한 것만은 아니다.
2012년 11월 9일 금요일
냄비시위

-초여름-
시위에 동원된 통계인원 추산의 간격이 너무 큽니다,
정부의 녹을 먹는 경찰청 발표=10만 명.
언론 발표=25만 명.
마끄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정부경찰당국 발표=50만 명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11월 8일...
맹하린
아베쟈네다 지역에 둥지를 틀었던 10여 년 전, 우리 가족은 옥상에서 어스름이 내려 앉기 시작하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커피와 간식을 들고 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검정색의 긴 모직코트에 역시 검정인 약간 긴 모자를 쓰고 수시로 지나다니던 유태인 랍비들을 보며 나는 아들에게 툭 질문을 던졌다.
"저 사람들은 신앙심 때문에 이 땡볕에 저런 차림으로 나다니는 거니?"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 믿기 때문이죠."
그 무렵 신앙생활에 자주 갈등을 겪던 남편이 옆에서 실토하듯 말했다.
"하느님이 한 번이라도 보인다면 나는 의심 없이 더 확실하게 믿을 수도 있을 텐데……."
매사에 우리 내외의 사부역할에 충실하던 아들은 그리도 명쾌하며 적절한 답을 , 미리 준비해 둔 것처럼 산뜻하게 풀어냈다.
사실, 우린 아무 것에도 문외한이고 뭐든 잘 모르는 것처럼 간접적인 논술교육을 그런 식으로 유도하는 시간을 즐겨 가졌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빠!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의 저 나무들을 좀 보세요. 저 나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바람의 모습이 아빠 눈에는 안 보이시죠? 사람은 나무이고 바람은 하느님이십니다. 신을 기필코 확인하려고 주장하는 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돼요. 바람이 누구에게나 보인다면 이 세상사람 그 누구도 교회신자가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안 보이는 신을 보아내고 믿는 것, 그게 바로 진정한 믿음 아닐까 싶어요."
11월 8일에.
아르헨티나 중도좌파정부에게서 극우파이며 쿠테타의 진원지가 될 수도 있는 우두머리들이라고 불리는 세력들, 그들이 주요도시에 운집하여 대대적인 냄비시위를 벌이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경고하듯 포문을 열고 있는 와중이다.
어떤 변수와 파장을 몰고 올지 현지사회전체가 사태의 추이를 각자의 조리개를 맞추며 관심껏 지켜보는 시점이다.
그렇잖아도 침체된 경기 역시 바짝 움츠린 가운데, 가장 예민한 촉각을 세워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모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사회분위기다.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무슨 일이 안 벌어지기를 바라고 바란다.
우리 가족이 이민이라고 도착했던 30여 년 전에는 아르헨티나의 차도나 인도들은 종이라던가 작은 부피의 쓰레기들 천지였었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흐르니까 나까지도 자가용을 탈 때마다 차창으로 휴지나 과일껍질 정도 버리는 일은 다반사로 실행했었다.
어떤 면으로는 재미까지 느꼈고 즐기는 느낌조차 깨닫게 될 정도였다.
그만큼 투명하지 못한 사회의 어수선하거나 어지럽혀진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 걸쳐 기류처럼 감돌았지만 지금보다는 순박하며 때 묻지 않았던 세상이기도 했다고 추억된다.
현재의 아르헨티나 거리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 청소부들이 형광색 유니폼 차림으로 키보다 커다란 빗자루를 사용하며 잦은 청소를 해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청소부들은 비질도 한국과 반대로 한다.
옆이나 앞으로 쓸어내는 자세가 아니라 오로지 밀고 밀어낸다.
나는 하여간에 활자중독자다.
쓰지 않으면 읽고, 읽지 않을 땐 쓴다.
읽을 때는 모르겠는데, 쓰는 동안에는 세월이나 시간관념을 완전히 잊는 편이다.
결국 나는 가는 세월을 좀 멈추려고, 내가 나를 격려하려고 쓰고 읽어 왔는지도 모른다.
나를 보호 하고 위로하려고 그 누군가를 용서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신은 오늘 또한 재산의 많고 적음을 상관치 않고, 소외계층이 된 이들의 마음을 크고 작게 움직이고 있다.
보이거나 안 보이는 존재가 되어 우리와 한 세상을 살며 이해와 용서와 은총의 나눔을 수도 없이 베푸는 것이다.
11월 8일에.
나 역시 대다수의 아르헨티노들처럼 제발 더 이상의 태풍과 맞먹는 정치변동이 결코 안 벌어지기를 바라며 약도를 들여다 보 듯 거리를 지켜보게 된다.
형광색 청소복의 청년이 기다란 빗자루를 밀고 밀면서 청소부 고유의 카트 있는 쪽을 향해, 역동적이며 활기찬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다.
2012년 11월 4일 일요일
햄버거 할아버지
한국일보
-장명수 칼럼 -
'햄버거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근검절약을 한평생 생활 신조로 삼았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오면 할아버지는 함께 외식하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가는 곳은 항상 햄버거 집이었다. 집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차를 타고 좀 멀리 교외로 나가야 하는 곳까지, 늘 같은 체인의 햄버거 집을 찾아 가셨다.
처음에 가족들은 "손주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도 햄버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다른 외식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할아버지가 햄버거 집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갈비란 본래 한 두대 먹는 것"
몇 년 전 장남이 갈비 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계산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다. "가족 외식으로 이런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음식에 비해 값이 터무니 없는데 왜 이런 바가지를 쓰느냐. 또 갈비란 본래 한 두 대, 많아야 두 세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식당이 떠나가게 떠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귀아귀 먹어대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할아버지는 꾸중하셨다.
자녀들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몇 번 외식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정한 곳이 햄버거 집이었다. 생선 채소 고기 등 여러 종류의 햄버거가 있으니 식성대로 고를 수 있고 맛도 괜찮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패스트 푸드는 몸에 안 좋다"고 며느리가 반대했지만 "한 달에 두 세 번 먹는 다고 나쁠 것 없다. 또 우리 같은 노인에겐 햄버거가 별식이다. 모든 물건은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라고 할아버지는 주장하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오늘의 노인 세대는 물자와 돈에 대한 생각이 젊은 세대와 많이 다르다. 물자가 귀한 시대에 성장했고, 전쟁을 겪으며 굶주림을 체험한 세대여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화장지 한 장도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는 손주들이 화장지를 마구 뽑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는 메모지가 있는데도 이면지를 사용하고 종이 봉투, 나일론 보자기, 몽당연필, 리본, 포장지, 단추 등을 버리지 못해 온갖 잡동사니에 묻혀 산다.
요즘 나는 노인들의 이런 생활 태도가 더 없이 아름다운 미덕임을 발견하고 있다. 물자를 아끼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삼가는 마음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겸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무를 잘라야 만들 수 있는 화장지를 반으로 나눠 쓰는 할머니는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나무들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종이를 아끼는 것이다. 물건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햄버거를 선택했던 할아버지는 구두쇠가 아니라 생활경제 학자였다.
"갈비란 본래 많아야 두 세 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절제와 점잖음이 배어있다. "실컷 먹고 실컷 마시고 실컷 즐기겠다."는 요즘 풍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대를 이어 전해내려 온 굶주림의 기억이 세계 경제 10대국을 넘보는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무엇이든 '실컷' 하겠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와글와글 식당
이런 욕구에 편승한 바가지 상혼이 음식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고, 실컷 먹고 마시는 문화가 식당을 시끄러운 장터로 만들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맛있다는 식당은 지글지글 굽고, 부글부글 끓이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연기와 김이 자욱하다. 이런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만족하는 고객들이 이런 식당을 번창하게 한다.
나도 전에는 구두쇠와 궁상이 미덕임을 몰랐다. 자신을 위해 물자를 풍풍 쓰는 것이 천한 것임을 몰랐다. 절제와 절약이 반듯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절제의 미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된다. 화장지를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손주들에게 물려줘야 할지 안타깝다.
-장명수 칼럼 -
'햄버거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그는 큰 부자였지만 근검절약을 한평생 생활 신조로 삼았다. 자녀들과 손주들이 오면 할아버지는 함께 외식하러 나가는 것을 즐겼다. 가는 곳은 항상 햄버거 집이었다. 집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차를 타고 좀 멀리 교외로 나가야 하는 곳까지, 늘 같은 체인의 햄버거 집을 찾아 가셨다.
처음에 가족들은 "손주들이 햄버거를 좋아하니까" 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도 햄버거를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다른 외식보다 가격이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할아버지가 햄버거 집을 선호하는 이유였다.
"갈비란 본래 한 두대 먹는 것"
몇 년 전 장남이 갈비 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계산서를 받은 할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다. "가족 외식으로 이런 큰 돈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음식에 비해 값이 터무니 없는데 왜 이런 바가지를 쓰느냐. 또 갈비란 본래 한 두 대, 많아야 두 세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 식당이 떠나가게 떠들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귀아귀 먹어대는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할아버지는 꾸중하셨다.
자녀들이 안내하는 식당에서 몇 번 외식을 하다가 할아버지가 정한 곳이 햄버거 집이었다. 생선 채소 고기 등 여러 종류의 햄버거가 있으니 식성대로 고를 수 있고 맛도 괜찮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었다. "패스트 푸드는 몸에 안 좋다"고 며느리가 반대했지만 "한 달에 두 세 번 먹는 다고 나쁠 것 없다. 또 우리 같은 노인에겐 햄버거가 별식이다. 모든 물건은 가격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라고 할아버지는 주장하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오늘의 노인 세대는 물자와 돈에 대한 생각이 젊은 세대와 많이 다르다. 물자가 귀한 시대에 성장했고, 전쟁을 겪으며 굶주림을 체험한 세대여서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화장지 한 장도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는 손주들이 화장지를 마구 뽑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할머니는 메모지가 있는데도 이면지를 사용하고 종이 봉투, 나일론 보자기, 몽당연필, 리본, 포장지, 단추 등을 버리지 못해 온갖 잡동사니에 묻혀 산다.
요즘 나는 노인들의 이런 생활 태도가 더 없이 아름다운 미덕임을 발견하고 있다. 물자를 아끼고 자신을 위한 소비를 삼가는 마음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겸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무를 잘라야 만들 수 있는 화장지를 반으로 나눠 쓰는 할머니는 궁상을 떠는 게 아니라 나무들의 어머니 같은 마음으로 종이를 아끼는 것이다. 물건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햄버거를 선택했던 할아버지는 구두쇠가 아니라 생활경제 학자였다.
"갈비란 본래 많아야 두 세 대 먹는 것이지 배가 부르도록 먹는 음식이 아니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는 절제와 점잖음이 배어있다. "실컷 먹고 실컷 마시고 실컷 즐기겠다."는 요즘 풍조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대를 이어 전해내려 온 굶주림의 기억이 세계 경제 10대국을 넘보는 이제는 사라질 때도 되었건만 무엇이든 '실컷' 하겠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글지글, 부글부글, 와글와글 식당
이런 욕구에 편승한 바가지 상혼이 음식 값을 터무니 없이 올리고, 실컷 먹고 마시는 문화가 식당을 시끄러운 장터로 만들고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맛있다는 식당은 지글지글 굽고, 부글부글 끓이고, 와글와글 시끄럽고, 연기와 김이 자욱하다. 이런 식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실컷 먹어야 "먹은 것 같다"고 만족하는 고객들이 이런 식당을 번창하게 한다.
나도 전에는 구두쇠와 궁상이 미덕임을 몰랐다. 자신을 위해 물자를 풍풍 쓰는 것이 천한 것임을 몰랐다. 절제와 절약이 반듯한 정신에서 나온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절제의 미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걱정이 된다. 화장지를 반으로 잘라 쓰는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손주들에게 물려줘야 할지 안타깝다.
새로운 희망
맹하린
10월 셋째 일요일이던 올해의 어머니날엔 사흘 동안 무척 바빴다.
금요일과 토요일 밤엔 1시간 정도만 눈을 부쳤을 정도로 주문예약이 넘쳐 있었다.
당일 오후엔 예년과 다름없이 친구들이 일을 도왔다.
이틀을 밤샘한 셈이라선지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긴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미용실에 다녀오고 기다리고 그러는 과정이 성가셔서 내가 잘랐다.
빗장뼈에 닿을 정도의 단발머리가 되었다.
꼼꼼하게 자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지런하지는 못해도 크게 괘념치 않는다.
도리어 거울을 볼 때마다 약간 층이지는 끝부분이, 내가 나를 웃음 짖게 만들고 있다.
내년 5월까지 결혼꽃 장식도 몇몇 주문을 맡아둔 터라 때로는 바쁘게 지낼 것 같다.
며칠 전 악플러들에게 연거푸 타격을 입었다.
그로 인해 외로웠다면 다행이었겠는데, 그런데 울적함의 극치를 맛보고 맛봤다.
실명공개, 내 글에 대한 폄훼 등등.
기분전환을 위해 옷 하나 구입해 보려고 수입옷집에 갔다.
본국의 남대문이나 동대문에서 구입해 왔을 게 분명한 울긋불긋한 한국 신상들이 하나같이 500페소(1백 달러 상당)가 넘었다.
대부분의 옷들이 거의 골프를 위한 상품들이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금세 그곳을 나왔다.
몇 년이 걸릴 지 확언할 수는 없으나 환국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아기자기한 내 나라에서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최근 들어 퍽도 사무치다.
엄마와 형제들을 지켜보고 친구들과 여행 다니기를 즐기며 나는 어쩌면 글도 안 쓰게 될 것 같다.
외롭지 않으면 글도 써지지 않을 테니까.
나는 그동안 외로웠을까.
그렇다. 밝음이라는 이름의 외로움 속을 타박타박 여일하게 지나 왔을 것이다,
엇갈리는 상념들이 자주 나를 흔들어 놓고는 했었다.
우기의 빗소리에 실린 생의 편린들이 투명한 아우성으로 들리기도 했었다.
어떤 면으로는 가장 평화로운 심리상태를 회복하려고 느닷없이 나는 새롭게 희망 하나를 구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악플러들…….
그들은 위대하다.
아르헨티나를 그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나를 몰아내는 일에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단지 관심이라는 미명하에…….
익명의 바다에서 현장성을 담보하고 감상성 역시 극복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는데...
그런데 익명에 혼겁하여 최근의 나는 실명에도 거부감이 생기는 현상을 겪는 중이다.
언제라도 상투성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을.
환국.
요즘의 내게 절대군주의 존재처럼 유일한, 새로운 희망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래전부터 나는 잠재적인 직관력으로 환국을 희망해 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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